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왜 이리도 예뻐 보일까 [녹마]

2020. 08. 25

by 잠긴 생각들

드디어 지겹게도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우리가 사랑하는 구름 두둥실 파란 하늘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어. 주야장천 비만 맞다가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마주하니까 낯설긴 하지만, 역시 나는 여름의 하늘이 좋다.


내일은 너와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날이야. 이틀 전에 업로드된 영노자 3주년 기념 방송을 듣고 있자니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나 싶어서 감회가 새롭더라. 물론 나는 영노자 초창기부터 팬은 아니었고, 2019년 봄부터 듣기 시작한 거지만 그래도 1년 넘게 영노자를 들어오고 있었구나-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어.


그거 아니? 우리의 '잠긴 생각들'도 2주 뒤에 1주년을 맞는다는 사실을. 무려 1주년이야! 처음 너와 팟캐스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은데. 격주로 만나서 클립 주제를 의논하고, 우당탕탕 녹음해서 편집까지. 1주년엔 우리도 기념 게스트를 불러보는 거 어때? 우리에게도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은데.




요즘 나는 뭘 해도 집중하지 못하는 느낌이야. 여담 회의를 할 때도,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볼 때도 그래. 그리고 이제는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도 아무런 감흥이 안 느껴지고. 딱 네가 저번 주에 교환일기에 쓴 것처럼. 원래는 내가 행복함을 느껴야 마땅한 순간에, 말로는 '행복하다-'라고 하는데도 뭔가······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 느낌? 그러다가 네이버 클라우드를 뒤져서 불과 반년 전, 1년 전의 내 사진을 보면 얼마나 행복해 보이고 예뻐 보이는지 몰라. 물론 내가 지금 느끼는 것처럼 그 당시에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 과거의 나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고 싶어 해. 예전엔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히 빌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너랑 어떤 클립을 녹음할 때였더라? '그리워할 일상으로 매일을 살아' 였던 것 같다. 그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얘기했잖아. 과거는 항상 미화되기 마련이라고. 과거를 돌아보고 미련 두기보다는, 현재의 행복한 내 모습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젠 알아. 내가 계속 돌아보는 건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나'라는 걸. 가끔씩 예전이 그리워질 때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때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음을 계속 떠올리려고 해. 만약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의 내가 잃게 될 것들, 그리고 과거에 내가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정신을 확 차리게 되지.


SE-efc6f2f0-64b5-485f-9ed4-d565218e6126.jpg 지금의 나도 이렇게 밝게 빛나는 걸.


그래도... 여전히 나는 성급한 녹마라서, 언젠가 한 번은 과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후회할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어. 예전엔 그런 선택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너무 싫고 한심했는데,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래.


나는 그냥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자들이 옆에 계속 있어주면 돼. 그걸로 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거고, 항상 제자리를 찾을 거니까. 요즘 아무런 감흥이 안 느껴지다 보니까 또 충동적인 결정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나 봐. 이런 내가 어떻게 MBTI 테스트를 하면 J에 치우치게 나올 수 있는 거지? 너야말로 완벽한 J에 가까운데.


아무튼 나는 요즘 잘 지내. 과거의 나를 찾아 여기저기 뒤적거리는 일은 당분간 계속할 것 같아. 뭐 어때.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지금을 살아가고 있고,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 그럼 내일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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