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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an 25. 2023

네 마음을 알고 있어

꾹꾹이

인생이 어려운 이유는 언제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할지 언제 다른 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고양이는 첫째 눈치를 심하게 본다. 며칠 전 자고 있는데 둘째가 골골거리면서 다가왔다. 내 머리맡으로. 아이, 이뻐 하면서 둘째를 쓰다듬어주었다. 한창 둘째를 쓰다듬고 있는데 의자에서 자고 있던 첫째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둘째는 첫째가 내게 다가오는 걸 느끼면 슬며시 자리를 피한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 같다. 그걸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이런게 동물의 서열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단순히 성격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첫째를 쓰다듬고 나서 꼭 둘째도 쓰다듬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둘째는 가만히 있기보다 빠져나가려고 한다. 첫째 눈치를 보는 게 느껴진다.


내가 첫째를 쓰다듬고 있으면 둘째는 저만치에 누워 있다. 내가 첫째를 쓰다듬는 걸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듯이. 둘째에게 다가가 쓰다듬으면 달아난다. 도망가더라도 둘째가 내 곁에 서성이면 무조건 만져준다. 속으로 얼마나 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불쌍해.


남편의 말. 남편도 알고 있다. 둘째가 이러는 걸. 둘째는 사람에게 꾹꾹이도 하지 않는다. 둘째가 꾹꾹이를 하는 건 따듯한 담요이다. 사람이 아니라. 꾹꾹이란 고양이들이 양 앞발을 교대로 밟는 행동을 칭한다. 마음이 편안하거나 좋을 때, 또는 무언가에 애정을 느낄 때 꾹꾹이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둘째는 아기였을 때부터 오직 담요에만 꾹꾹이를 했다. 하지만 첫째는 나나 남편에게도 가끔씩 했다. 어젯밤이었다. 자다가 깨었는데 고양이들이 잘 있나 보러 거실에 들렀다. 첫째는 캣타워에서 둘째는 스크래쳐 위에서 자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첫째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어깨에 발을 얹더니 곧장 배 위로 가 자리를 잡았다.


꾹꾹이를 하려는가 싶었다. 내 배가 푹신해서인지 두 발을 배 위에 얹고 부지런히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가면서 걸음을 하는 고양이. 고양이가 사람에게 꾹꾹이를 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거라는데. 귀여워. 너무나 사랑스러워.


내 마음을 만져주는 첫째 고양이의 꾹꾹이. 그리고 둘째의 담요 꾹꾹이. 모두 소중해.

고양이를 보러 얼른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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