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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Dec 23. 2020

골절 4_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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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 이어)




엄마는 자신의 뼈를 움직여서 동물 뼈를 사 왔다. 그 뼈를 물에 팔팔 끓였다. 우유 색깔이 된 뼈 물을 내 뼈에 먹였다. 딸의 부러진 발등을 위한 돌봄 음식이었다. 안타깝게도 곰국은 뼈를 속성으로 부착하는 접착제와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다만 내 복부에 지방을 축적하는데 특화된 요리임을 우리 둘 다 몰랐다. 곰국에 들어있는 인 성분이 칼슘 섭취를 방해해서 내 부러진 발등뼈의 원상 복구를 늦추던 그날, 친구 E가 우리 집에 왔다. 골절 핑계로 결석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감색 하늘에 노란 해가 찾아온 것처럼 기분이 환해졌다. 어쩌다 부러졌냐고 묻기에 문턱에 걸려 넘어졌노라고 직고했다. E도 웃고 나도 웃었다. E와 나는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E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안정된 사람이자 좋은 친구였다.


며칠 결석하며 집에서 하얀 국을 퍼먹었다. 학교에 갈 날이 되어 교복을 입었는데 허리가 안 잠겼다. 곰국의 지방이 내 배로 온전히 옮겨진 것이다. 이럴 거면 1700년대에 태어날 걸 그랬다. 라부아지에보다 내가 먼저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텅 빈 곰솥과 불어난 내 몸을 증거로 제시하면 다들 고개를 주억주억했겠지. 몸으로 증명된 화학 법칙 때문에 교복 후크를 고쳐 달아야 했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것마저 엄마가 했다. 엄마는 내가 시간을 다투어 공부하길 바랐다. 바느질에 소비되는 고작 몇 분의 시간마저 대신 벌어줄 만큼.


엄마는 곰국과 교복 후크 수선이라는 돌봄 노동까지 떠안았다. 밤에는 피곤이 범람해서 허우적거리느라 잠들지 못하고 낮에는 전화벨에 쏘여서 편하게 잠을 보충하지 못하는 고달픈 사람이면서도. 엄마는 평생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는 당번으로 사느라 나중의 역량까지 오늘 치로 당겨썼다. 내 골절은 엄마의 현재를 한층 고달프게도, 엄마가 자신의 미래에 빚지게도 만들었다. '네가 돼지라서 발이 부러졌다'라는 놀림을 들어도 '이게 다 엄마의 낮잠을 사수해 주려다 그런 거다'라고 어깃장을 놓을 양심이나 여력은 없었다. 조롱보다 속수무책의 돌봄이 언제나 더 거대했으니까.


엄마라는 연료를 태우면서 나는 자꾸 안락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온기를 맘 편히 누릴 수 없었다. 엄마의 카리스마에 눌렸기에 돌봄을 물리칠 수도 없었다. 과도한 돌봄에 절여진 내 일상은 소금기로 따가웠다. 돌봄을 받으면 받을수록 남을 착취하게 됐고 나는 사람 구실을 못 하게 됐다(고 생각 했다). 죄스럽고 불편했다.

나는 열여덟 살이었지만 무의식 한쪽은 예닐곱 살이었다.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나를 돌보느라 누군가의 명이 단축된다는 공포가 십 년 넘게 이어졌다. 미안하고 민망하고 부담스럽고 공포스러운 돌봄은 나의 보모인 동시에 짐이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내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마음이 쏠렸다. 돌봄 받을 필요를 산뜻하게 제거해 주는  '자립' 뿐이라고 판단했다. 나에게 할당된 공식적인 의무들에 최선을 다했다. 바느질 같은 시시콜콜한 일까지 엄마가 대신해 주는 마마걸이라는  부끄러웠지만  감정을 외면한  분이라도  공부했다. 그림도 성실하게 그렸다. 목발도 열심히 연습해서 숙련된   인간이 됐다. '피해  끼치고 살자'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말자'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수하자'라는 동어반복 같은 문장을 뱃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셀프 단속을 위한 중언부언과 뽀얀 기름 국물로 채워진 배는 거대해졌다. 그 위에 사이즈 늘린 교복을 둘렀다. 학교에선 "문턱에서 넘어졌어."라는 대답을 웃긴 에피소드를 풀듯 킥킥거리며 반복했다. 시커먼 교복 틈에서 동동 뜬 초록색 발은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었다. 늘어난 허리둘레, 문턱 어쩌고 하는 대답, 깁스한 발은 하나같이 어색했다. 그런 몸과 상황에 힘껏 적응했다.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립을 향해 맹렬히 달려갔다. 그러나 과속방지턱 등장. "집에 갈 때 내가 가방 들어줄게"라는 E의 제안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0.1초 만에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E는 살짝 주저하다가 다시 말했다. "힘들 것 같아서 그래. 내가 들어줄게." 나는 반사적으로 또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필요 없어."


"남의 마음을 제대로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라는 문장은 그때의 나에 대한 관찰 기록문 같다. 돌봄을 조금이라도 덜 받고자 전전긍긍했으니까. 그런 내 입에서 "필요 없어"라는 과도하게 투박한 단어가 튀어나온 건 필연이었다. 그 소리에 E가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걸 0.1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발등뿐 아니라 정신 한 쪽도 부러져 있었다.


물러갔던 E는 몇 분 후 다시 왔다. 할 말이 있다며 솔직하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터놓았다. "나는 돕고 싶어서 한 말인데 네가 필요 없다고 하니까 마음이 안 좋았어." 아, 이게 아닌데. 온 몸이 얼얼했다. 나는 E에게 곧바로 사과했다.


엄마에게 부채의식이 있으면서도 엄마의 넘치는 돌봄을 정중히 사양하거나 당차게 제동 걸진 못했다. 내 의견이나 감정을 편하게 드러낼 만한 관계가 아니어서였다. 하지만 E에게는 주저 없이, 조심성도 없이 내 맘을 드러냈다. 편하고 대등한 사이에도 사려 깊음이 필요하다는 걸 망각한 채. 샌딩 하지 않은 거친 나무토막 같은 말을 던질 만큼 나는 E에게 해이했다. 나무 가시가 마음에 박혔음에도 E는 내게 거듭 말을 걸어주었다. 그런 E 덕분에 나는 내가 놓친 부분을 겨우 발견했다. '도움받는 게 죄는 아니다. 의지해도 괜찮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음으로써 나도 그를 돌보게 된다. 초과된 돌봄과 적절한 친절은 성격이 다르다.'


"남에게 기대지 않으려는 버릇은… 의존이 싫어서 극구 남의 도움을 거부하는… 나에게 큰 해로 작용하게 되었다. …친밀한 관계의 본질이기도 한 상호 의존을 거부하는 성향 때문에 잃는 것이 많다."** 해릴린 루소의 이 글을 좀 더 일찍 읽었다면 친구에게 "필요 없어"라는 말까진 안 했을 텐데. 고맙게도 E는 철벽에 튕겨나간 우정의 말을 도로 주웠다. 그때 E가 세 번이나 나를 노크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 후로도 사람들에게 "필요 없어"라는 거절을 혹한에 눈보라처럼 뿌렸을지도 모른다. 쩨쩨한 자립에 마음이 팔려 상대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겠지.


그날 하굣길에 E는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나는 목발을 짚고 부드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는 편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의존과 자립의 안온한 동행이었다.




(다음 글에 계속)











*. 정희진,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해릴린 루소,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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