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면서 너무 대표처럼 일했어.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왜 회사를 못 그만두는데?
11년 차 직장생활을 하던 중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힘들었던 나에게 2주의 휴가가 주어졌을 때였다.
일-집-일-집 밖에 몰랐던 생활에서
정당하게 주어졌던 휴가는 여름휴가뿐이었었고,
갑작스럽게 생겨난 2주간의 휴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은 그동안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포기했던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잠.. 영화 보기.. 잠.. 그리고 또 잠..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항상 하는 일들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면 평일..
평일 출근길에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고 싶었지?
...
여행이었다.
당장 내일 출근을 걱정하지 않게 된 나는 떠나야 했다.
에어비엔비 어플을 깔고
무작정 산속에 위치한 숙소를 검색했다.
그냥 사람들이 없었으면 했다.
조용한 자연 속에서 힐링이
지쳐있는 나를 치유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였다.
때마침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친구가
1박 2일이라는 시간을 나를 위해 흔쾌히 써주기로 했다.
"내가 데리러 갈게 거기 있어"
그를 태우러 가는 길은 멀었지만
2시간이 되는 거리에도 나는 즐거웠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오랜만의 장거리 드라이브는 그 자체로도
여행의 설렘을 느끼게 했다.
혼자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느끼다가도
좋아하는 노래를 시끄럽게 귓가에 때려 넣으며
혼자 고래고래 노래도 불렀다.
비로소 나를 힘들게 하던 일과 나를
분리시키는 순간이었다.
"야 여기 길 잘못 든 거 같은데?"
네비를 업데이트하지 않아서 조수석에 앉아
핸드폰 네비를 같이 봐주던 친구가 말했다.
길은 복잡했고 몇 번이나 다른 길로 들지 않게
조심하라는 안내를 들었다.
이리 돌고, 저리 차리를 빼내었다가 다시 직진을 하고
숙소를 제대로 찾지 못해 몇십 분을 헤매었지만
그 과정도 재미있었다.
겨우 산속의 숙소에 차를 대어 두고
얼마 되지 않은 짐을 정리했다.
친구는 미리 준비해 온 부추전을 구우며 말했다.
"저기 인스타감성으로 만들어 놓은 평상에서 막걸리랑 같이 먹으면 기가 막힐 거다"
정말 그랬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그동안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줄 만큼 시원했다.
친구가 손수 준비해 온 부추전과 막걸리로
세간의 떼를 씻어내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음식의 맛은 눈앞의 풍경이 조미료가 되어
그 깊이를 더해주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해가 지고 있었다.
파릇하던 신선한 풍경은
어느새 주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든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말하고 있었다.
'도시에 썩은 인간들아. 이게 자연이 주는 위대함이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일 때문에 그렇게 힘들면서 왜 퇴사 안 해?"
뿌연 연기가 일어나는 숯불 그릴 위에
준비해 온 고기를 올리며 친구가 물었다.
그동안 내가 회사에 모든 걸 받쳐 진심을 다했으며,
부족했던 시스템과 환경에
내가 얼마나 갈려나갔는지 친구는 알고 있었다.
나는 웅장한 돌산들 사이로
붉은 해가 점점 더 빠르게 몸을 숨기는 것을 보면서
대답했다.
"그러게.. 돈 때문인가.."
나는 솔직히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내가 누리고, 먹고, 즐기고, 주변을 챙기고..
이런 것들에 돈은 필수였다.
왜 그러지 않는가.
유튜브만 보아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꼭 필요하겠구나 라는.
"흠흠, 그러면 돈 때문에 인생을 사는 겁니까?"
"......."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친구는
날카롭게 질문을 덧붙였다.
"돈이 중요하다면 돈 주는 회사는 거기 말고도 많지 않습니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일 때문에 힘들어 미쳐가면서도
회사를 왜 그만두지 못하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었다.
일이 자존감이 되어버린 나는
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는 의미가 없었다.
그 어느 회사를 가도
여기서 잃어버린 내 자존감을 영원히 찾지 못할 거 같았다.
그러면 여기 계속 있으면..
찾긴 찾을 수 있을까 내 자존감을?
치열하게 살았던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가 온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절대 하지 않을 거 같았던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 준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퇴사를 한다고 해도 회사는 못 다닐 거 같아
퇴사를 결정하기 전,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나는 회사와 맞지 않는 직원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