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틀리면 그만둬버릴 거니까
나는 월급쟁이.
매일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어제 학원 청소를 하는데 또 원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제발, 오늘은 건드리지 말았으면.' 했는데 어김없이.
'정말 오늘은 수틀리면 그만둔다고 해야겠다.' 고 다짐했다.
"내가 오늘 Ella반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오늘 숙제를 내줬다고 하더라고요."
원장의 말.
'그래서? 이제는 숙제 내주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려고 그러나?'
무슨 말하는지 들어나 보자.
"오늘이 첫 시간인데 벌써 숙제를 내주면 애들이 당황스러워하지."
나야말로 당황스럽다.
원장의 이런 반응이.
사실 원장이 하고 싶던 말은 숙제에 관한 게 아니었다.
그 빌어먹을 수업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설명을 충분히 하고 천천히 나갔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가마니가 될 것 같아서 한 마디 했다.
"There is, there are구문은 지난 책에서도 계속 나왔던 거고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해서 숙제를 내 주었어요."
하지만 내 이야기는 이미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은 얼핏 보아서는 이해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나는 아이들이 그 내용을 충분히 알고 소화하고 그 다음에 내용을 외웠으면 좋겠어요."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뒤돌아 보니 공황 장애가 이런 걸 말하지 싶다.
아니, 가르치는 사람은 나이고 나도 지금 십년 차인데 아이들이 이해하고 넘어갔는지 아닌지 그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다.
자꾸 나하고 원어민하고 비교하는데 원어민이야 영어로 단어의 뜻을 얼마든지 길게 풀어낼 수 있지만 나는 다르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 마지막에 "내가 너무 스트레스 주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가까스로 남은 힘을 짜내어 거짓말로 "아니에요." 라고 대답하고 "내일 뵈요." 하면서 학원을 나왔다.
지하철로 가면서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제발 이 상황을 바꿔 주소서." 하는 기도.
"왜 인생은 시련이 가득할까."
난 중얼거렸다.
"이 시련이 끝난다 해도 또 다른 게 오겠지."
입 밖으로 말하다가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중얼거리는 날 이상하게 볼까봐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을 감사로 바꿔볼까.
내가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간섭이 심한 원장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내게 도움을 주고 실력을 갖춘 강사로 도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돌봐주고 점검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에
난 다른 학원 인터뷰를 잡았다.
새로운 학원으로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인터뷰는 볼 것이다.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