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여고

6

진희의 집에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온통 전원 주택풍인 마을이었다.

다들 제각각의 모양으로 예쁘게 이,삼층 단독 주택이 있는 그런 곳.

그리고 집 안의 주차장에는 모두 페라리들이 기본으로 주차되어 있다.

아무런 경제적 부족함 없이 지냈을 것 같은 추측이 갔다.

내가 진희네 집을 기억하는 것은 집 주소에 18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8의 배수인 360이 들어가고.

그래서 언뜻 본 주소가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

부산시 목연마을 360-18 번지

모두가 알아주는 부산의 부촌.


그 곳에 진희가 살다니, 언뜻 본 기억에도 몹시 놀랐었다.

진희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부자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360-18번지를 찾아보는 거야.

음. 그래.

그럼 출바알~~~

아주 정리가 잘 된 마을이라 그런지

주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참, 그때 갑자기 윤우의 연락이 생각났다.

이번주 주말에 만날 수 있냐고 물었었는데.

아,

대답도 못했었네.

어쩌지.

만날까, 말까.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지.

그때는 어렸을 때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갔었는데.

어딜 가야 하나.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아냐, 아냐.

너, 지금은 진희네 집에 온 거잖아.

정신 차려.

김소영.

드.디.어.

진희네 집 앞에 섰다.


띵동.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교양있는 말투의 어머니인듯한 분.

"진희 친구에요."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진희 엄마는 손쉽게 문을 열어주었다.

와.

정원이 진짜 넓네.

꼭 우리 집을 다 합쳐 놓은 그런 정원이야.

나무들도 많고 꽃들도 많고.

왠지 내가 공주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서 들어와요."

공주풍의 샤랄라 옷을 입은 진희 어머니가 나를 맞아주었다.

털털한 진희와는 정반대로 보였다.

"여기 앉아요."

어머니는 나에게 소파를 권했다.

인조가죽인 우리집 소파와 달리 뭔가 엄청 크고 푹신한 것이 한눈에도 고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다 고급이었다.

벽에 걸려있는 있는 사슴 뿔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같았다.

"뭐 마실래요?

쥬스?"

어머니는 내게 음료를 권했다.

"네."

엉겹결에 나온 대답.

"진희가 친구 데려온 적은 없었는데."

진희 어머니가 내게 쥬스잔을 건네며 말했다.

"재희도 한번도 안 왔었어요?"

나는 놀라 진희 어머니에게 물었다.

"재희?

재희가 누구야?

처음 듣는데."

어머니가 도리어 내게 물어왔다.

"재희라고 진희 단짝 있어요.

세트처럼 붙어다니는 단짝이었는데."

"아냐, 나한테는 학교 이야기 한 마디도 안 했었어."

어머니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랬었구나.

하긴 나도 엄마와 학교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냥, 집은 잠을 자러 들어가는 장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 진희가 어렸을 때는 얼마나 밝고 예뻤는데."

진희 어머니가 갑자기 선반에 있는 앨범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진희 사진을 보여주었다.

유치원 발표회인 듯한 사진.

돌 사진.

환히 웃는 사진.

공주풍의 옷을 입고 사진관에서 찍은 듯한 사진도 많았다.

"혹시, 뭐 좀 알고 있니?"

진희 어머니가 갑자기 나에게 물어왔다.

"네?"

어머니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진희는 학교에서 어떤 아이였어?

집에 오면 아무 말 없이 지 방으로 들어가서."

으흐흑.

갑자기 진희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오마이갓!

"으흐흐윽. 으흐윽."

어머니는 통탄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죄인이야."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내가 내가 죄인이야.

우리 진희가 그렇게 된 건 다 내 탓이야."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실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 진희는 예전부터 미술을 하고 싶어했어.

날 닮아서 그림을 잘 그렸거든."

그랬구나.

어쩐지 집 안 인테리어 하며 보통 센스가 있어보이지 않았는데 그게 어머니의 솜씨였구나.

그리고 집 안 곳곳 배치되어 있는 풍경화들도 아주 예뻤다.

