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에서 대우주로

삶을 실험하는 자의 우주적 사유

by 노규오 noirora

삶으로 실험해 보는 소우주에서 대우주로
: 개인, 연대, 그리고 세계와 우주로 가는 길에 대한 고찰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든 알리체 로르와커의 영화 <알레고리>가 인상적이었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7살 소년 제이에게 속삭이듯,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사슬에 묶여 환영만을 보아왔다면, 속박에서 벗어난 순간 무엇을 마주할까?
AI 시대, 우리 모두 직업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번아웃 한 번 빡씨게 맞고 나서 더 잘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물론 엄청 고통스러울 거다... 해방 뒤엔 번아웃과 무너짐이 있었고, 13년 전 숨만 의지해 버티던 내 모습이 겹쳤다. 그때를 생각하며 호흡에만 집중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언어 들을 찾아가며 본연의 감각을 되찾았다.

빛을 보고 나와 신인류의 길로 들어설 때,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분석하는 건 나의 나침반이었다. 왜 내가 끌리는 예술가들은 모두 2차 세계대전을 통과한 세대일까. 고다르, 카락스, 누벨바그… 허무의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실존적 감각은 아무 일 없는 듯한 지금, 나에게 미스터리로 다가왔다. 그 분석은 마치 아이큐 테스트처럼, 과거와 현재, 나와 맞닿은 운명들을 내 관점으로 해독하는 과정이었다.

최근 영화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레 우주적 관점이 나왔고, 칼 세이건의 말이 소환되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이미 소우주 안에서 통합한 코드들을 말하고 있었다는걸.

개인의 삶은 하나의 소우주다.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창조의 조건이었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처럼, 나의 시선과 선택은 현실을 바꾸어왔다. 외부 구조에 눌린 시간조차 도약의 압축 에너지가 되었다. 문득 미술공방에서 박사님이 외치던 “규오씨~ 응축하세요!”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스스로 우주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 칼 세이건

내 삶과 작업도 그렇다. 소우주로서의 개인은 결국 대우주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택한 하나의 목소리일 뿐이다.

영화 <콘택트>의 엘리 애로 웨이는 누구도 믿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신호에 집중한다. 그것은 과학이자 동시에 내면과 우주 사이의 대화였다. 나의 삶과 창작도 그렇다. 언어와 구조를 넘어선 감각으로 세상과 교신하는 것,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닿는 사건이다.

호기심을 따라 어디든 갔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했다. 홀로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패턴들을 읽어내는 힘이 생겼다. SNS 조차 모스부호 같은 기지가 되어 미시적 관점을 읽고 해석하게 했다. 상상력과 창작은 외부 구원이 아니라 내면 실험에서 풍부해졌다. 결국 개인이라는 소우주는 창조자가 된다.

우주는 직선적 질서가 아니라 얽힘과 중첩 속에서 움직인다. 인간의 관계와 예술도 그렇다. 보이지 않는 감정과 무의식이 벡터가 되어 판을 흔들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내가 경험한 무의식과 우연, 운명속 전복과 통합은 양자적 리듬에 있었다.

삶을 하이브리드 서사로 통합한 뒤, 나는 실험과 극영화,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서 있다. 서사보다 이미지를, 대사보다 사운드를, 리얼리즘보다 초현실적 장치를 더 끌어당긴다.

로르와커의 또 다른 영화<키메라>를 보며, 우주적 미학이 닿아있음을 느꼈다. 평화로운 장면 속 불협의 음악, 긴장된 순간을 가르는 낯선 클래식, 흔들리는 시선, 속삭이는 목소리, 꿈과 현실이 겹쳐지는 환영… 명확하지 않지만 치명적이고, 홀린 듯 몰입되며 아름다웠다. 키메라의 주인공은 우주적 감각으로 유물을 찾아낸다. 인간은 우주의 산물인 동시에, 우주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라는 것, 그렇다면 예술은 그 거울 위의 빛, 우리를 가시화하는 투명체,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영화<행복한 라짜로> 속 라짜로의 본성은 맑디맑은 ‘선’ 그 자체였다. 모두가 그를 이용하고 무시하더라도, 그의 무해한 성스러운 ’혼‘은 성자와도 같았다. 고통과 분노, 좌절조차 예술로 통합한 끝에 본질을 선택한 존재처럼.

그 본질은 언제나 관계와 존재를 넘어선 가치, 즉 연대로 수렴된다. 그 연결의 가장 순수한 형식이 사랑과 평화다. 중력에 저항하며 어느덧 우주에 도착하면, 결국 사랑과 인류애로 바뀌는 것^^^
근데, 또 병행해야 살디…너무 평화로우니 없을 無가 되어버리는 너낌이다. 누벨바그도 그래서 일어 났겄딩, 역시 창작 영감의 원천은 ‘악’에 있다는생각들,,^^^

그래서, 3차전을 다시 시작한다..
과거 25년, 10년, 그리고 앞으로의 5년

소우주에서 대우주로의 실험을 ~~


25/08/25

https://www.instagram.com/p/DNxOINzZDT7/?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작가의 이전글둥지를 떠나 세상을 놀이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