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한 견인주의자의 일상

by NJ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남자는 매일 도쿄의 공중화장실로 출근한다. 화장실은 그의 직장이다. 한눈에 봐도 육십 중반은 훌쩍 넘긴 얼굴이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와 담배꽁초를 줍고, 변기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닦는다. 점심은 주로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로 해결한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일렁인다. 낡은 필름 카메라를 꺼내 그것을 렌즈에 가득 담아 셔터를 누른다. 남자의 눈은 맑고 고요하다. 평화로운 미소가 그의 주름 진 얼굴에 서서히 번진다.


그의 일상은 일과표에서 한치 벗어나지 않는 완벽한 루틴이다. 동틀 무렵 거리의 비질 소리에 잠에서 깨 이부자리를 개고, 작은 화분에 물을 준 다음, 양치와 면도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운전 중 올드팝을 듣는 것도 출근길 루틴이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단골 술집에 들러 맥주 한 캔을 마신다. 집에 돌아와 이부자리를 펴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제목 그대로 ‘완벽한’ 하루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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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말이 없다. 늘 평온하고 온화하며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정작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없다. 그는 아직도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풍경을 담고, 구식 폴더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에 쉽게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오랜 고립과 고독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남자의 흐트러짐 없는 일과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은 ‘틱택토 게임’,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과 종이쪽지로 주고받는 방식이다. 이러한 일상의 평온함은 어느 날 어린 조카의 예고 없는 방문으로 한순간 균열이 생긴다. 일상의 루틴이 깨질 때 과묵한 그가 마침내 입을 연다.


“엄마 말이 삼촌은 다른 세상에 산데”

“그럴지도 모르지!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내가 사는 세상과 네 엄마가 사는 세상은 많이 달라”

“나는? 나는 어느 쪽 세상에 사는데?”

“....”

“이 길 따라 가면 바다야?”

“응.”

“갈까?”

“다음에”

“다음이 언젠데?”

“다음은 다음이지, 지금은 지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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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그가 발음해 낸 몇 안 되는 말 중 하나. 그 말은 일상에 대한 ‘말씀 묵상’이자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만트라’처럼 들린다. 미세한 햇빛의 변화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모습 (코모레비, 木漏れ日)이 매번 다르듯, 순간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 지금 단 한 순간이다.


사실 관객은 남자를 잘 알지 못한다. 꿈에 나타나는 사물의 몇몇 뒤틀린 이미지를 통해 그가 겪었던 고통과 상처의 일단만을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남자의 현재 모습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대부분은 싸구려 화장실 방향제가 배어나는 ‘끝없는 하루’를 떠올리겠지만, 남자는 매혹과 찬미로 빛나는 일상, ‘완벽한 하루’를 선택한다.


조카를 돌려보낸 후 남자는 혼자 울먹인다. 홀로 자유로워 보였던 한 견인주의자가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운다. 그간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글쎄요’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나나 봅니다’

‘해 볼까요?’

‘여기 좀 서보세요. 어때요?’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단골 술집에서 만난 한 사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둘은 수변공원에서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눈 후 한밤중 쓸쓸한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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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누군가의 비질 소리에 남자는 잠에서 깬다. 다시 일상의 루틴이 시작된다. 운전하는 남자의 얼굴에 예의 평화로운 미소가 번지더니 눈동자에 돌연 눈물이 뎅그러니 맺힌다. 남자는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웃는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길게 클로즈업하는 동안 카세트 테이프에서는 올드팝 ‘필링 굿’ (Feeling Good) 이 내내 흐른다. 아마도 남자는 사람들과 같이 웃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닐 수도 있다.


사족 : 이미 고전이 된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의 빔 벤더스 감독이 오랜만에 만든 작품, 남자 역은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맡았다. 그의 얼굴에서 ‘우나기’의 ‘고독’, ‘실낙원’의 ‘허무’, ‘샐 위 댄스’의 ‘해학’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퍼펙트_데이즈

#야쿠쇼_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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