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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Aug 15. 2021

인어공주를 위하여

우리 학교 교복은 아래 위로 빨간색이다. 왜 하필 빨간색인지. 그것도 자두가 농익어 자줏빛을 띄기 직전의 선연한 핏빛. 교복 색만으로는 좀처럼 이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학교 애들은 싸잡아서 이렇게 불린다. 


붉은 돼지 군단. 


우리 학교 비웃는 이것들아, 빨간색이 뭘 상징하는지 알아? 한국에서 박해를 받고 돌아가신 순교자님들의 피야. 너희들이 아무리 비웃어도 우리 학교는 명실상부한 명문 카톨릭 여자고등학교라고.   


하지만 오늘 아침 다시 한 번 이 우라질 놈의 교복 색을 증오할 일이 발생할 줄이야.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 뉴스를 들으며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개 시끄러워. 아침마다 날 깨우는 건 거실을 울리는 뉴스 소리.


오늘 아침 정안시 기장동의 한 아파트 건물 주차장에서 십칠세 이 모양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순찰 중이던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발견될 당시 이 양은 예리한 흉기에 몸 부위를 찔린 상태였습니다. 


오 마이 갓. 


순식간에 잠이 깼다. 모자이크를 했음에도 화면 속의 저 아파트는 너무나 명백하게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였다. 


벌써 두 번째 사건이다. 


불과 세 달 전에는 우리 학교 일학년 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실종됐다. 그 아이 집 근처 놀이터에는 안경이며, 가방이 발견되었다. 그 아이는 지독한 근시였다고 한다. 사건은 미결로 마무리 되었고 우리는 체육관에 모여 단체 미사를 드렸다.


이번엔 살인 사건이라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담임은 아침 자습 시간에 들어오지도 않고 있다. 대신 반장이 교탁에 나와 애들을 감독한다. 자습서를 보고 있는데 살포시 쪽지가 올라온다. <백합반 이현주. 새벽 두 시에 독서실에서 혼자 오다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난 쪽지를 고이 접어 뒷자리로 넘겼다. 


오늘은 G 선상의 아리아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침 조례를 하기 전 십 분 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시간이다. 머리 속에서는 첼로의 묵직한 가락을 따라 그 애의 최후가 펼쳐진다. 교복을 열어젖힌다. 단추가 떨어진다. 분명 소리쳤을 텐데 왜 아파트 사람들은 소리를 못 들었지? 입을 틀어막았나? 듣고도 못 들은 척한 건 아니겠지? 범인은 아이를 쓰러뜨린다. 빨간 치마 속에 손을 넣고……


좆 같은 교복 색깔. 


아이들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그 반을 일부러 들렀다 오면서 소식을 물어왔다. 사물놀이 반이었대. 환경 미화부 부장이었대. 엄청 착하고 귀여운 애였대. 


“오늘 자율 학습은 없다. 하지만 원한다면 남아서 공부해도 된다.”

담임이 말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교실은 텅 비었다. 하지만 난 남기로 했다. 원래 세운 계획을 바꾸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집에 일찍 가봐야 속만 터지기 때문이다. 저녁 열 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독서실에 가서 새벽 두 시에 집에 돌아오기. 이게 내 루틴이다. 


저녁 여덟 시쯤 출출해져서 학교 매점에 갔다. 불 꺼진 복도를 지나 매점에 도착했다. 다행히 매점은 운영 중이었다. 매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빵 하나와 우유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막 빵 껍질을 깔 때였다. 누군가 내 앞에 앉았다. 김혜수. 나와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애였다. 아니, 독서실에 다니는 게 아니라 독서실 셔틀 버스를 이용하는 애라는 게 맞는 이야기지. 독서실 도착하면 사라졌다가 집에 갈 때 나타나니까. 어쨌든 평소에 인사도 안 하면서 갑자기 왜 내게 아는 척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무산고에 다니는 내 친구가 있는데.”

그 아이는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우리 학교 선생이 따 먹었다.”

“뭐?”


이런 미친. 갑자기 왜 이딴 소리를 하는지보다 누가 그랬는지가 더 궁금했다. 

“철학?”

“아니 미술.”

“집어넣으면서 울었대. 더 웃긴 건 그 새끼가 절대 교복 못 벗게 했대.”


‘난 책상 앞에서 세상을 본다.’

독서실에 붙어 있는 내 모토이다. 지금은 책상 앞이 내가 보는 세상의 전부이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달라질 거야. 대학에 가면 예뻐져서 초등학교 때 남친 기우를 다시 만나야지. 나는 물고기. 지금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 뿐이야. 앞으로 삼년간은 죽은 듯이 공부만 할 거야. 그 동안은 책을 통해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을 거야. 되도록 말수를 줄일 것, 공부거리는 세분화해서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것. 고개를 숙이고 존재감을 없앨 것. 


그런데 혜수 넌, 그렇게 자유로워도 되는 거야?


살인 사건 후, 어떤 흥분 같은 게 학교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일견 뭔가에 신이 나 있는 듯 모인다. 선생님들도 활기에 차 있다. 밤일에 몰두하느라 학교 오면 축 처지는 게 분명해, 늘 충혈된 눈으로 등장해서 칠판에 알 수 없는 기호만 가득 써놓고 돌아가던 수학의 목소리에도 요즘은 힘이 붙어 탱탱하다. 


점심 시간마다 운동장에서 언니들이 농구를 했다. 애들은 교실 유리창으로 경기를 보며 저마다 좋아하는 언니를 응원했다. 이 언니들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어깨가 벌어진 커트 머리언니를 응원했다. 그 언니가 볼을 잡고 슛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오은영.”

 반장이 날 불렀다. “왜?”

“담임이 와 보래.”

담임이 날 호출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담임 얼굴은 가관이었다. 늘 곱게 화장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보니 콧잔등에 블랙헤드가 선명했다. 담임이 부른 배를 쓰다듬는 행동은 늘 외설스런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남편과 섹스할 때 담임은 어떤 표정일까. 담임은 습관처럼 배를 쓰다듬고 내 앞에 편지 하나를 내보였다. 이미 뜯어진 채였다. 


“남자 친구는 대학 가서 만나.”


김기우. 이 자식. 학교로 편지 보내고 지랄이야. 난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앉아서 편지를 열어보았다. 


네가 전학간 후로 늘 네 생각했어.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학교로 보낸다. 만나고 싶어. 


왜 하필 지금이니. 난 예전처럼 예쁘지도 귀엽지도 자신감 있지도 않아. 넌 이번에 날 보면 분명 다시 날 찾지 않을 거야. 


7월 30일 토요일 2시 기차역으로 나와. 편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다. 




‘난 책상 앞에서 세상을 본다.’

독서실에 붙어 있는 내 모토를 바라본다. 지금은 책상 앞이 내가 보는 세상의 전부이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달라질 거야. 대학에 가면 예뻐져서 초등학교 때 남친 기우를 다시 만나야지. 나는 물고기. 지금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 뿐이야. 앞으로 삼년간은 죽은 듯이 공부만 할 거야. 그 동안은 책을 통해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을 거야. 되도록 말수를 줄일 것, 공부거리는 세분화해서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것. 고개를 숙이고 존재감을 없앨 것. 


아마 지금쯤 기우는 혜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난 물고기. 지금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 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은 7월 30일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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