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생존, 그리고 예술의 불씨
전장에 핀 꽃, 너는 나를 불태워 - 운명과 예술에 대한 사유
세계 전쟁터에서 활동하는 여성 예술가들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은 역시 생존.. 다큐에서 말하는 전쟁은 여성의 몸을 가장 잔혹한 무기로 삼아, 한 세대와 그다음 세대까지 무너뜨렸다. 이는 생각보다 은밀하게 진행되었고 가장 파괴적이었다. 그러나 이를 은폐하지 않고, 여성들은 자수를 놓아 해당 사건을 기록했고, 예술가들은 폐허 속에 상징을 세웠다. 선언문으로 그리는 점묘화, 집 잔해로 만든 오브제, 거리에서 울린 오르간, 치유와 회복을 위해 독창적 방식으로 금기에 맞서는 그들의 작업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언제나 ‘내가 선택한’ 경계에 서있었고, 거기에서 본 것은 죽는 곳에서 살고, 사는 곳에서 죽는 존재들, 균형을 잡고 없는 곳에서 있는 것을 찾아가며, 고립이 되지도 사회에 갇히지도 않을 선택들, 수많은 의문들, 그리고 억눌린 목소리를 지우지 않으려는 나만의 작은 실험과 기록들, 마음에 집중하면 보이는 선택지들, 그것이 생존이고 존재의 방식이었다.
고대 그리스 최초의 여성 시인 사포의 시를 담은 문학적 극영화 <너는 나를 불태워> 몽환적인 꿈속 같은 영상 속 그녀의 사랑은 전장과도 같았을까. 시로 기록한다는 것은 파멸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무너진 폐허가 아니라, 층층이 쌓여 올라간 성묘였다. 불은 태우면서도 불씨를 남겼고, 사랑의 흔적은 혼의 상징물이 되었다. 그 상징물은 예술, 예술은 곧 사랑이 본질임을 알게 한다.
그렇게 간신히 찾은 평화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유리벽을 마주할수록 외부의 힘으로 인해 표면은 갈라졌고, 그때마다 시선은 넓어졌다. 그리곤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존재와 존재로서 만나 사랑하는 것, 끝내 살아남으려는 본능, 아모르파티. 발길 따라가다 보니 이런 내가(?) 되어 있었고, 단지 사랑하고 싶었을 뿐인데 하루하루가 낯설고도 신기하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하나... 내가 보는 세상이 진짜라고 말하고 싶었다. 각종 사회 구조에서 튕겨져 나와, 감정과 기억이 리셋되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순간, 나는 아버지를 닮아 있었고 동시에 어머니의 피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를 지켜온 섬세한 침묵과 격정적인 피. 모순된 두 힘은 내 안에서 교차하며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홀로 선 길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그 흔적 덕에 나는 여전히 쓰고, 그리고, 꿈꾼다.
그렇기에 허무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예술만이 살길이란 생각이 든다. 지나온 경험 속에서 아닌 건 아닌 게 확실하다 보니 선택지는 뾰족해졌다. 그리고 삶이 평생 남아있으니 급할 것도 없고, 운명에 맡기며 그저 숨 쉬며 존재해 보고자 3차전에 들어섰다. 과거의 패턴 속에서 이미 알고 있다. 국내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더라도 규모만 다를 뿐 산업구조와 닿아있다면,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 본질이 다였다.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것, 무위, 실존, 모두가 귀하다. 처한 구조와 정서적 지능이 지배적인, 영성으로 느낄뿐이다.
언어를 찾아야 한다. 마음을 믿고,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사랑이야말로 가장 귀한 존재에 이유임을 안다. 그것에 깨어있는 자들은 어딘가에 귀속되더라도, 틈새마다 별처럼 빛을 품은 존재들이다. 그 별빛은 어둠속에서 은하를 이루고, 새로운 중심이 되어 세상에 숨을 불어 넣는다.
전장을 닮은 사회구조 속에서도 불씨는 남는다. 책상 위 문장, 새벽의 깨달음, 무대 위, 밖 상관없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 그것들이 나를 지탱했다. 개인의 고백을 넘어, ‘진격의 거인’의 3중 벽이 무너지며 안과 밖 모두에게 인류애적 서사로 흘러간다.
진실은 우리가 만든 어둠에있다. 상상하고 찾고 또 찾았고, 없으면 만들었다. 유레카! 예술에 진심인 자들, 뜨거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서로의 비상등이 켜졌다. 끝을 보지 않았고, 그 순간만은 영원할 듯 사랑했다. 모든 것은 구조에 흐름 속에서 모순되어 파편화되었으나, 진심인 조각들은 감각과 기억으로 남아 스스로를 안내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선택하는 자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장 속에서 희미해질지라도, 그때 다시 의식을 찾을 수 있도록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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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하이브리드 된 삶 위의 예술은, 새로운 조각들을 찾아가며 흐르고, 예고 없이 열린 다음 장면은 오래전부터 이미 피어오른 결이었다.
25/10/12
4차전 평화롭게 진입
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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