혹시 어머니가 직접 그리신 건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애 아빠가 의사야.

애 아빠 집안이 다 의사거든.

내가. 내가. 자격지심이 있었나봐.

우리 딸도 의사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은.

그래서 내가 애도 의대를 보내야 한다고 고집고집을 부려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게 만들었지."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어머니는 티슈로 눈물을 훔쳤다.

"나도 몰랐어.

진희가 그렇게 힘들어 할 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진희는."

나는 무겁게 입을 뗐다.


"우리반 오락부장이었어요."

"뭐?"

진희 어머니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진희가 학교에서 오락부장이었다고?

집에서는 아예 한 마디도 안 했었는데."

휴.

"집에 돌아오면 바로 과외 들어가서 밤 열두시까지 과외하느라

우리 애랑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어.

주말에는 잠만 자더라고."

어머니 말을 듣고 있자니 한숨만 나왔다.

진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의 세계에서.

"진희방에 한번 가볼래?"

어머니가 일어서며 말했다.

난 어머니를 따라 일어섰다.

이층 계단을 올라가자 큰 또다른 거실이 나왔다.

그리고 뜻밖에 펼쳐진 것은 복도였다.

집이 얼마나 큰지 복도 식으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복도를 지나 방에서 멈추었다.

"여기야."

어머니는 방문을 열어주었다.

우와.

이건 완전 공주풍 방이 따로없었다.

엄청나게 큰 침대에는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레이스 천이 하늘거렸다.

방도 엄청 넓었을 뿐 아니라

양탄자가 있는 방이라니.

꿈의 방이네.

이런 곳이면 방음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난 거실에서 들리는 티비 소리 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로운데.

에휴.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방은 엄청나게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공부가 저절로 잘 될 것 같은 그런 방이었다.

"진희가 가고 나서 발견했어."


어머니는 내게 작은 노트를 보여주었다.

헉.

포켓몬 그림들.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그린 포켓몬 그림들이

모여 있는 노트였다.

와.

난 진희의 그림 실력에 감탄했다.

"진희가 어릴 때부터 포켓몬 만화를 좋아했거든.

띠부띠부씰이 나오고부터는 하도 포켓몬 빵을 먹어대서

못 먹게 했지. 살찐다고.

그런데.......

그런데......

진희는 포켓몬들을 그리고 싶었나봐."

다시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왜그랬을까.

그렇다고 진희가 미술 시간에 두각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일부러 그랬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진희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편지."

으흐흑.

어머니가 더 이상 못참겠는지 자리를 떴다.

나도 그 편지를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라고 쓰인 편지에는

다섯, 여섯 살로 보이는 어린 진희와 어머니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둘은 환히 웃고 있었다.

진희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

난 마음 속으로 진희에게 말했다.

진희야.

진희야.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

그때였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이건 사실 경찰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데.

사건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

내가 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어머니는 여전히 울음에 가득 차서 말했다.

갑자기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난 이렇게 갑자기 엄마를 떠나지 않을게요.

엄마, 내가 이제 엄마한테 더 잘할게요.

나까지 눈물이 났다.

왜 그런지 모를 일이었다.

"으흐흑."

내가 후두둑 눈물을 흘리자 진희 어머니가 더 당황해 했다.

그냥, 이 모든 게 다 너무 슬펐다.

진희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도,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슬픔을 보는 것도,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것도.

휴.

진희 집을 떠나고

난 윤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우야."

"응. 소영아."

나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무언가를 느낀 걸까.

"무슨 일 있었어?"

"아냐. 일은 무슨."

보고 싶어.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런 상처 없이 산으로 들로 서로의 집으로 놀러다니던 우리.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우린 지금 한국의 고2를 보내고 있어.

지금은 아니야.

난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이번주말엔 보기 힘들 것 같아. 미안해."

난 윤우에게 말했다.

마음 속으로는 보고 싶어 죽겠으면서도.

그러면서 맘과 다르게 행동하는 내 모습이 꼭 진희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누군가를 향한 건지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누굴 위해서?

그게 정말 옳은 일일까.

