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8. 30
낮에 너도 속해 있는 집들이팸 애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꽤 오랫동안 사진을 정리했어. 우리가 함께 간 첫 여행이었던 만큼 많이도 찍었으니까. 진짜 처음이었잖아, 엠티도 아닌 마음 맞는 대학 친구들끼리의 여행은. 특히 나에겐 완전한 처음이었어. 난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끼리 놀러 가본 경험이 없으니까. 너한테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말이야. 보통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의 친한 친구들끼리 여름에 물놀이를 하러 가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흔한 일이잖아. 하지만 난 소수의 사람들과 깊게 친해지는 걸 선호하는 타입이었고 지금도 그런 편이지. 게다가 우리 엄마는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해서 걱정과 약간의 의심 등의 이유로 친구들끼리 동네나 학교 근처가 아닌 장소에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어. 엄마가 모르는 척해 준 건지 어쩌면 진짜 속았는지 몰라도 시내 번화가에 잠깐 놀러 다녀올 때에도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몇 번 있었을 정도야.
코로나가 다시 심하게 확산되면서 토익공부마저도 집에서 하게 되니까 가장 먼저 변화한 건 걸음수였어. 진짜 일상이 집콕 그 자체라 잠깐 편의점을 다녀오거나 토익 스터디를 하러 파이 집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온종일 의자에 앉아서 키보드를 치거나 공부를 했어. 얼마나 허리가 아픈지. 비가 온댔다가 태풍이 온댔다가 날씨도 이리저리 바뀌고, 전에 작성한 일기의 내용처럼 어떤 일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지. 오늘 돌아온 집들이팸과의 풀빌라 물놀이 역시 행여나 행복하고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며칠 전부터 애써 기대하지 않으려고 했었어. 하지만 어떻게 그러겠어? 당일 전날이 되니까 짐을 챙기는 와중에 이제껏 눌러 왔던 기대치가 폭발하듯이 부풀어 오르더라. 내가 속해 있는 '한 무리'의 친구들과 여행을 가다니 하면서... (너무 찌질찌질 왕따 같니?) 심지어 얼마 만에 여행이고, 얼마 만에 모이는 친구들인데 그럴 수밖에. 그런 맘에서였는지 사실 전날 밤잠도 설쳤어.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에 들어갔는데, 10분 정도 후에 미친 듯이 폭우가 내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꿋꿋하게 물속에서 놀던 우리. 귀여웠다 귀여웠어. 바람 때문에 비도 대각선으로 세차게 내리는데 아랑곳 않고 깔깔대며 웃고 물장난 치던 장면이 글을 쓰는 지금도 떠오르네. 동시에 드는 생각은 '최근에 그렇게 웃어댔던 게 언제였던가...' 싶은 거야. 비는 쫄딱 맞아가면서도 사진에 진심이었지. 한 명씩 대기해서 돌아가며 독사진을 찍은 덕에 사진은 정말 잘 나왔더라. 특히 한 사진 속에서 같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정리하면서도 몇 번씩 다시 보곤 했어. 날씨가 요란스럽긴 했지만 산속에 있는 펜션이라는 게 확 느껴질 정도로 바로 앞에 절경이 펼쳐져 있는 것도 참 좋았어. 절경이고요~ 장관이네요~ 이번 만남에서 제일 많이 한 말이 그 말이었을 정도니까.
결론적으로 뻔하고 흔해 빠진 표현이란 건 알지만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 말 그대로 좋은, 누구 하나 불편하지 않게 모두가 각자 편안한 상대이자, 이미 서로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으며, 서로를 놀리면서도 적절하게 배려하는, 좋은 만남이었어. 진실게임을 하자는 제안에 전부 물어볼 게 없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서로 궁금한 게 없다는 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알아야 할 만큼은 잘 알고 있으며 그 이상의 선을 넘게 캐묻고 싶지는 않다는 뜻으로 느껴졌어. 우리가 다섯 명 함께 모이기 시작한 건 정말 얼마 안 되지만 둘씩 셋씩 친했던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멤버 중 누구와 단둘이 있어도 어색하단 생각이 안 들 정도니까. 사실 그거 진짜 어려운 거잖아?
옵치(가명)가 여름, 겨울마다 한 번씩 모이고 싶다고 했을 때 몰래 이번 겨울 연말엔 함께 뭘 할까 상상해보기도 했어. 이번 만남에서는 활기찬 물놀이, 아침에 펜션 안으로 들어오던 햇빛, 야광으로 빛나던 팔찌와 귀걸이,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전혀 어색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대화까지 다 좋았지.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던 일회용품 쓰레기들과 바비큐 메뉴로 육식 위주의 음식을 먹었던 거야. 그래서 겨울에 혹시나 에어비앤비 같은 숙소를 예약해서 우리끼리 또 놀러 가게 되면 전에 말한 적 있던 오원 님 레시피를 참고해서 내가 비건 밀푀유 나베를 메인 음식으로 요리해 주고 싶어. 최대한 일회용품의 사용은 자제하고 식기류를 각자 가져와도 좋을 것 같고. 다음번의 모임도 정말 기대된다. 만남이 쌓일수록 더욱 건강하고 견고하고 지지하는 우리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