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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세시에 기차역에 나가는 거 잊지 마."
나는 혜경이에게 다시 한 번 당부를 했다.
"응."
혜경이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 독서실 도착하고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냥, 너무 깊숙히 남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윤우 만나면 내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대신 나왔다고 전해줘."
난 자못 비장하게 말했다.
"응."
또 건성으로 대답하며 삐삐를 들여다보고 있는 혜경이.
오 답답해.
"야!"
소리를 빽 질렀다.
순간, 독서실 휴게실에 있는 모든 애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혜경이.
"너 내가 뭐라고 했어? 윤우 만나면 무슨 말 전하라고 했는지 이야기 해 봐."
"너. 걔 좋아하냐?"
갑자기 질문이 돌아왔다.
"지금 나한테 소개시켜주려는 그 남자애 좋아하냐고."
날카롭게 들어오는 혜경이의 질문에 난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다! 어쩔래!"
"그런데 왜 대신 날 소개시켜주는 건데?"
"......."
'나갈 자신이 없어서.' 라는 대답이 머릿 속에 맴돌았지만 차마 나오지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럼, 넌 매일 밤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다가 독서실에 돌아오는 건데?"
"......."
묵묵부답인 혜경이.
"알았다. 알았어. 걔 만나면 너 오늘 아파서 못 나온다고 전해달라는 거잖아. 그리고 걔랑 괜히 엮이지 말고."
오, 제법 똑똑한데.
잘 알아들었네.
눈치가 빠르군.
머릿 속에서는 각종 이미지가 떠올랐던 게 사실이다.
혜경이에게 첫눈에 반하는 윤우.
만나서 바닷가에 가서 키스하는 윤우와 혜경이.
그 모든 이미지가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다가온 토요일.
'이 시간쯤이면 혜경이가 슬슬 집에서 출발해야 할 텐데.'
마음은 노심초사 불안불안했다.
'잘 만날래나.'
'안 되겠다. 나도 가봐야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야지.'
보.고.싶.다.
먼 발치에서라도 윤우를 보고 싶다.
사실 거기에 가려는 이유가 윤우를 보려는 데 있었다.
먼 발치에서만이라도 윤우를 보고 싶다.
내 사랑 윤우.
대학교에서 만나자 윤우야.
지금 난 거북이가 땅 파고 숨어 있듯이 여기서 숨어 있는 거야.
이해해줘.
기차역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엄마! 나 좀 나갔다 올게."
"어딜 가려고? 집에서 동생 좀 봐라. 엄마 시장 좀 갔다 와야 하니깐."
"싫어!"
평소 엄마 말이라면 끔찍히 따르는 나였다.
특히나 장애인 동생을 돌보는 엄마 처지를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기에 나는 되도록이면 엄마의 부탁은 모두 다 들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안 돼!
윤우를 봐야만 해!
엄마, 미안해!
나는 기차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시간은 2시 50분.
세 시에 부산에 도착한다는 무궁화호 소식이 떴다.
아직 십분 남았다.
나는 시간이 남아 화장실에 들어갔다.
내가 윤우를 만날 것도 아닌데 난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넙데데한 얼굴.
생기를 잃은 표정.
살찐 몸.
아니야, 아니야, 이런 몸으로 윤우를 만날 수는 없어.
그래.
이렇게 윤우를 만나는 건 우리 약속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멋지게 변해서 대학에 가서 윤우를 만날 거야!
그 때 화장실 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오. 우리반 찐따가 한 명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애를 나한테 대신 소개시켜준다고 해서 나왔어.
대충 만나서 따먹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알어."
뭥미?
난 귀를 의심했다.
설마, 혜경이?
난 화장실 칸으로 숨어들어갔다.
살짝 문을 열어놓은 채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옆칸 문이 열렸다.
짧은 미니스커트와 긴 다리.
긴 생머리.
혜경이 뒷모습이었다.
뭐, 찐따?
이 년이......
나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할 때는 언제고.
그리고 윤우를 따먹는다고?
이런 시발.
욕이 절로 나왔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야! 이혜경!"
혜경이는 얼음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김소영?"
"너, 지금 나한테 찐따라고 했냐?"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화장실이 떠나가도록.
"풋."
혜경이가 웃었다.
"그러면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이 뭐라고 생각하냐?
이게 찐따 짓이지 뭐냐?"
할 말이 없었다.
"얼마나 찐따면 지가 좋아하는 남자애를 다른 여자애한테 소개시켜주냐?"
"이런 시발년이."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그럴 사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한다고 했잖아."
"무슨 사정인데?"
