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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Aug 08. 2020

감상적 가치

감상적 가치 (sentimental value)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없고, 팔아봐야 얼마 되지 않는,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들. 내가 가진 것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뿐이다.

책장 한구석에는 80년대에 발간된 '문학사상'이 표지가 반쯤 찢긴 채 꽂혀있다. 언젠가 이문동의 술집 어딘가에서 초등학교 동창 D와 술을 마셨다. 술집 주인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 책을 빌려달라고 했고, 대신 맥주 1병을 ‘서비스’라며 내어 놓았다. 며칠 지나서 그 책을 회수해 왔지만 무례하게도 남의 책에다가 밑줄까지 그은 것이 아닌가. 그 볼펜 자욱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길이 아닌 것이 있다. 처음 가는 길이 그것이다'

1970년대 산 클로버 타자기는 오래전에 큰형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별 잔고장은 없었지만, 타자기 리본을 구하느라 어렵사리 동숭동까지 가야 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집 근처 술집에 몇 번 저당 잡혀야 했던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용케 살아남아 내 곁에서 같이 늙어가고 있다. 심심할 때 혼자 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가끔 탁탁거리며 치는 문장은 '나의 식사는 목이 메어 무의식적으로 왕성하였다'. 이 문장의 특별한 의미나 이유는 없다. 그냥 오래된 습관이다.

2-30대. 돈만 생기면 열심히 시집을 사서 부지런히 책장에 재어 놓았다. 그때 사서 모은 시집들의 대부분이 초판본 1쇄. 몇 해 전 김영승 시인의 문학 강연회에 그의 시집을 들고 갔는데, 초판본 1쇄라고 자랑했더니 본인도 가지고 있지 않은 희귀본 이란다. 뒤풀이 도중 같이 비를 맞으며 담배를 피울 때, 그가 시집을 잘 보관해 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그는 우연한 곳에서 오래전 지나친 자신의 청춘과 예기치 않게 조우한 셈이다.

감상적 가치만을 가진 물건을 오랜 기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트친 황현산 선생의 트윗에도 그런 것들이 자주 눈에 띄곤 했다. 각도기, 제분기, 옛날 영화 포스터,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까지 다양하다.

그는 언젠가 '개나 고양이의 죽음이 더 슬픈 것은 개나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작별 인사 같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아직까지 트친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를 고하지 않았다. 혹여 그의 모든 문장들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긴 작별 인사 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글을 다 읽지 못했으므로 아직도 나는 그와 작별하지 않은 셈인가? 2018년 6월 25일 이후 그의 트위터 계정은 멈춰있다. 새로운 트윗도 없는 그의 계정에 가끔 들어가는 이유는 나의 지극히 감상적인 성향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짝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항상 거기 있게 한다’.

오늘은 선생의 2주기. 그가 없는 세상이 새삼 더 쓸쓸하다.

#감상적가치
#sentimental_value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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