이렇게 머리를 쳐박고 잔뜩 몸을 움츠린 채로 지내는 게.

이렇게 부모와 대화를 단절하고 사는 게.

이렇게 되도 않는 시간들을 보내는 게.

이렇게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채로 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게.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는 게.

어쩌면.

어쩌면.

이건 정말 어쩌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학교에서 벌어졌던 실종, 혹은 살인 사건들이 다

사실은 자살일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진희처럼.

그 누구보다 쾌활했던 진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희처럼 스트레스를 이고 살다가 끝내

이렇게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면.

과연 그들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끝도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이 사건들을 파고 들어야겠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게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겠다.

얌전히 하라는 대로만 살던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왜 이렇게 변한 건지.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살기는 싫었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한 채 연고대를 가더라도

문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의미야. 그게 다.

지금.

지금 내가 어디있는가

그게 더 중요하지 않는가.

하는 어떤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첫번째 아이의 실종 사건은 우리학교 일학년 아이였다.

그 아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때만 해도 나는 조용히 공부만 하고 지내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두번째 사건.

고 3 언니의 실종과 죽음.

떠도는 소문으로는 그 언니는 끔찍하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오마이갓!

그러면서 서서히 우리 학교는 죽음의 붉은 여자 고등학교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세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은 바로 우리 학년 아이.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났던 사건.

성범죄로 알려진 사건.

그리고 그 남자는 야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면서

난 혜경이를 알게 되었고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지.

윤우도 용기를 내어서 만나게 되었고

서서히 예전의 용감했던 내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네번째 사건.

바로 이 사건은 음악실에서 일어났다.

음악실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게 벽에 매인 단단한 밧줄에 몸을 매고 숨진 사건.

그 사건을 신고한 미술선생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풀려났다고 알고 있다.

마지막.

제발 마지막이기를 원하는 다섯번째 사건.

정말 뜻밖의 진희의 죽음.

자살로 판명난 진희의 죽음.

이 다섯 명의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마이갓!

문득 진희 집에서 보았던 어떤 문양이 생각났다.

육각별.

육각별.

거북이 등껍질처럼 육각별이 이어져 있던 그림.

그 그림이 진희 책상 앞에 붙여져 있었지.

그게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제발,

다음 죽음은 없게 해 주소서.


난 다시 윤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윤우!"

갑자기 커진 내 목소리에 놀란 듯한 윤우의 대답.

"어, 왠일이야."

"보자고.

나도 너 보고 싶다고."

나도 너 보고 싶다고.

난 당당히 윤우에게 말했다.

이제 다시는 미래를 저당잡힌 채 현재를 사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절대 진희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진희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진희의 죽음은 나에게 교훈을 주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래. 그럼 이번주 토요일에 갈게.

지난번처럼 기차역에서 보자."

윤우가 말했다.

"좋았어!

그럼 그때 봐.

행복한 하루 보내!"

비로소 속이 시원해졌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렇게 살아야지.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공부하러 가볼까.


독서실로.

독서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내 지금껏 학교 내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추리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에서부터.

문득 음악실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학년 아이.

다른반 이학년 아이.

그 아이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자.

혜경이는 그 사건이 이너서클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이건 아주 다른 종류의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죽음은

성범죄와는 아주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학교에 가서 그 아이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독서실에 도착했다.

고요한 독서실.

내가 좋아하는 이 고요함.

이 고요함이 약간은 낯설게 느껴졌다.

저 머리통들.

모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저 아이들은 각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제발 모두 평안하기를.

제발 모두.

그때였다.

갑자기 "쿵"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서 "아악" 소리가 들렸다.

의자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갑자기 소란해졌다.

이렇게 소란해진 적은 처음이었다.

난 소리가 발생한 쪽으로 달려갔다.

'시온이?'

그랬다.

시온이가 쓰러진 것이다.

시온이가 머리를 땅에 부딪히면서 '쿵' 소리가 났던 거였다.

그리고 옆 아이가 놀라서 악 소리를 지른 거고.

