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9. 01
우리의 첫 대학교 친목 여행을 마지막으로 2020년 여름이 아름답게 마무리됐어. 역시 코로나니 장마니 해도 나는 여름이 좋다. 분명 이번 여름도 여느 여름과 같이 반짝이는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아. 모든 게 서툴기만 했던 스무 살의 여름과는 다를지라도, 드디어 나와 같은 무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함께 웃고 떠들며 편한 시간을 보냈다는 기분이 드네. 9월이 되자마자 시원해진 공기를 느끼며, 나는 또다시 내년 여름을 기대하고 있어.
무언가 답답한 공기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 같은 초여름을 기억해. 불안이 항상 나를 휘감고, 불안이 아니면 우울, 공황. 그런 것에 나는 계속 휘둘리고 있었어. 이전 클립을 녹음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권태'를 얘기했잖아. 그것도 다 이런 답답함에서 비롯된 것 같아. 물론 '워라벨'이라던가 다른 외부적 요인들도 있겠지만, 내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지. 오원 님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어.
심한 우울감의 지표를 하나 발견함!! 조용하든 시끄럽든 그 어떤 음악도 정말 듣기 싫어진 나를 발견하면 그때는 여지없이 우울감을 경험 중인 거드라고. 반대로 그 시기 후에 음악이 들어줄만하게 들리면 오 좀 맑아졌구나 하는 것. 나만의 지표 하나 더 발견해서 신이 나네.
이걸 읽고 정말 공감이 됐어. 원래 노래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몇 시간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내 취향의 새로운 노래를 발견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요 몇 달 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어. 일주일에 한 곡 추가될까 말까? 그런데 정말 행복했던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선선해진 저녁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니까 갑자기 내가 살아나는 기분이 들더라. 그렇다고 "너무 신나서 지금 당장 뛰어나가고 싶어!"라는 식의 조증은 아니고, 그냥- 나를 짓누르고 있던 답답한 공기가 한 겹 벗겨지는 느낌.
오늘 오전에 유튜브로 이것저것 보다가 '유퀴즈 온더블록'의 클립 영상들을 보게 됐어. 오랜만에 보니까 재밌어서 낄낄거리면서 몇 개 보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을 인터뷰하는 영상이 나왔지. 몇 달 전에 본 기억이 있었지만 본지 오래돼서 잘 기억도 안 나고 해서 그냥 보고 있었어. 유쾌하게 인터뷰를 해내던 그분은, "요즘 고민거리가 있느냐"는 질문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Life is beautiful!"이라고 답했어.
이유를 묻자 "가족도 잘 지내고 저도 잘 지내고 친구들도 잘 지내요"라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도 하고, 공부하고, 졸업하고, 일하고 있고, 모든 게 좋아요"라고 했지.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고민 하나 없을 수 있겠냐마는, 요즘 시국이 시국인만큼 우리는 좀 더 밝은 면을 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맞아, 나는 지금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고, 아직 내 앞엔 수만 가지 가능성이 빛나고 있지. 난 건강하고, 건강하려고 노력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
코로나만 아니라면 저녁에 너와 강변이라도 산책하면서 이 좋은 기분을 나누고 싶다. 어쨌든 개강 첫날부터 이렇게 기분이 좋아서 참 다행이야. 나이가 들어서 이제 모든 것에 감흥이 없어지는 건가 싶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만큼 살면서 몇 가지 것들을 경험해보니, 딱히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아. 좋은 거잖아? 오늘은 미뤄둔 일기를 꼭 써야지. 남은 넉 달의 2020년은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