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13장 12절
'빈익빈 부익부'란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게 되고 재산이 더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부자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와 양질의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어 있어 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반면 빈자는 그 반대인 것이 현실이다.
슬프게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단지 물질적인 것에만 통용되는 개념이 아닌 듯하다. 정신의 부요함과 빈함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모 밑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양육 받은 아이는 당연히 부모에게서 받은 양질의 사랑을 베풀고 나누며 살아갈 확률이 높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부모가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며 감정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면 아이의 정신 역시 건강할 리가 없다. 그 아이의 인생 역시 풍파가 많고 우여곡절이 깊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해야 주어진 환경과 한계를 극복하고 정신적으로 부요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예수님이 그 답이다.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 그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으로 인도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그 말도 안되는 사랑에서 나온다. 육신의 아버지와 환경에서 받은 아픔과 상처들은 하늘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장마비같은 사랑에 속절없이 씻겨 내려간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과정이 단번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과거의 상처가 불쑥불쑥 솟아나 다시 아프게 찔러댄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더라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계속해서 십자가를 붙들며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과거의 상처란 어떤 의미인가.
이는 '통로'이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안내하고 영원으로의 길, 우리의 깊은 상처를 근본부터 치료해주시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통로.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어 살아가기.
비록 좋지 않은 육신의 부모와 환경을 만나 깊은 상처를 입었더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상처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료할 수 있는 문이 된다. 나의 상처는 상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이를 보듬어 주고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약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만나니 매일 매일이 새롭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나를 괴롭히던 과거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걸 느낀다. 물론 이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더디게 진행되는 내면의 치료 과정 중에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신선한 바람도 맞는다. 예수님의 치유하심이 더욱 귀하고 의미있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면의 결핍과 상처를 치유하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가꾸어가자. 당신의 숲은 우렁우렁 자라나 길가는 나그네에게 좋은 그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