쓰러진 시온이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문득 자는 도중에 침대 위에서 추락하면

별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

이 와중에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공부에만 매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몇 몇 아이들은 시온이를 지켜보고 있고.

나도 모르겠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내가 얼른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하고 올게요."

나는 바로 1층 사무실로 달려갔다.

오마이갓!

아무도 없었다.

늘 있어야 할 독서실장은 어디로 갔을까.

애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실장님은 어디로 갔을까.

앰뷸런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해.

119를 눌렀다.

"여기, 여기..... 진안동 최고 독서실이에요.

학생이 쓰러졌어요.

얼른 와주세요."

신고를 하고 독서실로 돌아갔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응급처치를 해야 하나.

아 나도 몰라.

이런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지 혜경이가 나타났다.

"비켜. 비켜."

혜경이는 손바닥을 모아 시온이 가슴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강하고 빠르게 가슴을 압박했다.

하나 둘 셋, 삼십번.

뒤이어 이어진 인공호흡 2회.

후.

후.

아이들은 모두 뒤로 물러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혜경이는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계속했다.

오 마이 갓!

감사합니다.

시온이가 눈을 떴다.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혜경이는 저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

갑자기 혜경이가 달리 보였다.

그때,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띠용띠용 났다.

그리고 급히 올라온 구급대원.

시온이의 맥박과 동공 상태를 체크하고 난 후 입을 열었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조치하겠습니다. 모두 자리를 비켜주세요."

구급대원은 바로 이송침대로 시온이를 옮겼다.

그렇게 시온이는 병원으로 떠났다.

휴.

다행이다.

모두들 한번씩 혜경이를 쳐다보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서서히.

독서실은 예전의 평온함과 조용함을 되찾아 갔다.

문득 혜경이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해."


휴게실에 앉은 혜경이와 나.

"그래서, 그 이너서클인가 뭔가는 어떻게 됐어?"

풋.

혜경이가 웃었다.

"너야말로 철학이랑 어떻게 됐어?"

"응? 별거 없었는데.

그냥 이야기만 좀 하구."

"휴. 내가 너같은 범생이한테 뭘 기대하겠냐."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뭐? 범생이?

너야말로 그 이너서클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데서 손 떼.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런 짓을 왜 하고 다녀."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기로 한 내 모토를 깼다!

"진짜 그건 아니야.

너 지금 잘못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거라고.

네 몸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지."

응?

이런 꼰대같은 소리를 하다니.

왠일인지 혜경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뭐지?

"그래. 네 맘대로 생각해라."

그러면서 홱 뒤돌아 나가는 혜경이.

뭐야.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아니지 그래도 학생이 원조교제를 하면 안 되지.

그나저나

정말 미술하고 철학샘은 그런 걸 한다는 거야?

진짜 믿을 수가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어진 윤우의 문자.

-토요일날 기차 표 예약했어.

3시에 도착하니까 나와.-

갑자기 마음이 환해진다.

이 세상의 빛을 모아 놓은 듯한 해맑고 건강한 윤우.

보고 싶다.

갑자기 사무치게 윤우가 보고 싶어졌다.

다음 날.

난 음악실에서 죽은 아이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 아이의 죽음 뒤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을까.

진희가 겉으로 보기에는 밝고 쾌활해 보여도 속은 달랐던 것처럼 그 아이도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살인 사건인 것일까.

2학년 장미반에는 아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1학년 때 그래도 친하게 지냈던 미란이.

난 쉬는 시간에 미란이에게 갔다.

교실 뒤쪽에서 "미란아!" 하고 말했다.

미란이가 뒤돌아 나를 보고 밖으로 나왔다.

"소영아!"

서로 교과서나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경우나 체육복을 안 가지고 왔을 때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빌려주고 빌려오는 그런 사이였다.

나는 미란이를 복도 끝 쪽으로 데려갔다.

"미란아.

너네 반 분위기 지금 어때?"

"응? 갑자기 그건 왜?"

원래 뭐 빌려달라는 소리밖에 하지 않았던 내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서인지 미란이는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너희 반에서 죽은 아이 있잖아."

