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이키드 런치>, 언어와 권력의 환각
“실수란 없어요. 우린 서서히 죽이고 있었던 거죠.”
영화 <네이키드 런치>에서 나오는 대사 이 한 문장, 끝내 나를 덜컥 내려앉게 만든다. ‘입술로 말하진 않지만 이미 의도하고 말한 것과 같다며’, 말과 입술이 일치하지 않는 복화술의 장면은 마치 뼈만 남은 서사의 바닥에서, 진실이라는 독기를 풍기며 전달되는 듯했다.
영화는 문학을 읽지 않는 이들에 대한 날 선 농담으로 시작된다. “본성만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욱더 알몸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 선언은 곧, 이 영화의 핵심이자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과 상징, 환각과 리얼리티가 섞인 뒤죽박죽의 세계,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 세계는 지금. 어쩌면, 실제 살아가는 현실보다 더 잔인한 은폐된 현실일 수 있단 생각도 해보았다.
전형적인 서사 구조는 없다. 명확한 인물의 성장도, 갈등의 해결도 없다. 선형적 시간마저 배제된 이 기이한 여정은, 오히려 ‘구조 그 자체에 중독된’ 현대사회의 위선과 폭력을 비트는 블랙코미디다.
문득, 일론 머스크 때문에 최근 읽기 시작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떠올랐다.(어렵다..)
영국식 블랙 유머, 비논리적 서사,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
<네이키드 런치>는 바로 그런 문학적 흐름과 닮아있다.
주인공 ’윌리엄 리‘는 살충제(마약) 직원으로, 마약 중독 상태에서 아내를 총으로 오발하며 살해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후 그는 작가가 되고 글을 쓰며 속죄하려 하지만, 현실과 환각의 경계는 점점 무너진다. 벌레로 변한 타자기, 요원으로서 임무를 지시하는 환각 속 생명체, 복화술로 대화를 대신하는 기묘한 인물들, 그의 세계는 환각적으로 이루어져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그 속에서 더 진실한 구조가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환각은 단순한 마약적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언어의 권력, 위계와 구조적 폭력에 대한 은유이며, 존재를 갉아먹는 권위에 대한 철학적 저항이었다. 그의 여정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감각, 죄의식, 무기력함 그리고 체제의 유린을 드러내며 진행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연약하고 순수한 퀴어 청년이 미끼의 상징으로 보이는 앵무새에 매료되자, 위선적 언어로 꾀어내어 앵무새가 많은 본인의 침실로 유인하고, 그것을 알게 된 주인공 리가 그의 환각 세계를 강화 시켜주는 마약 한 병을 급히 마시고 그 장면을 보게 되는데, 해당 장면에선 비계 덩어리가 가득한 거미와 같은 끔찍한 몰골의 외계 생명체인, 위계적 상징에게 청년의 뇌는 침범당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듯한 형상과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장면이다. 단순한 기괴함을 넘어 이 장면은 순수한 예술가의 혼과 정신, 감수성이 체제와 권위에 의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은유로 느껴졌다.
입술로 말하지 않아도 의도는 환경적 영향을 미치고, 한 구조에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되돌릴 수 없는 시스템에 의해 잠식되며, 아주 조용히 파괴된다. 이것은 곧, 언어의 살해이며, 무언의 권력이 작동하는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마지막, 리는 죽은 아내 조앤을 다시 불러내고, 또다시 이마에 총을 쏘며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 그 반복은 하나의 미로다. 현실과 환각의 분기점이 아닌, 순환 구조로서의 무의식, 죄책감과 중독, 권력과 속죄의 굴레를 상징하며, “진실을 마주하려는 자는 끝없이 환각을 통과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 영화는 끝내 어떤 것도 결론짓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의 껍질을 모두 벗겨내며, 오히려 가장 날것의 감정이 돋아난다. 죄책감, 중독, 예술과 통제, 위선과 권력, 이율 배반적 언어와 리의 언어적 고립.
우리는 보이는 세계에서 지금은 어떤 언어로 말하고, 어떤 구조를 믿고 있으며, 무엇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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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윌리엄 S. 버로우즈의 동명 원작을 충실히 해체했다. 그는 서사의 질서를 흩트리고, 환각의 감각을 문학적 영상으로 번역한다. 무의식의 언어와 억압된 본성을 대변하는 것 같은 기괴한 생명체들, 흘러가는 대사들, 섹슈얼리티의 경계와 도치적 흐름들, 그 모든 것이 과장된 풍자로 묶여 하나의 ‘문학적 필름’으로 탄생했다.
그 기이한 스크린 위에서, 이렇게 묻고 있었다. “이건 환각일까, 현실일까?” 이 영화에서의 진실은 늘 환각 속에서 웃고 있다.
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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