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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자 Dec 13. 2020

원시생활인가 소꿉놀이인가, 캠핑

캠핑은 재밌는 구석이 많은 활동이다. 소꿉놀이 같으면서, 사서 하는 노숙 같기도 하다. Camping을 영영사전에서 찾아보면 '특정 목적을 위해 임시로 야외에서 지내는 행위'라고 나온다. 등산이나 낚시의 연장선상에 있는 취미 캠핑은 오히려 한정적인 의미이며, 취미보다는 생존이 우선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작전 수행을 위해 쓰이는 텐트(실제로 현대 캠핑 장비들은 세계대전 때 다수 발명되었다고), 난민들의 임시거처, 또 몽골 유목민들의 게르,,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던 우리네 조상님들의 원시 움막이 결국 캠핑의 화석급 기원이 아닐까?



캠핑은 누군가에겐 생존이었던 필드 위의 하루를 단순한 여가로 치부할 수 있는, 고도로 발전된 사회만의 여유다. 원시인이 몇 시간 동안 나무를 비벼 불을 피워야 했던 것에 비해, 우리는 스위치 한 번으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는 단적인 부분만 보아도 캠핑은 장비빨이다. 아니, 캠핑 = 장비다. 그럼 캠핑을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필자는 야외 생존의 조건부터 찾아보았다.


건축 역사가들은(Gottfried Semper 외)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집이 집으로 기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화로/지붕/바닥/벽을 꼽았다. 인간이 덤불이나 구덩이에 숨지 않고도 발 뻗고 춥고 위험한 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불이다. 공격할 두꺼운 발톱도, 추위를 견딜 털도 없는 인간의 유일하고도 강력한 무기는 불이었다. 아마도 원시인들은 소중한 불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뚜껑을 덮어 비를 피했고, 옆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벽을 세웠을 테며, 마지막으로 축축한 습기와 냉기를 차단하고자 바닥을 만들지 않았을까? 실제 선사시대 움집들을 보면 야생과 고군분투했던 인간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다.

화로를 중심으로 지붕, 바닥, 벽이 아늑한 실내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조금 최근의(?) 사례로는 유목민족들의 텐트가 있다. 몽골인의 게르를 보면 원시 움집들보다 확실히 더 기동성을 갖춘 모습이다. 몽골 유목민들은 가축을 키울 수 있는 목초지를 찾아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살아간다. 게르의 구조물들은 초속 19~20m에 이르는 풍속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운반 / 설치에 유리하도록 구성되어있다. 게르는 어른 2~3명이 1시간 안에 조립하고, 30분 안에 분해할 수 있다고도 하는데, 앞서 언급했던 인간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에 더불어 휴대성과 경량화라는 숙제까지 함께 풀어낸 라이프스타일이다. 기술이 더해진다면 캠핑과 똑같다.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거란, 여진, 몽고족, 훈족과 같은 유목민들은 야영이 일상이다 보니 기본적인 신체 능력치가 남달랐다고 한다. 민족 전체가 잠재적 전사인 셈. 오늘날 우리는 이들의 신체 능력과 기마술을 화석연료와 운전능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 기술은 대단하다. 


*특히 군주만이 탈 수 있었다는 바퀴 달린 게르를 보면, 오늘날에도 값비싼 캠핑카가 떠오른다.




움집과 게르는 선사시대 사람들과 몽골사람들의 생존 노하우가 가득 담긴 결정체다. 이들은 그래도 야외활동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피부 껍질이 두꺼웠을 테지만, 햇빛 한 줌 보기 어려운 직장인들은 야영을 잘못 나갔다가는 병에 걸려 돌아오기 딱 좋을 거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 온 안락함의 조건들을 떠올리며 준비한다면, 한 겹 한 겹 튼튼하고 안락한 방어막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건물이라는 보호막으로 우리의 체온과 생명을 유지하고, 나아가 사회를 유지한다. 그 근저에는 역사를 거듭한 기술의 발전이 깔려있다 : 방수, 단열, 통풍 등. 이것만으로도 인류는 대단한 발전을 거쳐왔다고 생각하는데, 캠핑은 여기에 경량화와 휴대성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더한 '취미'다. 취미로 집을 주머니에 넣어다니.. 건축과를 졸업한 필자로서는 캠핑이 마치 인류 발전 역사를 압축한 미니어처,, 그것으로 하는 소꿉놀이(?)라고 느껴졌다. 캠핑을 가는 것도 큰 재미이지만, 캠핑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큰 즐거움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 캠핑에 대한 얄팍하고 잡다한 고고학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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