"네가 알아서 뭐해? 시발년아. 넌 뒤졌어. 나한테."
나도 모르겠다.
갑자기 왠 괴력이 솟아났는지.
난 혜경이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가격했다.
그동안 통통하게 키운 체격 때문인지 절로 힘이 솟는 게 느껴졌다.
"아! 힘 존나 세네."
혜경이는 내 손을 구태여 막지 않았다.
그리고 날 때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대신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내가 말했지?
너하고 나하고는 색깔만 다른 눈깔 사탕이라고.
이제야 맘에 드네.
김소영.
그래. 이게 너야. 이게 너라고.
숨지 마."
휴.
큰 숨이 쉬어졌다.
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용기가 솟아나는 거 같았다.
"윤우인가 뭐시긴가는 니거니까 니가 알아서 처리해라.
나 간다!"
혜경이가 유유히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시간을 보니 벌써 세 시 오분!
윤우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윤우를 찾아 나는 화장실을 나왔다.
혜경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입구에서 초조히 다리를 떨며 기다리는 윤우가 보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이게 나다.
살찌고 여드름 나고 얼굴 큰 내가
바로 초딩 때 학교 짱이었던 김소영이다!
이윤우!
8등신에 멋진 몸매를 가졌구나.
그리고 총명한 저 눈빛은 그대로구나!
어쩌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간다.
너.에.게.
"야! 이윤우!"
난 호들갑스럽게 이윤우를 불렀다.
아까 혜경이를 만나고 난 후에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갑자기 목소리가 커져있어서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어!"
날 보고 깜짝 놀라는 윤우.
그래.
네가 머리속에서 상상하는 내가 아니겠지.
네 머리속에서 나는 항상 예쁘고 멋진 그런 아이겠지.
지금 난 쭈글탱이야.
갑자기, 소심해지는 순간,
"소영아!"
날 부르며 밝게 웃는 윤우!
윤우의 웃는 표정을 보니 마음의 안개가 걷히는 듯했다.
세상이 방긋 나에게 웃어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불쑥,
윤우의 손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길쭉한 손.
우리는 악수를 했다.
"이게 얼마만이야!"
윤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역사를 울렸다.
윤우가 날 깊숙히 응시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뭐 먹을래? 햄버거?"
난 윤우를 이끌었다.
어디든지 들어가야 할 거 같았다.
"야, 부산까지 왔는데 뭔 햄버거야.
바다 구경이나 시켜주라."
그래. 그럼.
우리는 해운대로 갔다.
해운대로 가는 버스 안.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내 사랑 윤우와 한 자리에 앉아 있다니.
나도 모르겠다.
가슴이 쿵쾅거려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바깥을 내다보았다.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이 바깥을.
그리고 그 또라이 독서실 셔틀버스 아조씨가 신해철 노래를 틀어놓고 다니는 이 도로를.
거짓말로 꾸며낸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지나다니던 이 도로를.
지금,
나는,
윤우와 함께 지나가고 있다.
윤우도 긴장했는지 내게 별 말을 걸어오지 않고 있다.
밖을 내다볼 뿐.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윤우는 이 곳의 풍경이 낯설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해운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해운대에.
가족 단위로, 연인 단위로 해운대에 온 사람들로 해운대는 붐볐다.
오 마이 갓!
내 손에 느껴지는 이 따듯한 감촉!
설마 내 손을 잡은 거야?
윤우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미소가 눈부셨다.
"우리 저기 앉자."
윤우와 나는 평평한 바위로 갔다.
그리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윤우는 내게 이어폰 한 쪽을 내밀었다.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이적의 '달팽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풍경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와 윤우만 덩그러니 이 넓은 해변에 있다.
그리고 깊은 바다 저 편을 응시하고 있다.
꿈같은 시간.
"너 기억나?
경권이."
윤우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경권이라면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반에서 따돌림 당하던 아이.
힘없고 늘 해진 옷만 입고 다니던 아이.
"모두들 그 애와 짝이 되기 싫어했지.
그런데 선생님이 물었어.
누가 경권이와 짝 되고 싶은 사람.
그때 네가 손을 번쩍 들었었지."
내가 그랬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였어.
내가 널 좋아하기 시작한 때."
윤우가 날 깊이 응시했다.
우리는 깊게 눈맞춤을 했다.
심장아 나대지 마.
쿵쾅쿵쾅 거리는 내 심장 소리가 윤우에게 들리지 말아야 할 텐데.
윤우는 깊이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아, 저 웃음!
햇살보다 더 빛나는 저 웃음!
저 웃음을 지난 몇 년간 보지 못했었지.
