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주위에 명절마다 시골에 내려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시골에 내려가면 쥐불놀이 깡통 한 번씩은 돌려보고, 복숭아나 오이 서리도 하고, 모내기도 해보는 모양이었다. 신도시에 살았던 우리 집은 큰집이었기에 시골에 내려갈 일도 없었고, 시골이야기를 들려주는 친척도 없었다. 다들 도시에 살았기 때문이다. 시골이 궁금했던 초등학생의 나는 시골을 그린 만화 '짱뚱이'를 닳도록 읽었다. 짱뚱이처럼 봄철 들판의 약초를 캐는 대신, 나는 신도시 인공 조경의 클로버를 씹어보며 나름대로 자연을 느껴보려고 했었다. 애초에 경험한 자연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은 언제나 엉거주춤 접근하게 되는 존재였다.
나와 친한 두 친구는 도시 쥐 같은 나와는 사뭇 다른, 자연이 익숙한 시골 쥐들이다. 둘은 인도를 한 달 동안이나 함께 여행하며 세상의 거대함을 엿보고 어딘지 모르게 더 성숙해져 돌아왔다. 같은 기간 일본을 갔던 내 여행과는 결이 달랐던 그 인도는 나에게 두고두고 호기심의 영역으로 남게 되었다. 그 둘 중 하나인 B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남자 친구와 함께 백패킹을 다닐 거라며 거액의 캠핑용품을 질렀다. 나는 속으로 차도 없으면서 별걸 다 산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자연인처럼 돌아다니는 그녀를 보고 '짱뚱이'때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됐다.
이윽고 셋은 함께 캠핑을 떠나게 된다. 무거운 장비와 식량을 짊어지고 고속버스와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 캠핑장에 도달했다. 단풍으로 물든 여주 강천섬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자유로움이었다. 내일의 스케줄을 생각하는 시간이 아깝도록 경치가 좋았고, 소꿉놀이하듯 요리하고 떠들다 적당히 취해 디비 잠들면 그만이었다. 아침의 어스륵한 물안개와, 달큼한 단풍 썩은 내를 맡으면서 깰 생각에 두근거리며 잠들었다.
행복했던 전 날과는 달리, 나는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아침을 맞아야 했다. 날씨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나의 복장과 침낭 때문에 추위로 벌벌 떠는 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침엔 추적추적 비가 오기 시작했으며, 간신히 정리한 짐을 짊어지고 비를 맞으며 정류장으로 걸어가야 했다. 트롤리를 끌고 우아하게 우산을 쓴 사람들, 아늑한 표정으로 차량에 탑승한 채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거칠고 야속한 아침이었다.
자연에서 보낸 만족스러운 시간 대비 육체가 괴로웠던 시간은 51대 49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다행히 잠도 못 자고, 비를 맞은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끔찍했던 시간이 추억을 지배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 날 아침, 벤치 위에서 침낭 하나, 타프 하나로 늦잠을 자고 있던 아저씨를 봤다. 장비가 받쳐준다면 괴로움 수치 49는 어쩌면 5.. 정도로 낮출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캠핑은 장비빨이다. 장비가 하나 누락될 때마다 육체의 고통은 10씩 증가하는 것이 캠핑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캠핑은 장비빨, 이제 남은 건 좋은 장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알아보려니 캠핑의 타입도 가지가지였고, 캠핑 장비도 광범위해 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게 쉽지 않았다. 또 그렇게 알아본 장비의 비용은 선뜻 긁기 어려운 금액대가 부지기수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고, 장비도 없는 나. 탐이 나는 멋진 장비에 피 같은 목돈을 냅다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런 인프라(차, 집)도 없으면서 덜컥 장비를 구입했다가 혹여 장비가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걸 다시 내다 팔고 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거다. 감가상각까지 감안한다면, 어후, 속상할 것 같다. 나는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그 쓰임과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난 짠순이니까. 제대로 캠핑을 다니게 되기까지 캠핑에 대해 나만의 정리를 하려고 한다. 캠핑은 어디에서 왔고, 캠핑장에서 하는 행위는 무엇이며, 그것을 위한 장비들은 어디서 온 걸까.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하기 앞서(=내 차가 생기기까지) 뜸 들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이름은 : '캠핑 야영 잡학'. 현장 경험이 부족한 키보드 워리어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