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차려먹는 주부 있으신가요?
원래도 먹는 거에 큰 관심이 없다.
사실 배고픔을 달래줄 알약 같은 게 개발되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은 기분 내고 싶을 때만 이벤트성으로 먹고, 평소엔 영양 가득한 알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싶다.
결혼 전에도 그랬다.
아침을 먹는 대신 잠을 더 자고, 회사에서 커피와 홍삼으로 시작했다.
점심은 그래도 잘 챙겨 먹었다. 거의 항상 약속이 있는 편이었고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 뭐 먹지?부터 시작해서 열과 성을 다해 메뉴를 고르고 든든히 먹었다.
저녁은 아주 배고프면 김밥, 덜 배고프면 캔맥주에 포카칩 한 봉지면 충분했다.
전업 주부가 되니 나의 메인 업무는 저녁 차리기가 된 것 같다.
한국이었다면 반찬가게에서 사 오거나, 밀키트 활용하거나 더 간단했을지도 모르는데
여긴 한국이 아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식을 차려먹는다.
그렇다고 5첩 반상을 차려 먹는 건 아닌데, 미역국이나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나 국 하나는 끓여야 하고
고기를 굽거나 계란말이를 하거나 뭐든 메인 메뉴 하나는 필요하다.
남편이 퇴근을 알리면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안에 그래도 뭔가 끓여낸다.
대신 매일 새 밥을 만들기는 번거로워서 한 번에 많은 밥을 해서 냉장고에 묵혀두고
국도 한번 끓이면 두 번 먹을 정도로 미리 해둔다.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끝내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는 느낌.
그나마 남편이랑 같이 먹으니까 저녁이라도 차려 먹는다.
그래서 점심에 나 혼자 만을 위한 밥상은 좀처럼 차려지지가 않는다.
어제 먹다 남은 국을 데워먹어도 되고, 하다못해 계란후라이 하나 밥에 올려서 먹어도 되는데
설거지할 그릇이 생기는 게 싫고, 정성을 들여도 어차피 맛이 없다.
혼자 마시는 술은 그렇게 좋아하면서
혼자 먹는 밥은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나도 내가 웃긴다.
퇴근하고 티비보면서 혼술 하는 게 정말 행복했다.
캔맥주에 포카칩만 있어도 좋았고, 더 신경 쓰고 싶으면 떡볶이 집에서 튀김만 사 오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혼술을 위한 노동도 내가 손 수 차린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밥을 챙겨 먹으라고 하면, 그냥 주먹밥 아니면 김밥.
그래도 밥이 샌드위치보다는 영혼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김밥집이 널려있고, 편의점만 가도 주먹밥을 살 수 있는 한국에서는
큰 노동 없이 배고픔을 달래며 살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냥 차려먹거나, 안 먹거나 둘 중 하나다.
귀찮음과 배고픔 사이에서 겨루기를 하다가 배고픔이 이길 때면 마지못해 냉장고를 연다.
내 동생은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매 끼니를 영혼 충만하게 먹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혼자서도 냉장고를 뒤져가며 무엇이든 잘해 먹었다.
라면을 끓여도 두 가지 다른 걸 섞어서 끓이거나, 하다못해 토핑이라도 얹어서 먹는 애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매일 밤 눕기 전에 내일 아침에 뭘 먹을지 생각한다는 거였다.
누나 나 너무 큰 고민이 있어.
아마도 또 쓸데없는 거겠지
내일 아침 토스트를 먹어야겠는데,
문 닫을 수도 있잖아? 지금 미리 사다 놓고 내일 데워먹는 게 좋겠지?
그것도 참 정성이다
누나도 내일 먹을 거야?
카드 줄 테니까 내꺼도 사와 그럼.
동생이 알아서 끼니를 해결해주는 삶을 살아서 그런가.
내가 큰 고민 하지 않아도, 바쁘신 맞벌이 부모님 슬하에서 밥상 고민 없이 성장했다.
남편은 나와 동생 사이쯤 되는 것 같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동생처럼 또 정성 가득 영혼 충만할 필요는 없는, 그런 밥상에 만족한다.
적어도 나처럼 배고픔과 귀찮음이 싸울 때, 귀찮음을 이기고 배고픈 걸 해결하는 편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남편이 나를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하면서 내 점심 걱정을 한다.
내가 쫄쫄 굶고 있을까 봐 너무 걱정된다고.
가끔은 남편이 주말 저녁에 간단한 반찬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대단한 건 아니고, 계란장이나 새우장같이
밥 한그릇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내가 귀찮아하는 걸 아니까,
있는 밥 데워서 계란장이라도 하나 얹어 먹길 바라는 마음인거다.
서로를 위한 밥상은 귀찮아도 정성껏 차려주니까
우리가 부부인걸까?
나를 위한 밥상을 정성 가득 차리는 것에서부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런 밥상을 혼자만을 위해 차려먹는 주부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