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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혜경이의 얼굴은 자못 진지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어!"
"야!"
하하.
혜경이가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문득, 혜경이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웃는 모습이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도.
이렇게 친구하고 웃어본 적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친구.
내가 혜경이를 친구라 불렀다!
친구?
친구 맞나?
아무튼.
누가 죽인 걸까.
갑자기 의구심이 생겼다.
"왜 우리 학교 애들만 이렇게 죽어나가는 걸까?"
난 혜경이에게 물었다.
"우리 학교 애들이 맛있어서인지도?"
오, 쉤!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제정신이냐?"
"아니, 그노믜 새끼들한테 표적이 되기 딱 좋다는 이야기야.
봐,
우리 학교 애들 다 공부하느라 밤늦게 다니잖아.
열두시까지 학원은 기본이고.
시내 말고 외곽 사는 애들도 많고.
그러니까 범죄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인거지."
듣고보니 딱 그랬다.
오, 딱 나잖아!
문득 윤우가
'일찍 일찍 다녀!
열두시전에!'
하던 말이 생각났다.
물론 지키지 않을 거지만.
어쨋든.
"근데 토요일에 네가 뭔일로 독서실에 다 오고?"
난 혜경에게 물었다.
"왜, 나는 오면 안 되냐?"
"설마...... 공부하러 온 거야?"
나는 의구심에 가득 차 물었다.
설마.
혜경이가 공부하러 온 걸까.
"나, 일있어서 나가봐야 돼.
그럼 즐공!"
에휴. 그럼 그렇지.
무슨 공부를 기대하냐.
무슨 수 쓰려고 알리바이 만들러 온 거겠지.
엄마한테는 독서실 간다 그러고 나왔겠지.
정숙한 옷 입고.
여지없이 엉덩이가 보일락말락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어깨 한 쪽이 드러나는 분홍색 티를 입은 혜경이가 웃으며 나갔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따라가볼까.
몰래.
혜경이가 나간 계단을 나는 따라 내려갔다.
독서실 앞.
저멀리 걸어가는 혜경이의 뒷모습이 먼발치로 보였다.
난 초집중하며 살금살금 혜경이의 뒤를 밟았다.
오, 혜경이가 멈췄다.
나는 근처 건물 뒤로 숨어 얼굴만 내민 채 혜경이를 살폈다.
어딘가 두리번 거리는 혜경이.
그리고 혜경이 앞으로 검은 세단이 멈춰섰다.
올라타는 혜경이.
차는 내가 있는 건물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설마 내가 자기 따라온 거 눈치 챈 거야?
나, 지금 노출된 거니?
휴, 다행이다.
차는 내가 숨어 있는 건물을 지나쳐 그대로 직진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혹시,
얘 지금
무슨 연애 대행 같은 거 하는 건가?
설마......
-벌써 보고 싶다-
윤우에게서 온 메세지였다.
순간 마음 속이 따듯해졌다.
그래, 내게는 윤우가 있지.
내 사랑 윤우.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얼른 들어가서 공부하지 못하고.
그래,
혜경이가 뭘 하고 돌아다니던 간에
난 지금 공부하러 온 거니까.
그런데 자꾸 눈에 밟히네.
그 검은 세단.
엄청 비싼 차 같던데.
거기에 턱 하니 올라탄 혜경이.
도대체 어딜 가는 걸까.
뭘 하는 걸까.
설마 돈 받고, 성행위를 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문득, 혜경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할 게 없는 아이.
이혜경.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학교에서 세 명이나 죽어나가자 학교 선생님들은 저마다 조심하라고 난리였다.
이제는 더 이상 자율학습이 강제가 아니었다.
선택으로 돌아갔다.
일찍 집에 가고 싶은 아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일찍 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
장애인 동생과 동생을 돌보느라 바쁜 엄마.
치매에 걸린 할머니.
퇴근해서 잠들 때까지 크게 티비를 틀어놓고 있는 아빠.
그 틈바구니 속에서 공부를 하기란 영 불가능했으니까.
