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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자 Dec 19. 2020

랜선여행, 일상을 OFF 하는 방법

나는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할 대학생 무렵부터 어디론가 열심히 떠나곤 했다. 일상에 너무 젖어 있다보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소중하기보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족들이나 친구들, 그리고 회사로부터 거리를 두는 시간을 종종 만들곤 했다. 일상이라는 포화를 맞고 있는 뇌의 신경망을 아예 꺼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정적인 여행을 택했다. 이것저것 보기 위해 바쁘게 시간을 쪼개는 여행보다는, 천천히 주변을 거닐어보는 방식으로 다니곤 했다.


코로나 19가 닥치면서 여행을 갈 수 없어졌다. 더군다나 우리 집은 아빠를 제외한 모두가 24시간을 복닥이며 한 집에 모여있어야 한다(우리 집은 3대가 함께 산다). 어디 훌쩍 떠나기도 힘든 요즘, 한 집에 모여있는 것이 자주 불필요한 감정적 잡음을 만들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방문을 굳건히 닫고 지내는 편이다.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와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방문을 닫아 가족들과 나 사이의 거리두기를 만들었지만, 근무시간에는 컴퓨터에서 촉수 같은 것이 뻗어 나와 나를 또 다른 세계와 강제로 연결한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환기할 수가 없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잘 때쯤 되면 랜선 여행을 하곤 한다. 주 여행지는 ASMR과 Live City Streaming. 정적인 여행을 좋아했던 만큼, 랜선 여행도 자극 없는, 평온한 방법을 고르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알고리즘에 떠서 혹은 동생이 알려줘서 보기 시작한 콘텐츠지만, 이런 저자극 랜선 여행들이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 글은 내가 즐기는 저자극 랜선 여행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1. ASMR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우리말로 하면 자율 감각 쾌감 반응이라는 말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무튼 두피 끝에서 척추를 타고 흐르는 전율 같은 반응을 말한다. 나는 주로 어릴 때 친구들이 내 머리를 땋아줄 때, 친절한 은행원 언니랑 대화할 때 가끔 그런 걸 느껴서 스스로 변태인지 의심을 하곤 했다. 하지만 ASMR이라는 공식 명칭도 있고, 모두가 다 같이 즐기는 명실상부한 취미라는 것에 기뻤다.


구글에서는 AMSR에 대한 공식 리포트도 냈다. '당신이 들어보지 못한 가장 큰 유튜브 트렌드, ASMR'. ASMR 검색어가 2015년에 200%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2020년까지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고, 특히 잠자기 직전인 10:30 쯤부터 검색이 활성화된다는 리포트다. ASMR 관심지역을 표시한 지도. 아주 조그만 한국이 특히 파랗다는 점이 재미있다.

대표적인 ASMR 콘텐츠로는 액체 괴물 만지는 소리, 조용조용한 말소리(최애), 물건을 만지면서 나는 소리, 화장하는 소리, 귀를 청소하는 소리, 모닥불 타는 소리, 빗소리, 눈 오는 소리, 요리하는 사운드 등등 세상의 모든 일상적 사운드를 차분한 영상과 함께 집중 조명하는 것들이다. 최근(?)엔 아이유가 소곤소곤 말하는 asmr 광고도 등장했다. 개인적으론 아이유의 속삭임 톤에 위로받는 느낌을 받아서, 앞으로 아프면 '그날엔'이 생각날 것 같았다. ㅎㅎ 


필자가 좋아하는 아이유의 경동제약 그날엔 광고


필자는 다양한 ASMR을 즐기지만, 특히 좋아하는 건 자연의 소리를 가져다 놓은 것들이다. 모닥불 타는 소리, 비 오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등등을 듣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 와중에 이런 사운드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 유튜브에 혼재하는 다양한 사운드를 한 데 모아놓은 Sosleep  같은 앱들도 등장했다. 기본 사운드들을 섞어 나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고 잠에 들 수 있는 앱이다.



필자의 동생도 이런 저자극 콘텐츠에 푹 빠져 서로 재밌는 자료를 추천해주고는 한다. 그러던 와중 카카오 맵이 지리산을 대상으로 asmr과 cctv를 제공하기 시작해 깜짝 놀랐다. 실제 여행지의 풍경 영상에 고퀄리티 사운드를 입힌 유튜브다. 실제 제작은 국립공원공단이 한 모양.  BGM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퀄리티다. Youtube Premium은 이런 asmr을 bgm으로 활용하기에 딱이다. 광고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자랑스러운 소비 : 유투브 프리미엄 구독)



2. City Live Streaming

CCTV 영상을 보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실시간이라는 것이 이 영상을 보는 묘미다. 같은 시간대에 저곳을 저렇구나..라는 걸 보며 시간적 연결감을 느낀다. Earthcam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이쪽 계열의 강자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공항, 기차 앞에 달려있는 카메라 등등 종류가 다양하다.



3. City Live Walking

이 종류는 아무 말 없이 걷는 영상이다. 라이브라면 더 좋겠지만, 이 영상은 굳이 라이브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이입이 되는 콘텐츠다. 실제로 저 거리를 거닐면 이 모습을 보겠구나 하는 마음에 보는 영상이다. 나는 주로 내가 어릴 때 지냈던 밀라노와 교환학생을 보낸 바르셀로나 워킹 영상을 주로 찾아본다. 이 영상만 뚫어져라 보는 것은 아니고, 다른 일을 하면서 한편에 틀어둔다.



4. VR Panorama - Roundme

Roundme는 360도 VR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여기서 VR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파노라마 촬영가들이 올려놓은 파노라마도 볼 수 있다. 내가 가본 여행지들을 다시 찾아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VR파노라마는 누군가의 여행을 수동적으로 보기보다는 직접 여기저기 시선을 바꿀 수 있어서 더 재밌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화면을 빙빙 돌리는데, 멀미가 날 수 있으니 주의.


여행에 필요한 것은 오감(시/청/촉/미/후각)과 시공간 아닐까? 랜선 여행은 그중 시각과 청각, 그리고 시간까지 연결해 준다. 진짜 여행으로 느껴지기까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 세 가지는 어떻게 보면 지배적인 감각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여행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방식들로 지금의 답답함을 무마해보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발버둥에 불과하다. 진짜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해방감을 안겨줬던 세계화가 멈춰 속상하지만, 다시 연결되는 날까지 이 친구들로 버티게 될 것 같다. (그때까지 이런 서비스 제공자들은 성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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