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게 서러웠던 나날들
자야 하는데, 자는 법을 까먹은 거 같아
건강한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취미활동, 운동, 자기계발 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요한지 알면서도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건
'잠'을 잘 자는 일이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직장인으로 보내던 내가
이상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건
'잠'을 못 자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일과 일상을 분리하지 못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다음날 출근을 무서워하게 만들었고
그 불안감은 잠을 자지 못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퇴근 후, 얼마 남지 않은 하루는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금방 지나간다.
씻고, 밥을 먹고, 남편과
재미있는 예능 한편 보았을 뿐인데..
"여보 오늘도 고생했어, 잘 자"
벌써 내일을 위해서 자야 하는 시간이 왔다.
짧은 굿 나이트 인사를 건네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내 지친 하루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긴긴밤으로 하루가 연장된다.
눈을 감는 순간 온몸의 전원이 깔끔하게 꺼지긴커녕
머릿속의 발전기들이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업무는 왜 잘 안 됐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
혹시 이런 이런 부분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닐까?
이런 부분들을 좀 더 보완해 볼까?
아! 그러면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면서
벌떡.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다.
자고 일어나면 기껏 생각한 아이디어가 사라질까 봐
굳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지금까지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 메모해 두고
핸드폰을 놓기 전 지금이 몇 시인지 한번 확인한다.
'어라.. 왜 벌써 2시간이 지났지..?'
자야 하는 시간을 굳이 정해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에는 자야
하루에 6시간은 잘 수 있으니
꼭 이 시간 전에는 잠을 자야 해!
나름의 규칙 아닌 규칙을 세워두고 있었던 터라
그 규칙을 위반하는 시간을 보게 되면
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잠을 자는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2-3 시간을 너무나도 쉽게 집어삼킨다.
제시간에 자지 못해
얼마 잠을 못 자게 되었다는 압박감은
'왜 나는 잠을 자지 못하고 있을까' 자책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이제 무의식에 묻어놓았던
온갖 잡생각들이 오랜만에 동창회 하듯
순서도, 맥락도 없이 우수수 쏟아 나온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후회다.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
그때 내가 말을 이렇게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사람은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여행 갔었을 때 거기도 한 번은 가보고 올걸..
나랑 불편한 일이 있었던 그 사람은 뭐 하고 살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의미 없는 날에 대한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며 또 1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아차, 이러다가는 진짜 3시간도
못 자게 생겼어 큰일이다!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 잠을 어떻게 자는 거더라..?
마지막으로 고전적인 방법을 결국 꺼내어든다.
양 한 마리, 두 마리, 100마리, 500마리..
아 왜 벌써 500마리까지?
머릿속에서 양 수백 마리를 울타리 너머로 내보냈는데
왜 나는 잠을 못 자고 있는 거지..?
그러다 시간을 보면 또 2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쯤 되면 피곤해 죽겠는데
머릿속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과
내일이 오는 것에 대한 불안감,
잠을 자기 위해 노력했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사라져
얼마 자지 못한다는 두려움..
분명 힘들었던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잠을 못 자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 몸인데도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에
서러워진다.
'잠'이라는 입력값을 작성하면
바로 실행이 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라는 또 쓸데없는 생각으로 눈을 감아본다.
언제 잠들지 모르는 긴 밤을
스트레스로 혼자 싸운 뒤, 내가 지금 잠에 든 건지
아직 잠을 자려 노력하는 건지, 경계가 희미 해질 때쯤
띠리리리링 알람이 울린다.
핸드폰을 찾는 손이 신경질 적으로 알람을 끄고
짜증은 탄식이 되어 입술새로 흘러나온다.
하..
오늘도 못 자고 출근이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내가 잠을 못 잤다고 해도 아침은 온다.
그냥.. 또 와버린 아침에게 강제 인사 당하고
어떻게든 출근해 보려
꾸역꾸역 마음을 추슬러본다.
그땐 그랬지, 요즘은...
겨울을 맞이해 뜨끈한 코타츠를 거실에 선물해 줬다.
'누워 있을 수 있는데 왜 앉아 있죠?' 생각하던 내가
요즘은 코타츠에 하반신만 넣어둔 채
소파에 기대앉아 입 벌리고 자고 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드르렁 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