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매일 조금씩 천천히
"팀장님 회사 올 때 요즘 이런 생각 들어요"
입을 떼던 그녀의 모습은 매우 지쳐 보였다.
입맛도 없어서 점심을 거르던 그녀는 매우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 중 한 명이었다.
"그냥 누가 실수로 한번 밀쳐줬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차에 치이는 거예요."
"...."
"그러면 출근 안 해도 되잖아요.."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직장인이 번아웃이 왔을 때
가장 흔하게 하는 생각 이랬던가.
회사에 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출근 중 교통사고가 나는 건 그저 작은 이슈가 되는 것이다.
번아웃이 오지 않은 평범한 상태에서는
당연하게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끔찍한 사고로 인식을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마음을 다쳐버린 상태에서는
이런 사고도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
더 다른 말도, 내가 뭘 해줄 수도 없었서
혀끝이 씁쓸했다.
입사 초기만 해도 활발하고
어느 업무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던 그녀는
'정병 걸리지 않는 직원들' 사이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년 전
똑같이 빛을 잃어간 또 다른 직원을 떠올리게 했다.
"팀장님.. 저 정신과 상담도 받고 왔어요"
"....!"
"그 정도로 너무 힘들어요. 그냥 그만두고 싶어요."
"아니, 내가 좀 더 노력할게. 너 일하는데 힘들지 않게 내가 더 해볼게.."
그때는 좀 더 다양한 말을 해줬던 거 같다.
그 번아웃이라는 게 누군가 옆에서 도와준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몰랐을 때라..
그래서 나는 내가 더 고생하면
그녀의 번아웃이 해결될 거라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더 많이 일했고, 더 시행착오 했고, '정병 걸리지 않는 직원들' 사이에서 지켜주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퇴사했고..
웃음을 잃은 줄 알았는데 퇴사하는 날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퇴근길을 나서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 뒤로도 다양한 직원들을 많이 만나고
함께 업무를 진행했고 지켜본 결과
확실히 '정병 걸리는 직원'과 '정병 걸리지 않는 직원'의 특징은 존재했다.
다양한 특징들이 있지만
음.. 딱 한 가지로 정리해 보면
'정병 걸리는 직원' 들은 계속 뭔가를 하려 한다.
그것도 진심을 다해서,
더 완벽하게 잘 해내기 위해서.
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꾸 새로운 의견을 낸다.
누군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걸 보았을 때면
같은 월급 받으면서 이렇게 일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며 자신의 의견을 목소리 낸다.
'정병 걸리지 않는 직원' 즉, 빌런들과
일을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불만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우선 눈앞에 놓인 일을 먼저 해결하고
그 뒤에 불만을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우선 한다는 거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기간이 빠듯하든,
불리한 업무 환경이든
주어진 그 상황에서 일단 한다.
그것도 최선을 다한다.
왜냐하면 잘 해내야 한다는
디폴트값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바뀌지 않는 환경에 대한 허무함.
결국 혼자 일을 다하고 있다는 자괴감.
이렇게 노력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상실감.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 현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은
하나씩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몰아치는 파도처럼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키기 때문에
깊은 심해에 빠져 숨을 쉴 수 없다는 걸
인식할 때쯤 알게 된다.
내가 지금 힘들구나, 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이미 그게 많이 쌓였고
그래서 무너지기 직전이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미 정병이 온 것이다.
마음의 병.
반면, '정병 걸리지 않는 직원'들은 한마디로
지 쪼대로 한다.
그것도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걸
인식하지도 못한 채로.
일할 때 자기만 편하면 된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고집만 피운다.
불평불만이 멈출 줄 모른다.
일을 하기도 전에 무조건 '안된다'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디폴트값이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게 없다.
하다가 안되면 그냥 안되는 거다 이건.
다른 방법이나 시도할 생각조차 안 한다.
남 탓을 밥먹듯이 한다.
나? 열심히 한 거 같은데 안된 거면 회사 책임이지 뭐.
틈틈이 본인들을 위한 휴식을 매우 잘 챙긴다.
내가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일하면서 30-40분씩이나 사라진 직원들 찾아오라고 대표님한테 한소리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책임감이 없고, 자신에 대한 평가가 매우 유하다.
사실 나는 잘하는 사람인데 잘못한 이유는
회사가 못났거나 같이 일한 직원들이 못난 거다.
업무는 마무리 못했지만 퇴근시간이 왔으니
에라 모르겠다 퇴근이나 하련다.
그들은 정병이 올 수가 없다.
마음의 상처가 오기 전에 그 상처를
다른 직원들에게, 혹은 회사에게 돌린다.
성장이든, 열정이든, 승진이든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매년 하는 연봉협상만 잘하고 싶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지친 직장인들에게
힘들 땐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말을
하기에는 참 쉽다.
하지만, 매월 받는 월급을 어떻게든 받아야 하고,
퇴사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고,
차에 치였으면 좋겠지만 어떻게든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힘내자! 금지)
무조건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날마다 조금씩, 한 걸음씩 만이라도 걸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을 뛰는 것과 비슷해서
매일 한걸음 한걸음에 진심을 다해 걷는다면
그 결승선 끝에는 원하던 잘하낸 내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