갑자기 미란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담임이 절대 이야기하지 말랬어.

다른 반 애들한테 그거에 대해서."

미란이가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미란이는 모범생이지.

나와 같은.

"그리고 나도 잘 몰라.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뭐.

"그런데 갑자기 왜 묻는 거야?"

"아니.

우리반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잖아.

너도 알지?

그 일이 있고나서 나 좀 마음이 안 좋더라구."

갑자기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미란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왜, 너하고 무슨 관련이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 애가 사실 엄청나게 활발한 우리반 오락부장이었거든.

그런데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반한테 그리고 나한테도 큰 충격이었어.

그리고 나서 나도 좀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고."

"어떻게?"

갑자기 미란이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죽은 애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던 게 많더라고.

어떤 아이인지.

뭘 좋아하는지.

난 전혀 모르고 쟤 왜 저렇게 나설까, 하는 그런 생각만 했었거든.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나니까

뭐랄까.

그냥 좀 더 다른 죽은 아이들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할 것 같은 그런 책임감이 들기도 하고 말야."

"오!"

미란이가 박수를 쳤다.

"야, 너 완전 멋지다.

뭔가 달라진 것 같아.

예전에는 남 일에 신경도 안 썼잖아."

"그랬지."

"네 뜻이 그렇다면 내가 하나 말해줄 게 있어."

미란이가 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순간,

벨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 끝난 것이다.


우다다다.

나는 뛰어서 반으로 돌아갔다.

교련 시간이라 일초라도 늦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교련은 정말 이상하고 미친 인간이었다.

뭐라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지만

하여튼 절대 복종해야 하는 인간.

"자 오늘은 응급처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교련 책에는

마네킹이 그려져 있고 흉부 압박을 하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순간,

혜경이가 시온이의 가슴을 압박하던 게 생각났다.

혜경이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미스테리한 아이란 말이야.

다음에는 인공호흡 장면.

그래, 혜경이도 시온이에게 인공 호흡을 했었지.

그 장면도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후,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뜨던 시온이.

혜경이 자리를 보니

혜경이는 교과서 사이에 무슨 책을 끼어 놓고 그 책을 보고 있었다.

앗! 위험해!

교련은 눈이 백개 달린 인간이야.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인간이라고.

나는 혜경이가 제발 걸리지 않기를 빌었다.

오마이갓!

혜경이 쪽으로 서서히 걸어오는 교련.

혜경이는 그것도 모르고 책에 빠져 있었다.

큰일이다. 큰일.

"선생님!"

나도 모르게 외쳤다.

갑자기 교련이 날 보았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흉부 압박을 삼십 번 하고 나서 그다음에 인공호흡을 해야 하는 것 맞나요?

만약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오면 어떤 것부터 해야 효율적인가요?"

쟤가 날 놀리려고 이딴 질문을 하는 건가

교련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사실은 저희 할머니가 심장이 안 좋으셔서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싶어서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할머니 심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어쨋든 혜경이 너 딴 짓 그만하란 말이야.

내가 이상한 질문을 하자 무언가를 느꼈던지 혜경이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혜경이에게 눈짓을 했다.

혜경이는 급히 교련 책 사이에 끼워놓았던 책을 서랍에 넣었다.

"오, 좋은 질문이에요......"

교련은 혜경이 쪽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교탁으로 돌아갔다.

휴.

다행이다.

혜경이가 나를 보며 엄지척을 했다.

내 짝궁 민지도 내게 엄지척을 해주었다.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쉬는 시간.

나는 미란이에게 달려갔다.

아까,

미란이가 하려던 말을 마저 듣기 위해서.

그런데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다들 어딜 간 거지?

체육 시간인가?

나도 모르게 사물함 쪽으로 이동했다.

죽은 아이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장신지.

장신지.

이름이 특이해서 나도 모르게 외우게 된 이름.

아이의 사물함은 아직 남아 있었다.

사물함에 이름표도 그대로 붙여 있었고.

이래도 될까,

나도 모르게 신지의 사물함을 열었다.

