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인생에 호구가 되겠다.
두 번째 이유는 나는 호구였다.
자존심 좀 부려보자면
회사에 너그러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마, 회사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
누구든 입을 모았을 거다.
저 사람은 호구라고.
그 호구는 야근에 중독되어 있었다.
분기별로 직원들이 직원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첫 평가에 내가 최우수 직원으로 뽑힌 적이 있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직원들이 보는 나는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에 열중하는 사람.
그렇게 야근을 하는 호구가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야근을 선호하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에 열심히 하고 퇴근 시간에 딱 퇴근하고.
업무시간에 느긋하게 일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효율 없는 야근을 지양했다.
(아 물론 나는 호구라서
업무시간에도 모든 걸 불태우고
퇴근 후에도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하는 호구였고..)
혹, 무조건 야근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야근신청을 통해서 정당하게 자신의 노동에 대한
그 수당을 받아갈 수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호구는 야근 수당을 신청해본적이 없다.
호구에게 자신이 하는 야근은 일반적인 야근과
개념이 틀리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호구는 굳이 자신의 할 일을 다 끝내 놓고도
다른 이의 일을 체크해 주거나,
회사 내에서 어렵고 문제가 되던 일들을
혼자서 해결하기 위해 매일 야근을 했다.
그날 꼭 해야 하는 일을 다 못한 경우는 아니지만
다른 이를 위해서, 회사의 빠른 성장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야근이라 생각하며
이런 이유로 야근 수당을 신청하는 일은
회사에 부담을 주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공짜 노동을 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
그 공짜 노동은 결국 몇 년 동안 길게 이어졌다.
호구의 호구짓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차 개인차량을 사용하는 일도 있었는데
거기에 대한 주유비를 요청한 것도 없었다.
물론, 대표님은 킬로당 주유비를 요청하라 말씀하셨지만 나는 알겠다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고작 몇천 원, 만원 초반대의 돈 정도는
회사를 위해서 쓸 수 있다고 건방진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고작 월급쟁이가 누굴 위한다는 건지...
점심시간에도 호구의 호구력은 상승했다.
정해진 식대 비용을 채우기 위해서 비싼 메뉴,
추가메뉴, 식사 후 커피까지 뽑아먹던
직원들이 있었던 반면
호구는 회사 돈으로 밥 먹는 것도 눈치를 봤다.
가끔은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기도..
이유는 있었다.
항상 성장하고 있었던 회사가 롤러코스터 타듯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매출과 순수익을 다 볼 수 있었던 나는
회사에게 미안했다.
내가 좀 더 잘했다면, 내가 좀 더 아는 게 많았다면,
내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했던 직원이라면
내가.. 내가.. 내가 문제구나.
어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통의 직원들은 회사에서 그 문제를 찾는다.
직원으로는 당연히 일반적인 반응이다.
회사의 일은 결국 오너의 선택으로 진행이 되고
직원들은 오너의 선택으로 움직이는 장기 말이다.
방향을 잘못 들어섰다면 그건 그 선택을 한 회사의
선택 미스지, 내가 잘못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호구는 생각이 남달랐다.
회사가 선택을 잘못하든, 회사가 방향을 잘못 잡든,
회사가 시기를 놓쳐도 능력 있는 직원이라면 결과를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능력이 없는 걸까?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안되는 걸까?
호구는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았고
스스로 망가지기를 자처했다.
호구에게 회사는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게 하여,
마치 숨 쉬는 방법조차도 잊어먹은 사람처럼 만드는 곳이었다.
멍청한 호구는 살기 위해서는 회사를 나와야 했다.
내 인생보다 회사를 위해 더 열심히 일했고,
한낱 월급 쟁이면서 감히 건방지게 회사를 위하던
호구는 그런 오랜 회사 생활에 매 순간 진심이었다.
그래서 호구는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아마 회사 생활을 다시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지쳐버린 호구는 종종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내 인생에 진심을 다하겠다.
엄하게 채찍질만 하던 내 인생에 너그러워지겠다.
이제는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보겠다.
타자를 타닥거리고 있는 지금이 너무 즐거운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