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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Dec 26. 2020

골절 5_목발을 흔들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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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 이어)



집에서 나의 초등학교까진 걸어서 15분이 걸렸다. 중학교는 버스와 도보를 합쳐 이십 분 남짓이었다. 고등학교는 지하철 아홉 정거장에 도보 30분으로 가장 멀었다. 가장 먼 그 거리를 목발에 의지하니 체감 두 배가 됐다.


못해도 한 달 이상 깁스를 하고 다녔다. 그러는 동안 평소에 몰랐던 불편을 알게 됐다. 목발의 겨드랑이 지지대에 내 겨드랑이가 눌릴 때의 거북한 압력. 같은 무게인데도 발바닥이냐 겨드랑이냐에 따라 감각되는 정도는 지나치게 달랐다. 발바닥의 내구성과 의연함에 새삼 감탄했다.


소소한 일상은 거슬리는 괴로움으로 바뀌었다. 목발을 사용하면 손과 발, 둘 다 부자유해진다. 목발 유저에겐 보통의 세상이 온통 장애물이다.

자동문은 왜 이렇게 적은가. 손이 아닌 몸의 다른 부위로 사용할 수 있는 우산은 왜 대중화되지 않았는가. 어쩌자고 학교를 언덕에 지어놨는가. 왜 학교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없는가(요즘 학교들엔 많이 설치된 걸로 안다). 화장실 바닥 타일은 뭐 이렇게 매끈거리는 걸로 해 놔서 목발의 고무 팁이 허구한 날 미끄러지는 걸 조장해놨는가. 목발을 안정적으로 세워둘 수 있는 동시에 의자에 앉아서 손을 씻게 설계한 세면대는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가.


은유 작가는 비장애인이나 남성, 대졸자 등을 '디폴트맨'이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디폴트맨'에게 세상은 수월하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에게 화장실도 충분하다."* 디폴트맨이었을 때 나는 세상이 수월하다는 인식조차 못 했다. 별 자각도 없이 병뚜껑을 오른쪽으로 돌려 여는 행복한 오른손잡이처럼 그냥 모든 게 당연한 듯 살았다. 세상이 내 몸에 딱 맞게 디자인돼 있었다. 비非디폴트맨이 되자 전부 다 틀어졌다. 그러나 참을만했다. 깁스만 풀면 끝날 일시적인 난처함이었으니까.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 3년 내내 목발을 짚고 다닌 친구가 있다. 그 애 이름이 영 떠오르질 않는다. 학교 다닐 땐 분명히 이름을 알았는데 지금은 깊숙한 바다에 빠트린 명찰인 양 분실했다. 언젠간 그 애 이름이 떠오르길(Rise) 바라며 R이라고 칭하겠다.


R은 키가 작았다. 왜소증으로 짐작될만한 키였는데 정확히 어떤 장애인지는 모른다. 장애의 명칭도, 장애를 입게 된 동기도 물어본 적이 없다. 실례일까 봐 그랬다.


R은 걸을 때 약간 불안정했고, 늘 목발에 의지했다. 내가 목발을 사용한 지 몇 주 지났을 때 학교 복도에서 R을 마주쳤다. 우린 서로를 향해 목발을 짚으며 걸어왔다. R에게 댈 수는 없지만 나무 막대기 두 짝에 기대어 걷는 고충을 나도 체득 중이었다. 텅 빈 복도에서 R과 마주친 순간, 같은 곤란을 공유한다는 생각에 어쩐지 반가웠다. R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손도 흔들고 싶었다. 그러나 목발은 간단한 보디랭귀지조차 방해했다. 결국 손 대신 목발을 슬쩍 흔들며 말했다. "안녕~"


R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 표정이 무슨 의미였는지 잘 모르겠다. R에게서 일상적으로 보이던 수줍음이었을까. 같은 목발인으로서의 옅은 반가움이었을까. 너의 불편과 나의 불편은 생각보다 다르니 너무 반가워할 필요까진 없다는 소극적인 저지였을까. R은 "어, 안녕"이라 말하고 가던 길을 갔다.