사물함에는 아직도 추모하는 꽃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카드가 가득했다.

좋은 곳에 가라, 하는 그런 내용들이었겠지.

난 대체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추모할 생각은 왜 하나도 못한 걸까.

아무튼지, 무슨 단서가 없을까.

저게 뭐지?

사물함 벽에 붙어 있는 것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육각별.

육각별이었다.

내가 진희네 집에서 보았던 그 육각별.

오마이갓!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 둘은 서로 알고 있었던 걸까.

순간, 아이들이 왁자지껄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미란이를 찾는 척했다.

"미란아!"

하지만 미란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지금 운동장에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다음은 과학 시간이라 나도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육각별.

머리속에서는 그 육각별이 떠나지 않았다.

거북이 등껍질과 같은 육각별.

진희의 책상 앞에서도

미란이의 사물함 속에서도 그 육각별이 보였다.

이것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마이갓!

혹시,

이 둘이 연결되어 있다면.

나도 모르게 촉이 발동했다.

재희!

재희라면 알지도 몰라.

육각별에 대해서.

진희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까.

과학 시간에 나는 내내 재희의 동태를 살폈다.

재희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우리 중 가장 슬픔을 감추고 있는 아이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

"재희야,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난 점심 시간에 재희를 운동장 구석으로 불러냈다.

단도직입적인 내 말에 재희는 놀란 듯 쳐다보았다.

"너 갑자기 왜 그래?"

재희가 날카롭게 물었다.

"왜 갑자기 여기저기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구냐고.

아까 네가 혜경이 혼날뻔한거 도와준 거 알아.

근데 너 혜경이하고 원래 이야기도 안 하잖아.

그리고 얼마 전 철학 샘한테 갑자기 이상한 말 해서 울면서 사과하게 만들고.

너 혹시 2학기 반장되고 싶어서 그러니?"

아오 열받아.

아무리 친구의 죽음 때문에 속상해 있어도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갑자기 열이 확 받았다.

"너만 슬픈지 알아?"

"참 나.

나만 슬픈지 아냐고?

너 진짜 웃긴다.

진희하고 원래 이야기 한 번 안 하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러는데."

재희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래, 그러는 너는?

진희네 집에 한번이라도 가봤냐?"

이 말을 해놓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실수 했구나.

재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혹시 진희네 집도 가본 거니?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니?

갑자기 정의의 사도처럼 행동하는 그 이유가 뭔데!

재수없어 진짜."

재희가 소리를 쳤다.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이 다 우리를 쳐다볼 정도의 큰 소리였다.

"에이. 씨."

재희는 등을 홱 돌려 가버렸다.

그 때 보았다.

재희 교복에 수놓인 육각 무늬를.

아주 조그맣게 수놓은 육각 무늬.

마치 축구공을 펼쳐 놓은 것 같은

저 육각 무늬가

재희 교복 옆자락에 조그맣게 수놓아져 있었다.

오 마이갓!

이런 불길한 전조가!

왠지,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음은 재희의 차례인가.

불길함이 치밀어 올랐다.

"재희야!"

난 재희를 불러세웠다.

재희는 날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주제넘게 느껴졌다면 미안해.

하지만 재희야.

재희야.

나쁜 마음 먹지 말아라.

알았지?

나한테 이야기해.

힘들면."

나도 몰랐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재희는 나를 한 번 째려보더니 다시 등을 돌렸다.

마치 '네가 뭐라구?' 하고 말하는 듯했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세 아이에게서 육각별을 본 것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전의 사건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아까 미란이가 하려는 말이 뭐였을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지만 더 이상 미란이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내가 찾아갈 때마다 번번히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나를 피하는 건가.

그렇다면 왜.

숨겨진 뭔가가 있는 걸까.

마치 탐정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나쁘지 않아.


미란이네 반 아이 이전에 실종 사고의 당사자는

고3 언니였다.

아는 고3언니라고는 나의 짝언니 뿐.

예를 들어 내가 2학년 백합반 14번이면 내 짝 언니는 3학년 백합반 14번 언니가 된다.