나는 차라리 남아서 공부를 하다가
원래대로 독서실에 가서 새벽 두시에 돌아가는 걸 선택했다.
시험이 끝나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열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셔틀버스를 탔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참, 너도 너다."
혜경이는 혀를 찼다.
"하여튼 고집 세."
"너만 하려고"
독서실 셔틀 버스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이죽거렸다.
어느 새 우리는 셔틀 버스 옆자리에 같이 앉아 독서실에 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제발, 오늘은 저 또라이 아조씨 좀 노래 따라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ㅋㅋㅋ"
혜경이와 나는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왠일이지?
오늘은 바닷길에서 문도 안 열고 가만히 지나가네.
노래도 안 따라부르고.
오늘따라 독서실 셔틀버스에는 나와 혜경이 뿐이었다.
뭐야.
갑자기 셔틀 버스를 멈추는 아저씨.
뭐야, 뭐야.
그리고 뒷자석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아저씨.
뭐야, 무서워.
설마......
우릴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
"바닷소리 듣고 갈래?"
검은 바다.
온통 깜깜한 바다.
솨. 솨.
문득,
저 바닷 바람을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좋아요!"
혜경이가 거침없이 말했다.
우리 셋은 버스를 내렸다.
그리고 바다 앞에 섰다.
솨. 솨. 솨.
속을 알 수 없는 저 바다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솨솨솨 하면서.
크게 소리를 냈다가 작게 냈다가 하면서.
온통 검은 속에서
바다 내음을 맡으며
난 그 소리를 감상했다.
노래가 절로 나왔다.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혜경이는 춤을 췄다.
파도에 맞춰서, 껑충껑충 뛰면서 팔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왠일인지 아저씨가 잠잠했다.
가만히 바다만 쳐다보고 있었다.
흐흐윽!
바다 앞에서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미옥씨!"
그가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미옥씨! 미옥씨!"
그가 연거푸 이름을 불러댔다.
"차였나봐."
혜경이가 내게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자!"
기사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왠지 이제부터는 그가 싸이코로도, 이상한 사람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친해진 그런 느낌이었다.
미옥씨랑 잘되었으면, 나는 속으로 그를 응원했다.
독서실에 도착하고
나는 내 책상 앞에 앉았다.
예전 같으면 이미 나갔어야 할 혜경이가 왠일로 책상에 있었다.
'왜?'
나는 입모양으로 물었다.
혜경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뭘 더 물어볼까, 하다가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책상 앞에서 세상을 본다-
내 책상 앞에 있는 모토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오늘 해야 할 공부 리스트를 만들고
공부를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엄마였다.
왠일이지.
엄마는 좀처럼 나에게 연락을 해 오는 일이 없다.
그런데, 왜.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소영아!"
다급한 목소리였다.
"뉴스, 뉴스!
얼른 뉴스 봐!"
난 다급히 독서실 휴게실로 뛰어가 뉴스를 틀었다.
-열두시 뉴스 속보, 속보입니다. 부산시 도정동 붉은 여자 고등학교에서 또 다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의 장소는 바로 학교입니다.
오늘 밤 열한 시 경 순찰을 돌던 김모 선생님이 음악실에 죽어 있는 학생을 발견해 신고를 했습니다.
붉은 여자고등학교에서 계속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벌써 네 번째입니다.
교육 당국은-
"오 마이 갓!"
뒤따라온 혜경이가 소리쳤다.
"미쳤나 봐!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나 봐."
음악실이라면,
학교 오층 꼭대기 층에 위치한 외진 곳이었다.
"살인일까?"
갑자기 혜경이가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 주차장에서 살인 사건도 그렇고,
연쇄 살인이겠지.
대담한 놈이네.
학교 안에서 일을 벌이고."
"과연 살인일까?"
혜경이가 또 다시 중얼거렸다.
"뭔 소리 하는 거야?
살인이 아니면 뭔데."
혜경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너 내가 한 말 기억나?
내 친구 우리학교 미술이 따먹었다고."
