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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Oct 05. 2023

고양이 묵상

 우선 순위 

어제 출근하기 전에 냥이들에게 공을 가지고 놀라고 줬다. 공놀이는 냥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라는 나름 집사의 배려였다. 아니나 다를까. 공을 던져주자마자 일단 앞발로 맞추기를 하고 반응을 보이는 첫째. 그러더니 그 공을 입으로 가져간다. 깨물기 시작. 안 그래도 공에는 냥이 이빨 자국이 잔뜩 있다. 몇 번 신나게 깨물더니 또 공을 가지고 드리블을 시작한다. 


가야 한다. 이제는 버스가 올 시간이 임박했다! 이 버스를 놓치면 이삼십분은 기다려야 한다. 한시 십분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다음 버스를 타면 한시 반에야 도착할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어쩌지! 

혹시 첫째 냥이가 그 공을 가지고 놀다가 입 안에 넣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빨로 깨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깨물다가 공이 입 안으로 들어가면 어쩌지. 한 번 그 생각이 들자 머리 속은 곧 그 생각으로 가득찼다. 이제 곧 버스를 타야 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없었다. 길 건너 정류장을 보니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제 곧 버스가 온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머리 속에서는 암담한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다. 냥이가 공을 삼키는 시나리오.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그저 생각일 뿐이야. 망상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켜 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자. 내가 학원에 늦는 것과 냥이가 공을 삼키는 것. 당연히 학원에 늦는 게 낫지. 냥이의 건강과 복지가 우선이라고 판단되자 몸이 절로 집 쪽으로 돌아섰다. 빨리 걸어 집에 도착하자 방금 주인을 배웅한 냥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왜 벌써 오냐옹, 이러는 것 같았다. 


공. 공은 어디 있어 하고 급히 분홍색 공을 찾았다. 그럼 그렇지. 공은 벌써 방 구석으로 가 있었다. 내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걱정의 싹을 자르기 위해 공을 집어들어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두었다. 


비록 다음 버스를 타게 되었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시 반에 도착했어도 연휴 뒷날이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아 수업 전에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무언가를 결정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우선 순위를 정하기. 그러면 결정이 빨라진다. 쉬워진다. 나에게는 냥이들의 웰빙과 안전이 우선이었기에 버스쯤은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이를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생각해 보자면 하나님의 일, 하나님을 위한 일을 내 우선순위에 놓는다면 매사에 결정하기가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일로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가자는 귀한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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