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9, 호주 워홀을 떠나다.

by nokcho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시점,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조차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학과 해외 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18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때쯤 자퇴라는 결정을 내리며, 이는 더 이상 관심이 아닌 확고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고작 나의 마음만으로 부모님을 설득시키기에는 부족했고, 그래서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과 재수학원까지 다니며, 19살, 현역으로 입시를 치렀다. 그리고 보란 듯이 망했다.


수능을 마치고,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지원하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는데, 다행히 나에게는 '욕심을 내려놓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간다.', '재수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본다.'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진로를 정하고, 그 진로에 맞춰 생기부를 채우는 것(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생기부는 ◎◎로 채우고 있는데 사실은 ◇◇가 하고 싶어!' 혹은 '나는 이제 ◎◎에 관심이 없는데 생기부를 그렇게 채워놔서 진로를 변경하기엔 이미 늦었어...'같은 말을 많이 들었고,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에 회의감을 많이 느꼈던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진로를 정하라고 해놓고, 결국 대학은 이름만 보고, 성적에 맞춰가라고?' 하는 의문과 함께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가고 싶지는 않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부모님 앞에서는 고민했지만, 사실 나의 솔직한 마음에서 첫 번째 선택지는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웃긴 건 '만약 △△대정도였다면 그냥 갔을 텐데'하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도 가고 싶은 과보다 사실은 대학 이름이 더 중요했다는 아이러니,,


다음으로 재수, 어쩌면 재수는 반 강제적인 선택지였다.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부모님께서는 내가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가길 원하셨고, 사회에서는 대학에 떨어지면 재수가 당연한 수순인 거처럼 여겨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느꼈던(자퇴의 원인 중 일부였던...)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극복하는 데에 큰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아서 도망친 그 순간에는 내가 다 괜찮아진 줄 알겠지만, 작은 자극만 받아도 곧장 땅을 파고, 깊숙한 곳까지 곤두박질치곤 해서 계속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한번 도망을 치기 시작하면 계속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한다. 나의 첫 도망은 고등학교였고, 그다음은 수능이었다. 나는 재수학원까지 다니며,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를 했고, 여느 수험생처럼 열심히 살았지만,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사실은 공부하는 '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못 한다는 걸 인정하기가 힘들었고, '열심히 안 해서 그래'라고 위로하는 편이 쉬웠으니까. 그래서 수능 결과를 받았을 때도 어떠한 아쉬움이나 억울함 보다는 '내가 남들만큼 노력(고등학교 특성상 친구들이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에 비래 노력의 기준이 높아져 있던 것도 맞고, 그만큼 목표도 높았다.) 하지 않았는데 그걸 바란 게 욕심이었지...'정도였다.

'가고 싶은 학교도, 과도 없는데 내가 재수를 진심을 다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역시 '아니'라는 결론. 결과적으로 재수도 내가 바라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렇게 수능을 마친 후 또다시 무기력에 빠져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엄마가 진지하게 말을 했다. 그때가 2월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바라는 건 당연히 재수다. 재수해서 대학 가고, 남들처럼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별 다른 생각 없이 '역시 그렇구나... 재수학원을 알아봐야 하나?'싶었다. 그런데 이어서 '네가 하란다고 하기 싫은 걸 하는 애도 아니고... 근데 엄마는 더 이상 네가 이렇게 집에서 시간 죽이고 있는 모습은 못 보겠으니까 나가서 알바를 하든, 그것도 정 하기 싫으면 도서관 가서 책이라도 읽든, 가서 앉아만 있더라도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라고 말을 하시더라. 그때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 번째 선택지에 대한 허락(유학이나 워홀, 해외생활에 대한 관심은 항상 부모님께서도 알고 계셨다.)을 받은 느낌이었다.

나도 마냥 대책 없이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이번 달(2월) 안으로 알바를 구해보고, 구해지면 초기자금을 마련해서 워홀을 가고, 안되면 그때는 미련 없이, 정말 최선을 다해 재수를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나는 컵라면이 아닌 봉지라면 조리는 고등학생 때 처음 해봤고, 그전까진 계란 깨는 것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경력도, 능력도 없는 나를 누가 써줄까' 싶어 거의 반 포기한 상태로 알아본 거였는데 알바는 생각보다 쉽게, 금방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알바를 구한 나는 워홀 초기자금 마련을 목표로 열심히 근무했고,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선택지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알바를 한 지 6개월이 조금 넘었을 무렵, 목표였던 1000만 원을 모두 모았고, 12월 출국을 위해 퇴사를 했다. 아시아를 벗어나는 것도, 홀로 비행기에 오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어떠한 응원보다도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2023년 12월 12일 만 19살의 나이로 호주행 비행기에 걱정과 기대를 안고 오를 수 있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앞으로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1. 호주 워홀의 시작

브리즈번에 처음 도착한 순간과 초기 정착

임시숙소와 집 구하기, 첫 구직 경험 및 생활 적응기

2. 로드트립과 농장 생활 도전기

지역을 이동하며, 브리즈번에서 타운즈빌까지 로드트립

첫 농장 사기와 다른 농장 컨택 과정

한 달 반의 농장 생활과 탈출기

3. 도시에서의 새로운 시작 — 시드니와 멜버른

시드니 여행과 멜버른으로 지역이동

어학원 생활과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경험

멜버른 근교 여행

4. 국제 연애와 개인 성장

특별한 관계의 시작

그 관계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배움

5. 워홀의 마지막 여행 — 뉴질랜드와 베트남

각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여행 팁

꼭 가볼 만한 장소 소개 및 코스 추천

6. 귀국 그리고 다시 멜버른으로

한국 귀국 후 멜버른 복귀 과정

학생비자 준비와 새로운 유학생활 시작

관계의 정리와 새로운 관계의 시작

7. 유학생으로서의 일상과 도전

기숙사 생활과 이사

학교 생활과 친구, 인간관계

+ 정보성 글

워홀 및 학생비자 준비 과정 상세 가이드

호주 각 지역 임시숙 추천 및 지역별 장단점 리뷰

워홀러/유학생을 위한 생활 관련 실용적인 정보


필요하다면 정보성 글도 공유할 생각이 있지만, 그보다는 나의 일기장처럼, 친구들과 이야기하듯이 그때그때 나의 상황과 감정을 솔직하게 담은 글을 작성하고 싶은 생각이 크다.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누구에게라도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항상 그럴 수는 없으니, 재밌는 일이든, 속상한 일이든, 화나는 일이든 글을 통해 함께 공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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