암묵적인 룰로서는

발렌타인 데이에 짝 언니에게 초콜렛을 선물하는 그런 풍습이 우리 학교에는 남아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수능 엿 챙겨주기!

이건 그냥 필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직 수능까지는 100일 넘게 남아 있다.

어떤 극성맞은 아이는 수능 100일전 날도 맛있는 걸 사다가 언니에게 바치기도 한다.

내 짝 언니는 약간 보이쉬한 스타일이다.

커트 머리를 하고 가끔 농구도 한다.

일단 농구를 한다는 건, 인기가 많다는 그런 뜻이다. 여고에서는.

그리고 조막만한 얼굴에 키가 크다.

아마 내 짝 언니를 좋아하는 애도 있을 거다.

나도 '안녕하세요. 여기 14번 언니 누구세요?" 하고 물어봤을 때 언니의 멋진 모습에 헉 했었으니까.

더군다나 여기는 남학생 하나 없는 여고.

농구코트에서 열심히 농구를 하는 고3언니들을 응원하는 아이들의 감정을 비유하자면 유사연애라고나 할까.

"와 언니 멋있어!"

"야, 내 언니거든. 넘보지 마라."

이런 대화를 하면서 아이들은 창문에 붙어 농구하는 언니들을 응원하니까.

그 언니에게서 무슨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고3 교실 복도로 올라가 본다.

역시 살벌하게 조용하다.

나조차도 살금살금 발소리를 내지 않게 된다.

그만큼 조용한 고3 복도.

그러다 복도를 걸어오는 누군가를 보았다.

철학샘.

"안녕하세요."

나는 공손히 인사를 한다.

"응. 안녕 소영아."

그는 밝게 웃으며 내게 답인사를 해준다.

선생님의 밝은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선생님은 밝은 게 어울려.

백합반에 도착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무시무시하게 조용한 교실.

지금은 자율학습 시간.

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돌아가야 하나.

그 때 철학이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누구 찾아왔니?"

"짝 언니요."

"내가 불러줄까? 너 백합반이지?"

아.

가슴이 뛴다.

역시 인맥이 중요하군.

철학샘은 백합반 앞문으로 들어가더니

쓱 뒤를 돌아 날 보고 묻는다.

"언니 이름이 뭐야?"

"기영언니요."

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기영아! 여기 네 팬클럽 왔다. 나와봐."

일부러 큰 소리로 소리치는 철학쌤.

아이구. 못 말려.

순식간에 교실에서 "와" 하는 웃음 소리가 들리고 뒷문으로 기영언니가 나온다.

오. 후광이 비친다.

8등신에 보이시한 스타일의 언니.

호리호리한 몸매.

안경을 쓴 이지적인 모습.

언니는 갑자기 등장한 날 보고 당황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도에서 만날 때는 빠짐없이 인사했지만

그 외의 나는 언니에게 첫 인사를 하러갈 때 빼고는 찾아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영아. 잘 지냈어?"

역시 웃으며 쾌활하게 내게 말을 걸어주는 언니.

멋져.

"언니 잠깐 시간 돼요?"

"응. 잠깐만."

언니는 교실에 들어가 반장인 듯한 다른 언니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뒷문으로 다시 나온다.

"우리, 바람 쐬러 옥상 갈까?"

"좋죠."

그렇게 올라간 옥상.

처음 와 본 옥상.

나는 옥상이 학생들에게 개방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오마이갓!

여기저기 담배들이 있네.

설마, 언니도?

에이, 그건 아니겠지.

응?

언니가 체육복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은 바로 담배?

순간 윤우가 담배 피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뭐야.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담배를 피워도 되나.

그건 그렇긴 한데 간지라는 게 이런 건가.

아우. 간지고 뭐고 목이 따가워.

켁켁.

언니의 담배 냄새에 내가 켁켁거리자 언니가 담배를 눌러끈다.

"오. 미안. 먼저 물어본다는 게 그만.

스트레스 쌓이면 옥상에서 담배 피우는 게 습관이 되서."

아무도 없는데도 언니는 내게 속삭이듯 말한다.

