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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29. 2022

내 아가들

 

우리 냥이들 앞에서 참 많이 울었다.

무기력해 죽겠는데 일하러 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힘들어서.


달 전 무작정 정신과약을 끊어버렸다.

내 맘대로.


약을 끊을 당시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나는 내가 더 이상 정신과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뭔가를 깨달은 것도 사실이었다. 예약을 취소해달라고 병원에 연락하고 한 일주일간은 좋았다. 나를 괴롭히던 우울과 불안이 사라지고 감사함이 깃들었으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만 믿으면 난 이제 우울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내세의 약속을 붙잡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난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이니까. 다시는 불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우울과 불안 증세가 있었는데 사실 불안 증세는 많이 사라진 것 같긴 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하지만 우울은 달랐다. 우울은 집요했다. 아무리 응모해도 뽑히지 않는 내 글. 흔들리는 자존감. 과거에 대한 후회. 특히나 내 지난 이십오년을 괴롭히던 문제, 대학 진학을 내 뜻대로 하지 못했다는 실패감이 다시 날 뒤흔들어 아침마다 괴롭히는데 그 늪은 참 깊고 질척거렸다.


일어나 거북이 먹이를 주고 고양이 물을 갈아주는 것조차 힘들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거북이 먹이를 주고 고양이 물을 갈아주고 다시 누워 잠 속에 파묻히는 것. 열두시가 지나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죽상으로 운전해 학원에 도착하는 것.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대화하는 것. 이 모든 사회 활동이 너무나 싫었다.


우리 학원에서는 수업 전에 잠시 모여 성경책을 읽고 말씀을 나누는 큐티 시간이 있다. 그 큐티 시간을 내가 하자고 주장한 게 참 아이러니이다. 내가 먼저 하자고 시작한 큐티 시간을 없앨 수도 없고. 하지만 지금 나는 엉망진창인걸. 그냥 숨고만 싶은데 어떻게 좋은 말을 나눠. 그럴 힘이 없는데.


어느 날이었다. 시편 내용이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생이 한 호흡과 같이 찰나일 뿐이라는 구절. 그걸 읽는 순간 눈물이 터져나왔다. 한차례 집에서 냥이들 앞에서 울고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학원에서 울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당황하고 원장님도 당황하고.


인생이 이렇게 짧은데 난 이 인생을 붙잡고 이렇게 안달복달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깊게 때렸다. 뭐하려고, 뭐하려고...... 인생은 이렇게 짧은데 그 안에서도 뭔가를 해보려고 애닮아 하는 내 모습을 내가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뭔가 해보려고 애쓰다 넘어진 나.


그 후로 난 자주 울었다. 성경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고모 생각이 나서 울기도 하고, 고양이 생각이 나서 울기도 하고. 내가 학원에 애들을 가르치러 가는지 성경 공부를 하러 가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솔로몬 역시도 잠언서에서 모든 것은 헛되도다, 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 일에 만족하고 거기서 기쁨을 얻는 게 복이다, 라는 말도 나온다.  


사는 건 고통스러워. 일은 원래 힘든 거야. 그래.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사는 거야.


아이가 없는 나는 지난 7월 첫 날, 새끼 고양이를 들였다. 그때는 내가 고양이 정도는 감당하며 살 수 있을지 알았다. 복용하던 정신과 약 때문이었을까. 자신만만했다. 고양이는 사랑스러웠고 나는 '아기'라고 고양이 이름을 붙였다. 나도 엄마야. 아기의 엄마. 고양이 이름이 '아기'니까 난 자연스레 아기 엄마가 되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기 없는 결핍을 메우려고 했던 걸까. 내 안의 결핍은 채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기는 날 자주 물었다. 그리고 심심해했다. 자신만만했던 나는 두 마리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기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한 마리 더 들였다. 둘째 아이는 엄청나게 활동적이었다. 아웅다웅거리면서 합사의 과정을 지나 두 아이는 잘 지내고 있다. 둘째의 이름은 '순둥이'이다. 너무나 활동적이어서 첫째에게 지나치게 달려들어 힘들게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지어준 이름이다.


고양이들은 독립적이라고 하지만 꼭 그런것 같지도 않다. 다양한 방법으로 엄마인 나를 찾는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난 더 이상 옷쇼핑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저것 냥이들에게 드는 돈도 많아졌고 냥이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훅훅 간다.


이렇게 지금 나는 살아가고 있다. 자주 운다. 그리고 그 울음은 감동에 가깝다.




+ 내가 조금은 나아졌다고 느낀 점) 차 사고가 날 뻔했던 일을 겪은 후 차를 놓고 다시 뚜벅이 생활로 돌아갔다. 그런데 도리어 좋다. 사람 구경도 하고 운동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고 일하러 다닌다. 마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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