당연히,
그 충격적인 말은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늘 자기의 쌍둥이 딸을 자랑하던 코가 큰 미술 선생님.
키도 큰 미술 선생님.
그 쌤이 사실은 미성년자와 그 짓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니.
"그 사람이 교복 못 벗게 했다고 했잖아."
"응, 그랬었지."
"막 목도 조르고 그랬대."
"변태새끼."
그렇다면 혹시?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혹시 그 인간이 순찰돌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라면?
혹시 그 인간이 인간 이하의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렇담 그냥 지나갈 수 없지."
난 결연하게 말했다.
의외로 혜경이 얼굴은 담담했다.
"야, 이혜경. 왜 말이 없는데?"
난 혜경을 다그쳤다.
"그게 말이야......"
혜경이 입을 열었다.
"아오. 나도 진짜 그 인간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휴.
"뭔데."
"이너서클이라고.
그 인간이 거기 가입되어 있거든."
이너서클?
난데없이 그게 뭐야?
순간 혼란스러워졌다.
"뭐, 원조교제 그런거야?"
원조교제.
미성년자의 아이에게 돈을 주고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
"뭐 말하자면 그런거지."
헐.
미친.
순간 지난번에 보았던 장면이 생각났다.
혜경이가 검은 색 벤츠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모습이.
"설마, 너도 가입되어 있니?"
"응."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밤에 그렇게 사복을 입고 싸돌아 다닌 거였군.
이런 날라리 중에 상 날라리 같으니.
"그런데?"
"혹시 그 인간이 그랬다면......
전체 이너서클에 큰 타격이 올 거야."
"지금 그게 문제냐?"
나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질렀다.
"그노무 새끼가 그런짓을 했으면 당장 벌을 받아야지.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새끼하고 내 목산고 친구하고 꽤 끈적한 사이라고."
헐. 개소리 지껄이고 있네.
"그리고,
나도 어쩌면 정체가 탄로날지도 몰라."
훗.
그래서였군.
학교에서는 모범생인 척,
나와서는 원조교제를 하는 너란 아이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게 두려운 모양이지.
"야. 정리하고 나와."
난 혜경이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 이상한 클럽인가 모시긴가, 얼른 나오라고."
"알았어, 알았어. 흥분하지 말고.
내가 좀 알아볼게.
잠깐만 기다려 줘."
혜경이는 애절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아오. 혼란하다 혼란해.
휴게실에서 나와 독서실로 돌아왔지만 내 머리 속은 복잡했다.
이런 일에 휘말릴 줄이야.
그건 그렇고,
정말 미술이 그 아이를 죽인 걸까?
어떻게, 그런 일이!
학교 자율학습은 열시에 끝난다.
그런데 열한시에 사건이 발생했다면, 한시간 차이가 날 뿐이다.
그리고 이게 성범죄인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 한 시간 사이에 그가 그 아이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죽였다고?
그것도 학교에서?
자기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음.
그렇다면 진짜 짐승 이하의 인간이구.
그렇지 않다면 다른 누군가가 했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누구의 짓일까.
그건 그렇고 또 난리 나겠네.
내일 아침 학교, 또 터지겠다. 터지겠어.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윤우였다.
"야! 너 괜찮아?"
격양된 목소리의 윤우.
"응. 아무일 없어. 걱정마."
"휴. 다행이다. 도대체 너네 학교 왜 그러냐. 자꾸.
걱정되게."
날 걱정해주는 윤우가 고맙게 느껴진다.
마음이 따듯해진다.
"너, 지금 어디야?"
"집."
독서실이라고 하면 얼른 집에 가라고 할 게 뻔해서 난 그에게 집이라고 둘러댔다.
"일찍 일찍 다니고 있지?"
"그럼, 걱정 마."
단호하게 말하는 내게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윤우의 전화를 끊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뉴스 봤어."
"새벽 두시 이전에 오는 버스는 없대니?
얼른 들어오는 게 낫지 않겠어?"
늘 주눅들어 사는 엄마.
