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갓생? 대신 소맥을 마셨다.

직장인의 운동은 헬스장 카드 긁을 때 끝났더랬지

by 햅피백수
갓생 살아보려 헬스장을 끊었고,
운동은 카드를 긁으며 끝났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직원들은

각자의 제2인생을 살기 위해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들의 제2인생은 대부분이 운동이었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헬스장은 직원들이 기피하는

1순위 운동이었다.

"어차피 3개월 끊어놓고 다 못 가요"

이미 헬스장에 3개월 기부를

몇 번이나 했던 직원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상담만 받으러 갔는데

3개월 끊게 되는 마법 같은 헬스장.


대신 직원들이 퇴근 후 즐기는 운동은

헬스 말고도 다양했다.

얼마 전 테니스를 시작했다는 직원은

항상 테니스채를 어깨에 메고 출퇴근을 했는데

그 모습은 꽤 멋있어 보였다.

흔한 말로 간지가 났다고나 할까..

마치 테니스채조차도 패션의 한 부분이 된듯했다.


누군가는 크로스핏을 했다.

술을 좋아했는데, 크로스핏 후 먹는

술맛이 훨씬 맛있다고 했다.

나 또한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낸

술괴물로 그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매월 진행하던 문화회식으로

단체로 그 직원이 다니는 크로스핏을

1일 체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종이인간 같은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젖은 종이가 되어 바닥에 붙어버렸다.

그 수업이 끝난 후 다 같이 먹었던

돼지국밥과 소맥은 내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라면하나도 다 못 먹는 내가 돼지국밥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들이마시는 수준으로 비워냈고

소주만 먹던 나는 소맥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러니까, 원샷한 첫 소맥은

열띤 가뭄으로 말라버린 땅과 공기에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상황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배려심 없이 우악스럽게 쏟아져 내리는데도

오랜만의 비에 축축이 젖은 세상은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생기를 찾는 것처럼.


흠뻑 흘려버린 땀으로 나는

온몸에 물기하나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고,

버쩍 말라버린 목구멍에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맥은

지쳐 쓰러진 종이인형을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다.


거기까진 좋았지.

문제는 그 뒤로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소맥은 끊지 못했다는 거다..


이미 출근하기 전부터

아침 수영을 다녀오는 타입도 있었다.

아침식사도 포기하고, 지각하지 않을 최대의 시간까지

이불로 꽁꽁 싸매 잠을 자는 나는

꿈도 꾸지 못할 갓생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사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

나 또한 꺼져가던 갓생에 대한 촛불을

다시 살리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나는 다짐을

또 하곤 했다.


"내일은 꼭 아침에 30분이라도 러닝하고 출근할 거야!"


저녁을 꼭꼭 씹어 먹는 것처럼 야무지게 거짓말하는

내 말에 남편은 가만히 고개 끄덕이며

장난스럽게 응원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뻔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그래그래, 파이팅이야!! 파이팅!!"

"조아 쒀!!! 한잔해!!!!"


의지의 하이파이브를 해도 모자랄 판에 먹고 있던

소맥잔을 들어 시원하게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날 아침,

온몸을 꽁꽁 싸맨 이불은 풀어질 줄 몰랐다.

남은 숙취로 골골 거리며 씻기 위해

비적비적 화장실로 향할 뿐이었다.


출근 전, 퇴근 후

내게 갓생을 살만한 의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출근 전에도 피곤하고 퇴근 후에도 피곤하고..

갓생을 위해 퇴근 후

다시 생기를 찾는 직원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저 에너지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퇴근 후 직장인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직원들은 눈이 부실만큼 빛났다.


나는 이미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영혼까지 다 태워버려

텅 비어버린 동태눈깔을 꿈뻑일 뿐이었고,

대신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그들을

응원하는 게 내 퇴근 루틴이었다.

나에게는 저런 젊음도.. 에너지도.. 나이도..

활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아, 나이 때문은 아닌가..

그냥 어느새 찌들어버린 일상에

내 의지가 너무 잘 섞여 버렸다.

모나는 맛 하나 없이 맛있게 잘 섞인 믹스커피처럼.

그저 그렇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직장인이 되어 그랬을 수도..

그러고 보니 나 저 나이 때 어땠더라..


참 어려웠다 퇴근 후, 갓생 살기.

오늘부터 다이어트한다 말해놓고 야식을 검색하거나

담배 벅벅 피워대면서 올해 꼭 담배 끊는다 말하거나

약속장소에 거의 다 왔다고 하면서

이제 택시를 잡고 있다거나

그런 대표 거짓말들처럼..

퇴근 후 갓생 살아야지 하면서

회사 하나 제대로 다니는 것도 벅찼던 나날들..


오늘은 꼭 덜 열심히 일해서 남은 에너지로

퇴근 후에 운동해야겠다 생각했으면서

정작 출근해서는 뜨겁게 일하고 하얗게 타버린..

하루하루가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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