K와 P도 장애인 이었다. 교회 친구들이었는데 그들의 장애에 대해서도 확실하게는 몰랐다. 둘 다 뇌성마비일 거라고 짐작만 했다. 둘의 증상은 거의 비슷했고 K보다 P가 조금 경미했다. 나는 K와 P가 꽤 친하겠거니 생각했다. 비장애인이나 다른 유형의 장애인이 헤아리기 어려운 부분까지 둘은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오였다. 언젠가 K에게 P의 근황을 물었더니 K가 어색한 뉘앙스로 "나도 모르는데?"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내 생각이 뭔가 잘못된 걸 인식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인권 운동가, 여성 운동가, 심리 치료사, 작가, 화가로 활동하는 해릴린 루소는 장애인 무리에 섞여 있을 때 두 가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었지만 어색할 때도 있었다고. "다른 뇌성마비 장애인과 마주치면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 역시 내가 '정상'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거울이었으니까."**


나는 친구들의 장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각 장애에 대한 의학적인 정보나 명칭만 모르는 게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육체와 삶에 어떤 불편과 고통을 주는지도 몰랐다. 세상의 디자인이 그들에게 얼마큼 불친절하고 무관심한지도 몰랐다. 장애인들이 자신과 타인의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몰랐다. 외형의 남다름이 본인의 정신이나 인간관계에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영향을 주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서 자연 치유되거나 신약이 개발되어 완치를 꿈꿀 수 있는 장르와는 다르게, 요만큼의 개선도 바랄 수 없는 '장애'를 평생 입고 사는 삶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너무도 없었다.


조지 오웰은 『더 저널리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과제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우물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신경 쓰도록 만드는 일이다." 포털 사이트엔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들이 요약돼 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의 메뉴  '-' 항목을 눌러봤다.  번째가 '자동차'였다. 마지막은 ''이었다. '장애인' '' 항목에 존재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조차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공존하지 못했다. 메뉴바 밑으론 각종 세상 소식이 피곤할 만큼 빽빽이 나열됐다. ' 상품 무료배송!'이라는 소식이,  매만져진 사진을 활용하여 넉넉한 부피로 화면을 점유하고 있었다. 약자에 대한 소식은   보이지도 않았고, 있다 해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못했다. '비장애인'이라는 우물 안에서 사느라 모르는  많은 나는, 포털에  화려하고 들뜨고 무성한 소식들을 낫으로 베어버리며 숨겨진  작은 소식을 뒤졌다. 몸과 삶에 장애를 얻은 이들의 이야기를 학인의 마음으로 터치했다.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도 아픈 건 질색이다. 아픈 게 너무 지긋지긋하고 공포스러워서 좋아하던 빵, 과자, 치즈, 라면, 햄, 소시지, 초콜릿, 믹스커피를 끊었다. 뭐 하나 진득하게 못 하는데 건강을 위해 채식 위주 식단을 3년 가까이 유지 중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지만 육체의 부식을 막기 위해 산책을 한다. 운동은 한결같이 재미없다. 거의 혐오한다. 하지만 아픈 건 더 싫기에 스스로를 협박하여 최소한으로나마 움직인다.


이렇게 가꾼들 내 몸은 반드시 쇠약해질 것이다. 당장은 비장애인이지만 이 몸은 고장이 예고돼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호흡 장애를 겪을지, 심장 박동의 장애를 겪을지 뭐가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침내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만은 명백하다. 아서 프랭크는 『아픈 몸을 살다』에서 말했다.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라고.


이 글을 쓰느라 자판을 두드리다가 잠깐 멈춰 보았다. 두 손을 관찰했다. 손가락이 다섯 개씩 빠짐없이 달려 있고 유연하게 움직이며 일말의 통증이라곤 없는 싱싱한 손. 이런 손도 언젠간 굳어지고 아프게 되고 마지막엔 한 줌 흙이 되겠지. 인체에는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지만 사용 기한이 짧은 하드웨어이기도 하다. 건강한 신체는 한편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가. 젊고 건강한 찰나의 몸에 빠져있느라 그 외의 몸들을 망각하는 건 과연 내 삶의 건강에 좋을까. 건강한 신체를 미덕으로 치는 세상, 그런 몸에 맞는 치수로 설계된 세상은 현재의 장애인과 미래의 나를 한 세트로 배신하겠지.


나의 장애인 친구들의 오늘 하루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고등학생일 때보다 좀 더 편한 날을 보냈으려나. 서툰 공감이나 제멋대로인 편견에서는 좀 멀어졌을까. 부당하게도 당연히 배제되었던 그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골절>시리즈 끝-







*. 은유, 『다가오는 말들』

**. 해릴린 루소,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 개역개정, 전도서 12:3중. (쉬운 성경 버전: 너의 치아가 다 빠져 씹지 못하게 될 것이며, 너의 눈도 희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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