내 눈치를 심하게 보는 엄마.
불쌍한 엄마.
"아냐. 엄마, 밤 열두시나 새벽 두시나 그게 그거야.
그리고 나 공부할 거 쌓였어.
얼른 공부해야 돼.
끊어."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다시 책상에 코를 박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다 잊어버리자.
이 살인 사건,
혜경이, 모든 것을 다.
공부에 집중할 때 머리속에 내용이 쏙쏙 들어올 때의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럴 때면 세상에 나와 책만이 존재하는 그런 기분이다.
마치 고요한 바다, 잔잔한 바다와 같은 평온한 기분.
오늘도 무사히 공부할 분량을 다 끝냈다.
새벽 두 시.
이제 집에 갈 셔틀 버스를 타야 할 때이다.
눈으로 혜경이를 찾는다.
오 마이 갓!
어디 간 거야?
혜경이가, 보이지 않는다.
사라졌다.
응?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난 그 애의 번호를 아직 모른다.
왜였을까.
왜 아직 나는 그 애와 번호를 교환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우리는 아직 번호를 교환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이 오밤중에.
그나마 열두시에 꼭꼭 돌아와 책상에서 쳐자다가 셔틀버스를 타던 그 시절이 고맙게 느껴진다.
그때는 규칙성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도대체. 어디에.
후.
이 어색함.
셔틀버스 안에 아이들이 모두 내리고 나와 버스 기사 아저씨만이 남아있다.
원래는 애들이 내리고, 그다음에 혜경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내가 내리는데.
혜경이와 나는 외곽 쪽에 살기 때문에 우리가 셔틀 버스를 제일 오래 탄다.
나만 느끼는 숨막히는 어색함.
그때 셋이 바다에 간 후에 왠지 아저씨가 의식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날 대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나 혼자만 어색한 것 뿐이다.
바다는 신나게 달린다.
그리고 또 다시 마주한 바다.
앞문을 열어젖히는 아저씨.
그리고 신나게 불러제끼는 트로트.
그래, 이게 아저씨지.
그나저나 미옥씨라는 여자하고는 잘 됐나.
나도 창문을 열어젖힌다.
확.
바다냄새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온다.
시원하다!
상쾌하다!
이 맛에 새벽까지 공부하지.
바닷가 도로를 거쳐서 외곽으로 접어들자 아저씨는 앞문을 닫는다.
나도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느새인가부터 나는 더 이상 거짓말로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셔틀버스에서 내려 오분 정도 걸으면 아파트에 닿았다.
아파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후진 연립 주택단지 같은, 말만 아파트인 그런 곳이다.
왠일인지, 엄마가 나와 있다.
새벽 두 시에!
"엄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장애인 동생을 돌보느라, 치매 할머니를 모시느라 밤낮으로 고단한 엄마는 자는 시간이 그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왜 나왔어!"
먼저 볼멘 소리가 나왔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에휴.
난 언제 철들래나.
엄마는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본다.
"엄마가 나와서 싫어?"
눈치보는 게 습관이 된 엄마가 안쓰럽다.
"그래, 싫어. 인제 나오지 마."
마음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로는 차가운 말이 나온다.
'엄마 자야지.
푹 쉬어야지. 왜 나오고 그래. 그래도 엄마 나오니까 너무 좋다.'
이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에휴.
엄마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다.
"걱정되서 그러지.
우리 이쁜 딸."
"이쁘긴 개뿔."
이번 건 사실이다. 사실 난 하나도 이쁘지 않으니까. 역변의 아이콘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애들 다 하는 미니홈피도 안 하는 나이니까.
옛날에는 한 미모 했지.
인기도 많았고.
하지만 다 지난 일.
"우리 소영이가 안 이쁘면 누가 이쁘냐."
"그만해."
이게 얼마만이야. 엄마와 단 둘이 걸어보는 게.
새벽이라도 좋다.
엄마와 단둘이 걸을 수 있다는 게.
엄마 조금만 고생해주세요. 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효도할게요.
난 입속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