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녀의 첫사랑 킹카 쟁취기!
지난 겨울 정훈이와 보냈던 크리스마스는 잊을 수 없다.
가득했던 명동의 사람들.
한발짝도 떼기 힘들 정도로 길거리에 가득했던 인파들.
우리는 겨우겨우 앞으로 나가야 했을 정도였지.
밀레니엄.
동대문 두타가 있었고, 그 앞에서 비보이들이 춤을 추고 우리는 한참 동안 그 춤을 구경했었다.
거리에는 캐롤 그리고 터보의 겨울 노래가 울려퍼졌다.
정훈이는 나를 담요처럼 둘러주었다.
사귄 지 한 백일 정도 되었을 때였으니까 정말이지 불타오를 그럴 시점이었다.
우리 둘 다.
정훈이는 크리스마스에 날 데려갈 곳이 있다며 호텔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다.
정훈이와 이런 곳에 오다니 꿈만 같았다.
바깥의 야경을 보며 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먹었다.
정훈이가 한 점 한 점, 정성들여 모두 썰어준 스테이크 조각들이었다.
스윗한 사람.
정말이지 그는 나의 이상형이었다.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공부도 잘 했고, 운동도 잘했고, 집안도 좋고.
부모님은 크게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훈이는 내게 선물을 내밀었다.
"열어봐. 어울릴 거 같아서 샀어."
오 마이 갓!
역시 있는 집 아들은 달랐다.
명품 백.
도대체 이건 어떻게 구한 거야.
"어렵게 직구한 거야."
바로 루이비통 가방이었다.
아직까지 내 주위에 루이비통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루이비통 고유의 패턴이 참 고상해 보였다.
이미 엄마에게는 친구 미연이네서 홈파티를 하고 자고 간다고 말해 놓은 터였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호텔방이었다.
우와.
숨막히는 장미의 향연이었다.
그는 방 전체에다가 장미를 깔아놓았다.
곳곳이 장미향, 붉은 장미향으로 숨이 막혔다.
정말이지 너무 에로틱했다.
그리고 로맨틱의 정수였다.
"네가 지난 가을 축제에서 박지윤의 성인식을 출 때 말야. 난 그때부터 이 날을 꿈꿨어."
그 노래에 내게 장미를 달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장미로 뒤덮인 침대를 볼 줄이야.
정훈이는 내게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야말로 솜사탕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그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너무 더워 미칠 거 같아 겉옷을 벗어야 했다.
정훈이는 내 코트를 소중히 받아들고 옷걸이에 걸어주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혼란해졌다.
마음 속으로 준비는 했지만 정말이지 이런 날이 올 지는 몰랐다.
난, 처음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장미 침대 위에서 내 몸에서 나온 장미를 침대 위에 흘렸다.
너무나 다정한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와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기억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이쁘게 사랑하며 알콩달콩 잘 지내자,
그는 내 이마와 입술에 수많은 입맞춤을 해 주며
날 끝없이 안심시켜 주었다.
그와 헤어진 후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 날부터 난 정훈이가 너무 좋아서 미칠 지경이 된 거 같고, 조금씩 그에게 집착을 했던 거 같다.
다시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그럴 일.
내가 과거로 회귀한 건 정훈이와 사귄지 이백일이 지난 시점.
음.... 과거라면 서서히 도라이 짓을 보이던 그 때이구나.
하지만 다행히 나는 지금 정신줄을 잘 붙잡고 있다.
대니얼인가 뭐시긴가 하는 놈한테도 잘 빠져 나왔고,
그런데 아까 정훈이가 손금 봐주던 그 여자애가 자꾸 신경 쓰인다.
누굴까.
엄청 예쁘던데.
사실 정훈이 주변에는 여자가 많다. 나에게 남자가 끊임없이 꼬이듯이, 정훈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들은 뭘 도와달라, 아니면 직접적으로 너무 내 스타일이다, 전화번호 달라 하면서 훅 들어온다.
나와 함께 있을 때 정훈이 전화 번호를 달라고 다가오는 애도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믿음을 가지고 그를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미저리처럼 굴다가는
이십년 전처럼 쉽게 다시 한 번 차일 것이다.
이십 년 전에도 그 애가 있었나?
정훈이가 손금 봐줄 정도로 관심을 보인 아이가?
음......