그때마다 쳐다보던 초등학교 때 앨범.
너와 나 아이들과 같이 소풍가서 찍었던 그 사진.
카메라를 보고 개구장이 웃음을 짓던 너.
그리고 빛나던 나.
빛나던 그 시절.
"그런데 여기 부산에서 살인사건 났던데, 뉴스에서 보니까."
윤우가 물어왔다.
"응. 우리 학교야."
난 체념하듯 말했다. 윤우에게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
"너네 학교라고?"
윤우는 놀라서 되물어왔다.
그리고 다급히 외쳤다.
"너 조심해! 알았지? 무조건 열시 이전에 귀가하고. 어두운 길은 다니지 말고. 집에 오면서 어머니하고 항시 연락하고."
뭐야.
갑자기 아빠 모드임?
우리 아빠도 저렇게 잔소리는 안 하는데.
공부 잔소리는 존나게 하지만.
하지만 날 위해주는 윤우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너!
나한테 연락해.
내 핸드폰으로.
너 삐삐나 핸드폰 있어?"
자식, 핸드폰이 있단 말야.
아직 이천년이 되기 전인데.
벌써 핸드폰이 있어?
뭐야.
나는 삐삐도 없는데.
"아니, 나 삐삐도 없어. 그런거 필요없어."
"아니, 삐삐도 없다고?"
윤우가 되물어왔다.
"그래, 삐삐도 없어."
"너 미니홈피도 안 하지?"
윤우가 물었다.
"응."
후.
윤우가 주머니에서 갑자기 무언가를 꺼냈다.
담배였다.
후.
윤우는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뭐랄까.
분위기 갑자기 느와르?
멋진데?
담배연기라면 질색인 나조차도 멋져 보였다.
"당장 삐삐건, 휴대폰이건 개통해.
이건 명령이야."
네가 뭔데 명령이야?
난 속으로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그 모든 게 귀여웠고 동시에 멋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심장은 존나게 뛰고 있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나쁜 새끼들로 가득한데!
너 아직 삐삐도 없냐.
너희 어머니는 도대체.......?"
"나 새벽 두시에 독서실에서 오거든."
"왓!"
윤우가 소리쳤다.
"진짜야? 지금 제정신이야? 너네 학교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새벽 두 시에 집으로 온다고?"
"응."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나.
갑자기 방방 뛰는 윤우.
"오.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무슨 일 나면 어쩌려고."
"야. 호들갑 그만 떨어. 이윤우."
난 윤우를 제지했다.
"그럼 공부는 언제 하고?
지금 이년밖에 안 남았는데, 수능이.
좆나게 공부해야 돼.
그래야, 여길 뜰 수 있다고."
난 윤우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집에 가서 하면 되잖아."
에휴.
집은 전쟁터야.
잘 때까지 티비 크게 틀어놓고 있는 아빠 때문에 도저히 공부가 안 돼.
그리고 집에는 치매 걸린 할머니가 있어서 엄마와 매일 싸우고,
우리 동생은 장애인인 거 알지?
총체적 난국이야.
하지만 난 윤우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휴.........
나도 그러고 싶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 집이 동생 때문에 고향을 떠나오는 걸 아는 윤우는 더 이상 우리 집 사정에 대해 물어오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잡았다.
오 마이 갓!
또 다시 쿵쾅거리는 심장!
미쳐불겄네.
심장마비 걸릴 거 같아.
"내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윤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거면 돼.
눈물이 갑자기 펑펑 쏟아졌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일들.
윤우 하나를 생각하며 버텨내던 나날들.
독서실 귀퉁이에서 생활하던 나날들.
거짓말 치면서 사연 보내고 그걸로 경품 뜯어내고.
그걸로 힘든 수험 생활을 이겨내던 날들......
그 모든 일들이
윤우의 손을 잡자마자 갑자기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엉엉엉.
갑자기 오열이 쏟아졌다.
눈물 콧물.
아 시발. 쪽팔려.
윤우는 날 안아주었다.
이렇게나 따뜻한 품이었다니.
자식 많이 컸네.
이런 스윗한 널 혜경이에게 보내려고 했다니.
예전의 날 졸졸 쫓아다니던 그 어린 날의 윤우가 아니었다.
훌쩍 커버린,
품이 따듯한
넉넉한 품을 가진
그런 윤우였다.
역시, 내 남친이었다!
윤우를 역까지 배웅했다.
윤우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면서 신신당부했다.
매일 연락하라고.
그리고 언제라도 좋으니 자신을 부르라고.
당장 달려오겠다고.
