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이코>에서 <기생충>까지, 구조를 보는 눈
영화 후시 작업팀들과 들은 서스펜스 흐름들로 분석한 히치콕<사이코> 영화 강의에서 ‘묻지 마 사건’처럼 느껴지는, 지하방에서 올라온 <기생충>의 그 인물 ’근세‘. 그들의 열띤 토론 속에, 나는 대화의 잔향을 들었다.
“지상에서의 시선을 반전시켜, 지하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했다면 어땠을까?”
사회에 존재할 수 없었던 기구한 삶의 환경 그리고 감정의 짓눌림..
그때 문득, 영화<향수>의 장면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죽은 생선들 틈에 버려진 아기.
잘려 나간 생선 머리들과 버려지는 내장들,
비릿하고 코를 찌르는 참혹한 환경 속에서,
탯줄도 끊기지 않은 채 태어난 생명.
후각의 감각이 유난히 비범했던 한 아이,
그 비릿한 냄새를 세상으로 알고 태어난 것이며,
불운한 태생적 존재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태생과 닮아 보이는 근세는 결국 죽음의 문턱 앞에서, 모든 구조에 대한 분노를 폭발하며 금기를 향해 자폭하듯 돌진한다.
남은 것은 유한한 시간뿐이고, 더 이상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죽음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죽음의 삶을 선택하면 어떠한 삶을 가지게 될까? 현실이 아닌 영역에서 현실을 찾는 삶을 선택한다면?
비선형적으로 움직이는 시간들.
계속해서 감정은 내 운명에 수레바퀴에 세팅된 관계들에 따라 도돌이표를 그리며 반복될 것이다. 그것은 몇 년이 되기도 하고, 점점 가속화되어 몇 달, 며칠, 단 하루, 몇 시간, 심지어 단 1초의 간극 속에서도 변화가 이루어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속화되어 흐르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것은 감정에 흐름이고, 그 흐름들을 붙잡고 몰입하여 명징하는 것이 영감이며 그것은 ‘언어’다. 언어는 각자의 시간 흐름 안에서 균열을 내기 시작하고, 이는 곧 의식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그 확장 속에서 연결되지 않았던 삶에 서사들이 연결되며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이를 거듭할수록 더욱 촘촘하게 연결된다. 그 연결들은 새로운 외부 자극을 받을 때마다 코드들을 엮어 해석하며 본질들을 읽어낸다. 이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방향성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
현실 경계 밖의 것을 선택하고, 현실에 없는 것을 찾는다.
그렇기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의 부정이자 전제다. 하나는 경계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경계를 부수며 ’함께 확장한다.‘
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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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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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Film 경계 밖에서 밀려온 이야기 "A Story that came from beyond the boundaries"ㅣDirected by 노규오 (noir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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