전편에서 언급했던 인간 생존 4요소(화로/지붕/바닥/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불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봤다.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불, 기술발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뛰어난 온열 장비들 덕에 불은 현대 캠핑에서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쓰인다. 요리할 때, 불멍 할 때, 잠잘 때 쓰는 열원이 모두 다르다. 껐다 켰다 얼마든지 조절해가며 쓸 수 있는 게 불이다. 하지만 원시 사람들부터 조선시대까지도 불씨는 어느 순간에도 절대 꺼트려서는 안 될 신성한 존재였다. 이 어려운 불은 어떻게 오늘날 이렇게 쉬워(?) 질 수 있었을까, 이 글에서 그 추적기를 담았다.
불의 중요성
최초의 불 발견에는 다양한 가설이 있다. 용기 있는 인간이 벼락 맞은 나무로부터 살아있는 불씨를 가져왔다는 설, 우연히 맛본 타 죽은 동물 사체가 날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기 때문이라는 설.. 등등 대략 다른 동물에 비해 떨어지는 인간의 신체 능력을 보강해 줄 무기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바로 '불'이었다는 이야기다.
재밌는 것은 인간의 치아와 소화기의 기능은 불에 익힌 음식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샐러드나 회를 먹으면 어딘지 허한 이유는 이것 때문일까? 불에 구워진 음식을 먹기 때문에 인체에는 야생 동물처럼 기생충이 서식하지 않는다. 덕분에 각종 소화기 질환이 감소하고 나아가 평균 수명과 인구수가 늘어났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결국 불은 체온 유지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을 넘어 인간 신체구조를 바꾼 가장 큰 외부요인이다. 이 정도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불일 진대, 조선시대 시어머니가 불씨를 꺼트린 며느리를 곱게 넘어가 줄 리는 만무하다.
이렇게 귀한 불, 어떻게 만드는 걸까?
그렇다면 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불은 격렬한 산화반응을 통해 만들어지는 열이 임계치를 넘어 연쇄적으로 다른 분자들의 반응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1) 산소가 필요하고 (2) 불에 탈 만한 가연물이 있고 (3)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가해질 때 불이 붙는다.
자연 상황에서 불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기상학적 / 물리적 / 화학적 방법이 있다. 벼락 맞은 나무에서 불을 주워오는 것은 기상학적 우연이므로 논외로 하자(그런데도 로또 맞을 확률보다 높단다..). 두 번째로,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인간이 불을 피우기 위해 나무 막대를 비비는 모습을 매체에서 자주 봤을 것이다. 마찰식 점화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방법은 나무를 비비는 운동에너지를 나무 간의 마찰 에너지로, 또 그것을 결국 열에너지지로 바꾸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발화점까지 순수 육체노동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것은 빠르면 수 십분, 안되면 몇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그러다 코에 맺힌 땀방울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리셋.
마지막 화학적 방법이야말로 현대 캠핑을 하드 캐리 하는 방식이다. 바로 부싯돌 부딪히기다. 기본적으로 한쪽은 철광석(부시)이어야 하고, 다른 한쪽은 철광석을 긁어낼 수 씨는 철광석 이상의 경도(석영)를 가진 돌(부싯돌)이어야 가능하다. 이 방법으로 반응이 빠른 철(Fe)을 공중의 산소와 반응시켜 불꽃을 얻어낸다. 그렇게 발생한 불꽃을 빠르게 부싯깃(불을 받아주는 물건)에 붙여 불을 피운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간편한 불은 화학적 방법에서 발전되었다. 반응성이 높은 인(P)을 뭉쳐(성냥 대가리) 유리 마찰제(갈색 부분)에 그어 불꽃을 피우는 성냥은 근대 문화의 혁신이었다. 또 부싯돌을 엄지손가락 하나로 긁어내는 동시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힘의 구조를 효율화한 것이 라이터와 토치다. 심지어 흔들어 쓰는 핫팩 또한 부싯돌의 원리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발명품이라는 것이었다(무릎 탁!). 불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의지는 꾹꾹 압축되고 경량화되어 현대 캠핑에 빠질 수 없는 키맨들로 정착했다.
피워낸 불꽃을 유지하는 방법
앞서 언급한 방법들로 불꽃을 만들었다면, 그다음 스텝은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스파크가 착 붙도록 불쏘시개를 태운다. 물기 하나 없는 검불, 낙엽, 마른 잔가지, 솔방울, 영지버섯이 일반적인 불쏘시개인데, 더 빠르게 하고 싶다면 식용유를 바른 휴지나 고체 메탄올, 번개탄을 쓸 수도 있다. 그다음에는 쪼갠 각목, 그다음은 두꺼운 각목, 불의 크기에 맞게 단계별로 연료를 공급해 불의 크기를 키운다. 연료는 엄청 다양하지만, 원료별로 구분하자면 목재류 / 가스류 / 에탄올류로 구분된다.
불을 담는 그릇
이렇게 키운 불이 다른 곳에 번지지 않도록 보관하고, 용도에 맞는 효율을 내도록 하는 그릇이 화로다. 오늘날에는 화로대의 기본 기능에 주변의 자연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수적으로 추가된다. 청동기 시대에는 땅을 파서 주먹만 한 돌을 둘러 놓은 화덕이, 철기시대에는 진흙으로 쌓아 올린 화덕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미디어에서 본 바가 많다. 조선시대에는 무쇠로 만든 화로대에 숯불을 담아 방 안에 보관해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차를 끓이고, 인두를 달구는 등 매일매일 활용했다고 한다. (이게 엎어지면 건조하게 바싹 마른 초가집이 활활 잘 탔겠지..) 이 화로대는 오늘날 캠핑 스타일에 따라 수많은 변주를 한다.
캠핑에서 불을 담는 그릇은 크게 불멍용 / 요리용 / 난방용으로 나뉜다. 기능에 따라 명칭도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불명용 그릇들은 화로대라 불린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불의 모양과 소리가 잘 전달되는 것이 중요한 갬성 템이다. 요리용 그릇들은 버너와 그릴 등으로 불린다. 버너는 가스를 사용하고, 그릴은 장작을 사용한다. 겨울철에는 난방용 그릇을 쓴다. 이것도 연료에 따라 등유난로와 화목난로 등으로 나뉜다. 감성 가득한 캠핑일수록 주 연료가 장작이나 펠릿과 같은 나무 계열이다. 감성에 비례해 아이템 사이즈가 비대해지는 듯한데.
하지만 장작을 쓴다고 무조건 맥시멀 캠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엔 획기적인 방식으로 저 세 가지 기능을 버무리고 또 압축해 놓은 힙한 발명품이 많다. 그리고 캠핑이 미니멀 해지는 이 부분이 바로 캠핑이 섹시해지는 부분이다. 발명가들은 일부러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 소꿉놀이를 역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에센스만 추출해 가장 간단한 형태로 디자인했다. 미니멀 캠퍼를 지향하는 나에게 최적화 된 장비들이다.
원시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날의 캠핑을 구경한다면, 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분명 벼락의 신 제우스나 불꽃의 신 헤파이스토스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용하기 까다롭고 영험하기도 했던 불은 캠핑에 와서 콤팩트 해졌고, 가벼워졌고, 유연해졌다. 캠핑은 유희를 위한 취미의 영역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면에 문명 발전의 시간이 응축되어있다. 홀몸이었다면 얼어 죽었을 몸이, 문명 덕에 안락하게 야외의 시간을 견딘다는 것을 장비 하나 하나로부터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캠핑이 좋다.
+ 다음 편은 인간 생존 4요소 중 두 번째인 지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