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가 내게 소리치는 게 들릴 정도였다.
행복.
몇 년만에 느껴보는 행복.
행복이었다.
이것은,
낯선 행복이었다.
두근두근,
아직도 윤우의 온기가 남아 있는 손.
용기가 솟아났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집으로 향했다.
"엄마, 나 당장 핸드폰 사 줘!"
엄마는 내 기세에 깜짝 놀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난 엄마에게 뭘 제대로 요구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공부하는 동안 아빠가 집 안이 떠나가게 뉴스를 크게 틀어놓고 있어도 볼륨 좀 줄여달라는 말을 못하고
차라리 라디오를 틀어버리거나, 아니면 귀마개로 귀를 막고 공부하는 소심한 나였으니까.
그런 내가 갑자기 핸드폰을 사달라니,
엄마 입장에서는 놀랄 만도 했다.
"갑자기 왠 핸드폰?"
"엄마는 내가 걱정도 안 돼?
요새 우리 학교에서 벌써 세 명이나 없어졌는데,
엄마는 내가 걱정도 안 되냐구."
난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지친 엄마.
낮엔 장애인 동생에게 시달리고, 밤엔 치매 할머니에게 시달리는 엄마......
그런 엄마가 희미하게 웃다니.
"그래, 알았어. 네 말이 맞아. 엄마가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 써 줬다.
지금 당장 가자. 해줄게."
얻어내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다니.
"고마워 엄마."
난 진심을 담아 엄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첫 메세지.
-나야. 소영이.-
윤우에게 보낸 첫 메세지였다.
금세 전화가 걸려왔다.
"나, 아직 기차 안이야. 잘 들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윤우의 목소리.
"그래. 잘 들리니까 말 소리좀 줄여."
"핸드폰 한 거야?"
"응."
"잘했어! 정말 잘했어!
이제 매일 연락할 수 있겠다."
매일 연락이라구?
오 마이 갓!
"야, 나 공부해야 돼."
"아, 알지 알지.
우리 둘 다 열심히 해서 인서울하기로 했잖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마음이 따듯해져왔다.
우리는,
이어져 있어.
이제 밤새워서라도 공부하는 게 쉬워질 것 같았다.
자진해서라도 밤새 공부해야지.
사랑해.
난 맘속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너무나 소중해서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그 말을 맘 속으로 했다.
사랑해. 이은우.
얼른 독서실로 가야지.
그리고 공부해야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토요일이라 버스를 타고 독서실에 가야 했다.
우리 집은 시내가 아닌 시외에 있기에 근처에 독서실이 없었다.
독서실은 한산했다.
역시나, 혜경이 자리는 비어 있었다.
토요일에 혜경이가 독서실에 올 리가 없지.
내 마음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모든 게 이해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 어려운 수학문제도.
잘 해낼 거야.
난 윤우가 있잖아.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누구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혜경이였다.
"뭐야?"
친하게 지내자고 할 땐 언제고
아깐 딴 사람한테 날 찐따라고 지칭했지.
진짜 이상한 애야.
가까이 하지 말아야겠다.
이상한 애야. 이상한 애.
"야, 잘 만나고 왔냐?"
혜경이가 내게 물어왔다.
적막한 독서실 안의 분위기가 깨지자 누군가 소리쳤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에휴.
어쩔 수 없이 난 혜경이를 끌고 휴게실로 나왔다.
"너, 뭔데?
언젠 친하게 지내자고 하고 뒤에서 엿먹이고.
존나 재수없는 거 알아?"
막말이 나왔다.
"그래! 이게 너지!"
갑자기 호들갑떠는 혜경이.
"난 딱 너 알아봤다. 첨부터.
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같은 부류라고."
"지랄하네."
이상하게 혜경이가 밉지가 않았다.
어쨋거나 혜경이가 개입하며 예전의 잃었던 나를
찾아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마음이 시원해지는 그런 느낌?
"그래, 나 지랄맞은 년이야.
인제 나도 하나 말해줄게.
내가 밤에 왜 그리 싸돌아다니는지."
뭐?
그걸 말해준다고?
갑자기 급 호기심이 생겼다.
교복을 벗고 도대체 밤에 어디를 싸돌아 다니다가 새벽 두 시 셔틀버스가 오기 전 들어와서 잠을 쳐자다가 셔틀버스에 올라타는지.
도대체 어디를 그리 쏘다니는 건지.
누굴 만나러 다니는 건지.
그걸 나한테 이야기해준다고?
차마 내가 물어보지 못했던 그 이야기를 지 입으로 해준다고?
"난 말이야......"
혜경이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