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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02. 2021

(동화) 악마 엄마, 천사 엄마

“경훈아, 밥먹자!”


엄마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따라 엄마의 더 기분이 좋은 듯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경훈이는 지금 죽을 상입니다.


오 마이 갓!


꿈 속에서 하늘을 나르고 있었는데 수직 낙하하면서 오줌을 싸고 만 것입니다.

아, 바지며 팬티, 그리고 침대 패드까지. 어떻게 처리한담.


경훈이는 고민중입니다.

 

혹시 이 사실을 동생 경우가 알게 된다면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습니다.


“경훈형은 오줌 싸개래요, 경훈형은 오줌 싸개래요,”


하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겠지. 어쩌면 유치원에 가서 그 말을 할지도 몰라. 오늘 형이 아침에 오줌 쌌아요. 으악!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경훈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엄마가 경훈이 방에 들어갔습니다.

경훈이는 혼날 걸 예상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경훈이가 키가 크려고 그러는구나.”


엄마의 친절한 말이 들려왔습니다. 경훈이는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엄마, 밥 줘!”

때마침 동생 경우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시 경훈이의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혹시나 경우가 방에 들어오면 어쩌지?


엄마가 밖에 대고 외쳤습니다.


“잠깐만, 경우야! 엄마 침대 시트가 좀 더러워져서 빨려고 하거든. 좀만 기다려.” 


엄마는 엄마의 침대 시트를 경훈이 방에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시트를 위로, 경훈이의 시트를 아래쪽으로 놓고 그 사이에 경훈이의 바지와 팬티를 넣었습니다.

 

“경훈이,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오렴.”

엄마는 경훈이에게 눈을 찡끗했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이 되는 듯 보였습니다.


“경훈아, 경우야, 우리 오늘 외식할까?”

엄마가 말했습니다.


“와, 좋아요, 좋아.”

경훈이와 경우는 기분이 한껏 들떴습니다.

 

어, 그런데 이번엔 아빠가 엄마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여보, 안방으로 좀 들어와 봐.”


엄마는 아빠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경훈이는 문에다가 귀를 바짝 갖다 대었습니다.


회식, 접대, 미안해, 식당 등의 단어가 들려왔습니다. 


경훈이는 엄마 아빠가 나오기 전에 얼른 거실로 나왔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었습니다.


“밥먹자.”

엄마의 말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미역국하고 밥만 먹고 있었습니다.


아침상에는 경훈이가 좋아하는 반찬이 있었습니다.


소세지! 만세!

경훈이가 소세지를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고 케찹에다가 묻힌 후 입에 막 가져갈 때였습니다.


아!


케찹 묻은 소세지를 흰 바지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놈의 자식이 칠칠맞게시리! 내가 저것 때문에 못 살아!”

악마 엄마가 튀어나온 것입니다.

가끔 악마 엄마는 이렇게 툭 튀어나옵니다.


숙제가 밀려서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을 때에는 “손들고 오 분 동안 서 있어.”하고 말합니다.오 분이 지난 후에 엄마가 묻습니다. “네가 뭘 잘못한 것 같니?” 이때 우물쭈물 답하거나 아무말 하지 않으면 다시 오분이 늘어납니다.


식당에서 경우와 뛰어다닐 때 엄마는 “경훈아, 경우야, 집에서 보자.”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도 엄마 악마가 뛰쳐나오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얌전히 앉아 있자 엄마의 안에서 엄마 악마가 사라지는 게 보였습니다.


지금 엄마 악마는 아주 커다랗습니다.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책가방을 맵니다.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아주 얌전히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엄마 안에는 악마와 천사가 사는 듯합니다.      


오늘은 즐거운 생일 잔치날입니다. 5월달 생일인 친구들이 왕관을 쓰고 과자 파티를 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친구들에게 축하 박수를 쳐 줍시다.”

모두 짝짝짝 박수를 쳤다.

“누구라도 생일날 축하 못 받으면 서운하겠죠?”

그때, 경훈이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혹시 오늘이 엄마 생일 아니야?


그때야 달력 5월 12일에 동그라미가 크게 쳐져 있고 엄마 생일이라고 써 있던 게 생각납니다. 엄마는 얼마나 슬펐을까.


그날 수업 내내 경훈이는 엄마의 생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뭘 사드리지?’


경훈이의 주머니에는 겨우 이천원이 있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 저 멀리 꽃 집이 보였습니다.


“아저씨, 이천원으로 장미 몇 송이 살 수 있나요?”


“한송이 살 수 있단다.”


“엄마한테 드리려고 하는데 예쁘게 좀 포장 해주세요.”


“아이구, 기특해라. 아저씨가 예쁘게 해줄게.”


그리고 문방구에 가서 예쁜 카드를 샀습니다.


“엄마, 오늘 엄마 생일인 거 깜빡 잊어서 미안해요. 오늘 아침에 경우 모르게 내가 오줌 싼 것 빨래통에 넣어 준 거 고마웠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천사 엄마일 때 정말 좋아요.”


경훈이는 달리고 달려 집에 도착했습니다.

엄마는 경훈이의 장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펴서 읽었습니다.


“와, 이거 너무 예쁘다. 우리 경훈이가 다 컸네. 근데 천사 엄마가 무슨 뜻이야?”


“엄마가 천사처럼 예쁘다는 뜻이에요.”


경훈이는 그렇게만 말했습니다. 엄마 악마 이야기는 입에도 담기 싫었거든요.


‘엄마, 계속 천사 엄마만 해주면 안 돼?’

경훈이는 엄마 옆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을수록  엄마가 계속 천사 엄마로만 남아줄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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