"사실 선생님들도 다 알아.

우리 고3들이 스트레스 풀러 여기 올라온다는 거.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거야.

철학 있지?

철학은 같이 피기도 해."

오. 그렇구나.

왠지 철학이라면 그럴 법도 했다.

"미술샘도요?"

그러자 언니가 깜짝 놀란 듯 물었다.

"어? 너 미술샘하고 철학샘하고 친한 거 알아?

그거 아는 후배 애들 몇 안 되는데."

"아니, 뭐 그냥.

느낌이 비슷해서요."

나는 대충 얼버무린다.

"오. 소영이 촉이 좋네.

그런데 언니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혹시 무슨 고민 있어?"

역시 친절한 언니.

나는 언니에게 마음을 열 생각을 왜 하지 않았던 걸까.

이렇게나 착하고 따듯한 언니에게.

"언니.

얼마 전에 고3 언니 실종됐잖아요."

"응. 그랬지."

갑자기 언니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그 언니 어떤 사람이었어요?"

"갑자기 그건 왜?

너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지?"

언니가 걱정스레 묻는다.

"아니, 그건 아니구요.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뭘 알아보려는 건지 언니한테 말해주면 언니도 아는대로 이야기해줄게."

난 언니에게

진희네에서 본 육각별과,

같은 학년, 죽은 아이의 사물함에서 본 육각별,

그리고 진희의 가장 친한 친구의 교복 자수 육각별에 대해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언니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져 갔다.

"언니 뭐 짚히는 거 있어요?"

"글쎄.

그 아이와 나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

그 아이도 대개 쾌활하고 성격 좋았거든.

그런데 희안한 점이 있었는데

가끔 학교에 안 나온다는 거였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그러려니 했지.

그런데 그 아이가 실종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언니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그 아이가 사실은 많이 아팠대.

그래서 한달에 한번씩 부산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왔던 거였더라고.

나도 몰랐어."

"무슨 병이었는데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심장 쪽이 안 좋았다고 하던데."

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혹시......그럼 자신의 병을 비관해서 사라진 걸까요?"

"모르지.

지금 어디 있는지는.

언니, 담배 한 대 피워도 될까?

갑자기 담배가 심하게 땡기네.

그 이야기 하니까."

"네."

나는 언니 옆에서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 언니 어디 사는지 알아요?"

켁켁.

갑자기 언니가 기침을 했다.

내 말에 놀란 것이다.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찾아가려고?"

"음. 아무래도 그래야지 제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언니는 뭔가 깊이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럼 같이 가자."

언니는 뭔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언니,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어떻게 가요.

괜찮겠어요?"

"공부?"

언니가 갑자기 내게 되물었다.

"공부가 뭐라고 생각해?

그냥 사는 게 다 공부야.

지금 너하고 나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인생 공부고.

공부는 책상 앞에서만 하는 게 아니야.

나 사실 놀랐어.

나도 생각 못했던 걸 네가 제안해서.

왜 나는 집에 찾아가 볼 생각 한 번 못했을까.

네가 나보다 낫다."

언니는 날 툭 치며 말했다.

역시 멋있어.

내 짝 언니.

"내가 주소하고 좀 알아보고 연락줄게.

너 핸드폰 번호 있니?"

"네."

문득, 윤우의 말을 듣고 핸드폰을 개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김소영!"

아직 반에 핸드폰 있는 애가 몇 없어서 그런지 언니는 내게 엄지척을 해주었다.

언니는 자신의 애니콜 핸드폰을 열고 내 번호를 입력했다.

"내가 연락 줄게.

언제 날 잡아서 빠른 시간 내에 다녀오자."

"네!"

"대단하네. 우리 소영이."

언니의 말에 문득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제가 더 감사하죠."

"그럼 언니는 내려가야 하니까 넌 좀 더 여기 있다가 와."

언니는 먼저 내려갔다.

와.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왜 공부에 지친 언니들이 이 곳에 찾아오는지 알 것 같았다.

자유를 찾아.

나는 담배연기 대신 크게 공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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