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이야기

그녀가 그의 차에 타자마자 그는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왜 미니스커트 입고 책정리한 거지? 보고 있느라 미칠 뻔했네. 자기 부모님 있어서 덮칠 수도 없고." 그가 말했다. 둘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얼른 가요. 거긴 아저씨 맘대로라서 언제 문닫을지 몰라요."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거기서 책 팔아본 적 있어?"

"많이 사가긴 했는데 팔아본 적은 없어요."

'아직은요.' 그녀는 입속으로 말했다.


왜 부끄러워지는 걸까. 책을 판다는 행위가.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전에 한번 책장 정리는 해야 했다.

책방 주차장에서 그들은 집에서 가져온 밀대에다가 책을 올렸다. 가게는 건물 지하 이층에 있었다. 둘이 함께 오기는 처음이었다.


“어서오세요.”

아저씨는 무심하게 그와 그녀 얼굴을 한번 보고는 곧 고개를 숙이고 책을 분류했다. 서가에 가지 않고 그녀는 곧장 프론트로 갔다.


"책 좀 팔려고요."

"네." 그녀 목소리는 왠지 모를 죄책감에 작아졌지만 주인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어투로 말했다.


주인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 프론트 앞으로 나왔다. 자석이었다.

‘책 파는데 왠 자석이람.’ 그녀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의 손에는 굽은 자석이 들려 있었다. 주인은 자석을 책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뭐라 중얼댔는데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밀대에 있던 책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건 안 받아요.

그녀 발치 앞에 책 한권이 날아왔다. 유혹의 방법, 이라고 저자가 세계 각국의 픽업아티스트들을 조사해서 이성을 꼬시는 방법에 대해 쓴 책이었다.


제목은 그럴듯했지만 정작 내용은 빈약한 책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카사노바가 숱한 여자들을 울렸지만 그 중에서 카사노바를 원망한 여자는 한명도 없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올컬러인데다가 양장본이라서 삼만 오천원이나 했다. 그녀는 이 책이 가장 비쌀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받는다니.


무슨 기준으로 가격을 잡는 건지, 궁금했지만 왠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건 예비신랑쪽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도 한마디 없이 주인의 작업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아저씨의 작업에 집중했다. 책이 헌책인지, 새 책인지에 관계없이 책은 분류되었고 점차 그녀 안에서 답이 찾아졌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그것도 문고판으로 나온 데미안.'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그 새는 아프라삭스다.' 이 문장만으로 그녀의 마음을 후려 팠던 그 책이 가장 고가의 책으로 올라간 순간 그녀는 아저씨의 분류체계를 알았다.


에너지였다. 그녀가 그 책과 얼마나 교감했느냐에 따라서 분류되는 거였다.

드디어 작업이 끝났는지 아저씨는 자석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리고 옆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보았다. 분명히. 자석이 책상 위에서 반 바퀴쯤 돌았다. 제자리에서.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예비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이제 가격을 매기고 있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책들은 권당, 삼천 원씩.

그리고 그 옆의 책들은 이 천 원씩, 천 원씩, 오백 원씩으로 내려갔다. 아저씨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다 합쳐서 팔만 육천 오백원인데 구만원 줄게.


"안 팔래요."

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밀대에다가 다시 책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꾸벅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예비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내내 침묵이 흘렀다. 집 앞에 오자 그는 문득 생각난 듯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그를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따스하게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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