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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May 03. 2023

의기소침 냥이

냥이야 돌아와

우리 둘째 둥이 귀엽죠?


요새 둘째 둥이가 의기소침하다.

한때 첫째가 캣타워에서 떨어졌을 때 그랬는데 둘째 역시 그러하다.


움직임이 전보다 많이 없어졌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으면 뭔가를 떨어뜨린다든지, 하는 작은 사고를 치곤 했는데

요새는 별로 그러지 않는다.

지금 각막에 기스가 나서 매일 여덟번씩 안약을 넣고 있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왜 인간도 아프면 기운이 없어지지 않는가.


남편이 안아주려고 다가가면 쏜살같이 침대 아래로 숨는다.

침대 밑은 인간이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걸 아는 듯하다.

고양이는 꽤 똑똑하다.


밤에 삼십분 정도 냥이들과 줄을 던지고 무는 놀이를 하는데 예전보다 달려들지 않는다.

지금 사춘기인가.

아직 사춘기가 오려면 멀었는데.

아직 한살밖에 안된 캣유아인데.


골골대는 횟수가 줄었다.

아무래도 매일 안약을 넣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얼른 둘째가 예전의 그 부산스러움을 되찾았으면 한다.


사람도 고양이도

각자 본연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알고 보면 명랑하고 즐거운, 놀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모습을 지금은 많이 잃었지만

언뜻언뜻 그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과 있을 때.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나 보다.

뭔가 코드가 맞다고 느껴지는 걸까.


내 본연의 모습을 만날 때 행복하다.

많이 웃고 놀기 좋아하고 순수한.

얼른 둘째가 그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첫째가 의기소침해 있을 때는 둘째가 극도로 명랑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지금은 또 첫째가 엄청 명랑해져 있는 상태이다.

이 둘 간의 균형이 맞는 날이 오길 바란다.

둘 다 행복한 그 때가.


고양이 간에 서열 때문인 걸까.

서열은 정말 있는 걸까.

지금 둘째는 첫째에 눌려서 의기소침해 있는 걸까.


캣타워를 사주고 재빠른 둘째가 캣타워를 한창 점령하면서 첫째를 해먹에 올라가지도 못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첫째는 의기소침해 있었고 둘째는 기세가 등등해서 첫째 앞에서 미끄럼틀을 재빠르게 오르면서 해먹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란듯이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첫째는 그 후로 다이어트를 하면서 몸이 다시 재빨라졌고 둘째의 방해 공작에도 캣타워의 해먹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첫째는 그간 소홀했던 기강 잡기에 돌입했는지 둘째에게 자주 몸싸움을 걸었고 다시 서열 잡기에 성공한 듯 보인다.


이상이 한낱 닝겐 집사의 뇌피셜이다. 나도 인간이다 보니 상황을 머리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왜 둘째가 의기소침해졌나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해서 내린 결론이다.  


고양이들의 세계는 참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공을 가지고 미친듯이 놀고 있는 둘째를 보니 전혀 의기소침한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비빔면이나 먹어야겠다.


어제 밤에 너무나 비빔면이 먹고 싶었는데 살을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

나는 언제 첫째처럼 다이어트해서 날씬해질까.


집사들이 냥이들 먹을 걸 반으로 줄여서 다이어트를 시켰는데

내 먹을 걸 반으로 줄여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 자신이 할 수밖에.


암만 생각해도

냥이들아

너희들이 부럽다.


항상 너희를 지켜보고 뇌피셜을 동원해 이해해보려는 집사가

너희 생활을 안락하게 지켜주고 있으니.


아냐. 나에게는 하나님이 있잖아.

오, 이렇게 글이 하나님 찬양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다니.

은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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