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원장이라는 사람

어제 정말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어제는 월급날. 하지만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새학기로 학원이 바빠서 원장이 신경을 못 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원래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어제 남편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 자기 월급날이잖아. 치킨 먹을까.

난 건물 일층에 있는 치킨집에 사십 분 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학원 청소를 하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는 금방 끝나겠지, 하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알고 보니 그 회의의 주 요리의 재료는 나였다.


나와 원어민은 아이들에게 영어 작법을 가르친다.

예를 들어 my sunday가 주제이면 내가 일요일에 무엇을 하는지를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쓰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회의의 요점은 내가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쓴 것을 보니 내용이 너무 단순하고 틀린 문법이 있다고 한다. 전에 다니던 학원의 원장님은 강사들에게 지적할 게 있으면 일대일로 불러서 매우 조심스럽게 돌려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핸드폰이 깜박거려서 보니 남편에게 문자가 오고 있었다. 남편은 지하 주차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중. 나는 혼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고 남편은 왜 내려오지 않느냐면서 계속 내게 문자를 해온 것이었다.


미안해. 회의가 안 끝나. 미치겠어.


문자를 보냈다. 남편은 게임을 하고 있겠다고 했다. 남편에게 내려가겠다고 약속한 시간보다 삼십분이 지나고 있었다.


원장은 급기야 원어민에게 책을 펼쳐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페이지 별로 보여달라고 했다. 미칠 지경이었다. 원어민은 한 페이지씩 넘겨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원장은 그 앞에서 으흠, 으흠 추임새를 넣고. 나는 속이 타서 미칠 지경이고.


나보고 어떻게 가르치는지 배우라고 저러는 걸 알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학교 안에 교실, 컴퓨터실, 미술실과 같은 장소가 몇 층에 있는지와 학교와 집이 가까운지 먼지에 대한 영어 표현을 배우는 과. 원어민은 각 장소가 무엇하는 곳인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뒷 장으로 넘어가 손가락으로 책의 어떤 부분을 가르치면서 뭐라뭐라 하고 했지만 내 머리속은 지하 주차장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는 남편 생각 뿐이었다.


원어민의 말이 끝나고 원장이 나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가르치냐고 물어보았다.


난 표정이 굳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만 쳐다보았다.


이미 원장의 마음 속에는 원어민이 가르치는 방식이 최고라고 새겨져 있는데 거기에다 대고 내가 뭐라고 말을 보탰다가는 회의만 길어질 뿐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다행히 원장은 나를 더 자극해오지 않았다.


그만둬버릴까.

머리속에서는 제가 가르치는 게 성이 차지 않은 것 같으니 그만두겠습니다, 라는 말이 차올랐다.


하지만 매달 내야할 이자, 생활비가 곧 뒤따라왔다. 강사로서의 책임감 이런 것 보다 당장 내야 할 돈들은 어쩌고,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과거 같으면 지르고 봤을 텐데, 나는 달라져 있었다. 생활인으로서 이 일을 그만두면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 라는 생각으로 겨우 버텼다. 나는 고양이들의 엄마. 그래, 고양이들을 생각하자. 내 귀여운 고양이들.


마음속으로 화딱지가 안 난 건 아니다.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원장이 지적하는 방식도 맘에 안 든다. 존중이란 게 없다. 월급도 제 날짜에 안 주면서.


하지만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용서하기로 했다. 미워하면 나만 손해다. 나만 스트레스 받는다. 불쌍하게 생각하자. 어떻게 강사를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저 사람을. 원어민 강사를 편애하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원어민 강사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저 사람을.


그리고 이 일을 영어 강사로서 발전하는 계기로 삼자.


예수님은 죄 없는 자신을 죽인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셨다. 그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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