아마도 있었겠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나는 과즙팡팡 블링블링 귀염귀염 인기쟁이 퀸카 스무살 퀸카 김소영이야!
참 다행이야.
스무살로 돌아가서.
만약에 뚱뚱이였던 열아홉살 때였어봐.
어휴. 끔찍해.
그런데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야.
왜, 나는 스무살로 다시 돌아온 걸까.
그리고, 그것도 신라면을 먹다가 갑자기 불현듯.
그렇다면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마흔살의 쭈글쭈글한 나는 여전히 지옥철에 치이고, 시매미에 치이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는 이제 사라진 건가.
아, 복잡하다. 복잡해!
아무튼, 지금 스무살로 돌아온 지금에 충실하자.
이제 축제도 마치고 기말고사가 성큼 다가오고 있잖아.
과탑 김소영의 진가를 보여줘야지.
난 잘 놀기도 하지만 공부는 더 잘 한다는 걸.
"소영아, 오늘 뭐해?"
정훈이와 다정히 아침을 먹을 때 정훈이는 그 밝은 미소를 담뿍 머금고 내게 물어왔다.
"기말고사 얼마 안 남았잖아. 뭐하긴 공부해야지. 너는?"
"오. 김소영. 역시 대단해. 축제 끝나고 바로 공부라니. 내 여자지만 정말 멋있어. 나는 너에게서 많이 배운다."
'뭐래? 전에 여자 후배 손금 봐주면서 나보고 독한 애라고 할 때는 언제고.'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 오늘은 연락이 안 될 거야."
"안 돼. 김소영. 너 점심도 나하고 같이 안 먹을 거야?"
"내가 공부에 빠지면 좀 아무것도 안 보여서 말야. 밥이고 뭐고."
난 이제 예전의 정훈이에게 매달리던 그 스무살짜리 꼬마애가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마흔살 김소영의 영혼을 지닌 스무살인 것이다. 내 미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야지만 정훈이에게 매력적인 여자로 남을 수 있다.
킹카 정훈이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주체적인 녀성이 되어야지만.
"음. 우리 애기랑 못 본다니, 엄청 서운하네."
후훗.
속으로 웃는다.
도서관은 조용하다. 이 도서관의 쥐죽은 듯한 분위기가 좋다. 다들 자기 공부에 빠져 있는 이 모습이.
오늘은 제발 아무런 쪽지도 날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만나달라느니, 하는 그런 쪽지들 말이다. 지겹다.
구석 자리는 아직 남아 있다.
워낙 아침부터 기숙사를 나왔던 터라 아직 내가 좋아하는 구석 자리가 남아 있다.
난 그 자리에 앉아 '국제학 개론'을 편다.
그리고 지금까지 꼼꼼히 필기해 놓은 노트를 찾으러 가방에 손을 넣는다.
앗!
노트!
내 노트!
누구보다 열심히 필기하고 하이라이트 해놓고 퀴즈시험 볼 때마다 부가 설명을 더 해 왠만한 책 한권 쯤은 되는 나만의 비밀 노트가 사라지다닛!
누구지?
아까 분명히 기숙사에서 노트를 가져왔는데.
잠깐 펴놓고 화장실 간 사이에 노트가 사라졌다.
뭐지, 이 불길함은.
그렇다고 여기에 있는 사람을 다 범인으로 몰 수도 없잖아.
뭐지, 이 찝찝함은.
할 수 없이 책을 보면서 최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수밖에.
그때 문자가 울린다.
'뭐? 대니얼?'
극혐.
대니얼과의 미래에 간 일이 있은 이후로 난 줄곧 대니얼을 피해 왔다.
엉덩이 북북 긁으며 마인 크래프트를 처하던 그 모습은 정말 극혐이다.
저 새끼하고는 엮이면 안 돼.
아무리 지금 간지 좔좔이라도 저 새끼는 겜돌이 백수 새끼, 부인 피빨아먹는 새끼로 전락할 거니까.
그런데 왜, 문자가 오지?
ㅡ누나. 뭐 잃어 버리지 않았어?
'뭐지? 이 새끼가 가져갔나?'
머리 속에서 온갖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이 사람들 중 어딘가에 대니얼이 있다.
아까 내가 책가방을 의자에 놓고 잠시 화장실 가는 사이에 그 새끼가 와서 노트를 가져갔다.
