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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an 14. 2023

금요일

토요일 

토요일 아침에는 온라인으로 영어 모임을 한다. 끝나고 나서 오랜만에 한가하게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 주중 오전은 세워놓은 계획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소파에 퍼져서 있을 시간이 없다. 나름의 루틴을 세운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루틴을 세우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성취감을 느끼기에 좋고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인스타그램에서 봤기 때문이다. 


퍼져 있기 좋은 날씨. 마침 오늘 아침은 안개로 뿌옇다. 하루 종일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이유는 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흐리고 안개 낀 날씨.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토요일. 


토요일, 일요일을 위해 일주일을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 기분좋은 상쾌함을 느꼈다.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일하는 곳으로 날 데리러 온 남편과 내가 일하는 곳 건물 일층에 있는 치킨 집에 미리 주문해 놓은 치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드디어 금요일이다!"

고양이들 앞에서 크게 외쳤다. 맛있게 치킨을 먹고 냥이들과 재미있는 놀이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서인지 웃음이 절로 났고 아이들과 풍성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남편과 냥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털실로 냥이들을 위해 공을 만들어 주었다. 쌩~ 그 귀여운 앞발로 공을 드리블하면서 뛰어다니는 냥이들을 보니 마음이 행복해졌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또 기쁘게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 이틀이 꽉 차게 남아 있다! 


이게 바로 금요일 밤이 주는 행복감이 아닌가 싶다. 토요일, 일요일. 남은 이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 그 기대감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영어 모임을 하고 점심으로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갓김치와 함께.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 짜파게티는 반만 먹었다. 왠일인지 그래도 배가 불렀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서 본격적으로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각종 유머들을 보았다. 그러다가 박해수 배우의 위키백과를 읽었다. 인스타그램에 박해수 배우가 출연하는 SNL이 올라왔는데 엄청나게 웃겨서 그 후로 박해수 배우가 좋아졌다. 그 진지한 얼굴로 유머를 구사하는 게 정말 맛깔난다. 


그렇게 한두시간 시간을 보내자 그래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란, 글을 쓰는 일이다. 그래. 이렇게 시간을 죽이기보다 뭔가 아이디어 하나라도 더 생각해 내고 글로 연결시켜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밤 날 그렇게 행복하게 만든, 내 맘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꽉 찬 이틀 중 하루가 벌써 반절이 지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난 맘 놓고 시간을 허비하지 못하는 인간인가 보다. 한시부터 두시까지 맘대로 놀아야지, 이렇게 마음을 먹고 한시간 놀면 그 후로는 뭔가 내 기준에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만 속이 편해지는 사람. 만약 내일 하루를 그냥 소파 위에서 보내고 싶다면 미리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지, 하고 그 전날 마음 속에서 계획을 해야지만 되는 사람.


그래서 난 노트북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마다 자주가는 커피숍에 가서 뭐라도 끄적여볼 생각이었다. 


오마이갓! 


생각지 못한 복병들을 만났다. 내 앞에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네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가 가려는 커피숍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제발, 제발 다른 곳으로 가 줘! 


난 마음 속으로 외쳤지만 그들은 난 ___ 먹을래! 를 외치며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그 커피숍에서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떠드는 초등학생 두 명을 경험했던 터였다. 아마 이 네명도 와글와글 떠들지 않을까. 그러면 난 쓰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네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가 초등학생에 관한 이야기잖아.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떠든다고 꺼려하는 게 좀 우습지 않니. 너는 더군다나 초등학생을 가르치잖아.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해도 내 손은 키오스크 위에서 이미 테이크 아웃 음료를 주문하고 있었다. 나도 몰라, 저절로 손이 그렇게 움직이는데. 주중에 초등학생을 매일 접하고 가르치기 때문에 쉬는 날에는 좀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보다. 


음료를 주문해 주민 공용 공간으로 가서 노트북을 폈다. 그 곳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음료만 마시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집에서 노트북을 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의 남은 시간은 뭘하면서 보낼까. 소파에서 뒹굴거리면 하루가 끝날 때 허무하게 보냈다고 자책할 것 같다. 시장에 거북이 줄 치커리를 사러가야 하나. 와, 나가기 싫다. 가만히 있고 싶다. 나갈까, 나가지 말까, 갈등 생기네. 


이거, 토요일 계획표도 미리 짜놔야 하나. 아니야. 그건 너무 잔인해. 계획표대로 생활하는 건 주중으로 족해. 토요일은 맘대로 지내자. 아니야,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잘 활용해야지. 영어 공부도 하고 글도 좀 더 쓰고 아이디어도 더 짜내면서. 


잘 쉬어야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거야. 너무 스스로를 볶지 말자. 

잘 쉬는 거? 말이 좋지. 소파에서 인스타그램 보는 게 과연 잘 쉬는 걸까.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 공부라도 하는 게 남는 거지. 퍼져서 시간을 보내면 후회만 남을 거야. 


머리 속 두 강자들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 과연 누가 이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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