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와 전업주부의 하루 일과 차이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 중 백수 시절을 안 겪어 본 사람이 있을까? 20대 초, 대학교 3학년부터 취업에 성공한 5학년까지 부단히 도 바쁘게 살았다.

그 어린날, 인턴과 이직의 간격에 처량하고 고달팠던 백수 시절이 당연히 나에게도 있었다.


내가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이 수많은 빌딩 숲에 내 책상 하나 정말 없는 걸까? 내 스펙, 무엇이 더 부족한 걸까?

명문대 나오면 인생 술술 풀린다던 달콤한 말들을 믿고 공부한 모범생에 최후는 결국 이건가?


그 시절 백수였던 나는, 편하게 잠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꿈이 있었다. 절망을 견딜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희망을 갖게 하는 기회가 참 많이도 있었다. 편하게 잠들지 못했던 이유의 절반은 기회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들인 시간이었다.


전업주부를 백수와 비교하면 불안함과 절박함이 없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절박하지가 않다.

절박하지가 않다는 건 보통 배가 부르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부럽게도 본다. 좋겠다고..

근데 왜 절박하지 않냐고 물어보진 않는다.

아니지, 물어볼 이유가 없다.

마음이 편해서, 여유가 있어서 절박하지 않은 거겠지 한다.


단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포기해서 절박하지 않다.

치열한 20대를 보내고 직장생활을 10년 이상 하다 보니 이제 꿈꾸기보단 포기하는 게 쉬운걸 안거다. 자발적으로 무언갈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정성을 멈추었기에 절박하지 않다.


백수와 전업주부 하루 일과의 차이가

(나의 경우는) 절박함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꿈을 꾸느냐와 꿈을 꾸지 않은 것, 희망을 품으냐와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다.


백수 시절의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안테나가 세상을 향해 뻗어있었다.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를 기회 때문에 준비하려 했고 불안해했다.


전업주부인 나의 안테나는 오로지 안위를 위해 뻗어있다.

선을 지키기 위한 안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지만 스스로 눈치 보는 삶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남편이 출근하고 텅 빈 집이라는 공간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놓인다. 케어할 아이도 노부모도 없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육아하는 분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게 "나만의 시간" 이라는데, 아이 없는 전업주부에겐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취미생활을 해보지 그래? 취미는 땅 파서 하나!

결국 돈이 드는데...

취미생활을 즐겨보자니 남편에게 미안하다. 내가 번 돈으로 당당하게 살아온 세월이 십여 년인지라 남의 돈으로 취미까지 할 염치는 내게 없다.


흘러가는 시간을 잊어보고자 드라마를 열독 하고, 태블릿으로 그림도 그려보고, 이렇게 글도 쓰려고 하는데 정작 전업주부로써의 집안일은 못한다.


직장 생활하며 자취한 경력 십여 년, 집안일은 내게 그때그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쉬는 날 몰아서 처리해버리는 숙제였다. 나의 메인 잡이 아니기에 정성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전업주부가 집안일로 바쁘다고 하는데, 나는 바쁘지가 않다. 빨래가 쌓이면 세탁기 건조기로 해결하고, 집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해주고,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저녁 준비와 설거지, 장보기 그 정도이다. 그것도 매일 장보는 게 아니고 매일 빨래하는 게 아니니 정말로 진심으로 바쁘지가 않다.


나도 안다 집안일을 할 줄 몰라서 한가하다는 것을.


20대 백수 시절엔 12년이라는 정규 교육과정, 4년의 대학교육과정의 결실을 맺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던 것 같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있었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스펙에 성취감도 있었다.

취업이 절박하여 혹은 희망이 가득하여 하루 일과가 참으로 촘촘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단 확실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때를 지나온 지금,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더 모르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살림이 내게 주는 성취감이 적고 희망이 가득하지 않기 때문일까?


살림이 적성이라는 지인은 장 봐서 밑반찬을 직접 만들고 구석구석 청소하다 보면 남편 퇴근시간이라고 한다. 어떤 날은 잠시 숨 돌리려고 앉을 새도 없다고 한다. 그런 날을 보내고 누우면 냉장고에 가득한 밑반찬 생각에 하루가 뿌듯하다고 한다.


살림도 성취감을 줄 수 있구나!

엄청난 노동의 결실이구나!


뭐든 시작만 하면 열심히 해보는 성격임에도 살림은 선뜻 그 대상이 되기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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