아니면, 캠퍼스 어딘가 흘린 노트를 주워서 가지고 있다.
어떤 시나리오건 내겐 그 노트가 필요했다.
그래야 과탑을 지킬 수 있다.
ㅡ뭔소리야. 아침부터.
ㅡ안 찾고 싶은가 보네. 여기 누나 이름 써 있는데. 이런 걸 학교 식당에 놓고 가면 어떻게 해.
아니, 아까 정훈이가 나올 때까지 잠깐 학교 식당에서 본다는 게 거기다가 놓고 온 모양이다.
어쩌면 도서관에서 가져다놓고 뻥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아무튼지 난 지금 그 노트가 절실하다.
ㅡ 찾고 싶으면 하삼지로 와.
뭐? 하삼지?
학교에서 오 분 정도 나가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못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하삼지이다.
그 곳을 같이 다녀오면 커플이 된다는 썰이 돌 정도로 썸타는 애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약간 으슥한 풀밭이 많아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제격인 곳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런 곳에 왜?
ㅡ 시간 없어. 대니얼. 장난 그만 쳐. 학교 식당에서 만나.
ㅡ 장난으로 보이나 보네.
뭐야.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고개를 처박고 공부 중이어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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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삼지에 도착했다.
여긴 한낮인데도 고요해. 이상하게 음침하단 말야.
"대니얼"
난 대니얼을 부른다.
"어, 누나 왔네. 안 올지 알았는데."
그 놈은 다행히 한 손에 내 공책을 가지고 있다.
"응 얼른 공책 돌려줄래? 지금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래."
"응 알겠어. 그런데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어."
뭐지. 이 쎄함은.
"누나, 이상해졌어."
"뭐가."
난 방어 태세를 취한다.
"누나 내 여자인거 잊었어?"
이 새끼가 돌았나.
갑자기 대니얼 새끼는 내게 다가와 키스를 하려고 한다.
우웩.
그 새끼의 손을 뿌리치기에 내 힘은 역부족이다.
"야, 싫다는 데 왜 이래."
"싫긴. 누나도 좋아하잖아. 다 알아."
그건 그때고 이 새끼야. 지금은 너 새끼가 극혐이란 말이야.
"그만해. 대니얼!"
소리치면 그만할 줄 알았다.
"반항하니까 더 이쁘네. 우리 누나."
미친놈.
사패인가 보다.
난 싫다고 온 몸으로 저항을 하는데 그는 날 옴쭉달짝 못하게 조여오며 억지 키스를 하려고 한다.
아, 싫어. 싫다고.
난 목을 도리도리 돌리며 그의 키스를 피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내 몸을 조여오는데......
퍽.
갑자기 헉, 숨소리가 나며 몸이 풀린다.
대니얼이 쓰러진 것이다.
어디선가 날아온 돌에 맞아서 기절한 모양이다.
"괜찮아요?"
좆남이다.
좆남이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난다.
"아, 일부러 쫓아 온거 아니구요. 전 여기서 혼자 공부하면 잘 되더라구요. 그래서 공부중이었는데 어떤 여자가 소리지르는 게 들려서 여기로 와봤더니, 소영님이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제가 시골 출신이라 짱돌을 잘 던지거든요."
"아, 네 고마워요."
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좆남이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우선 노트를 챙겨야지.
저기, 대니얼이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ㅡ얼른 빠져나가요. 우리. 저 새끼 일어나기 전에.
좆남이는 내게 손을 내민다. 나도 모르게 좆남이 손을 잡고 하삼지를 빠져나온다.
헥헥헥.
매점앞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뭐, 음료수라도 사드릴테니 드세요."
우리는 함께 매점에 들어간다.
그는 바나나맛 우유를 고른다.
에휴. 예나 지금이나 식성은 똑같구나. 저 놈의 바나나 우유.
그걸 고를 줄 알았다.
"오늘 많이 고마웠어요. 잊지 않을게요."
"아니에요. 얼른 들어가서 공부하세요. 언제라도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요."
기분이 묘하다. 고맙고 안도가 되는 기분?
아니야, 이건 그냥 위기를 벗어난 후의 순간의 기분일 뿐야.
난 정훈이와 잘 되어야 해.
이 좆남이가 아니라.
난 과즙팡팡 귀염뽀작 블링블링 과탑 퀸카 스무살 김소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