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 주부의 어버이날

경제력 없는 주부의 고맙고 미안한 심정

결혼하고 전업주부로 겪는 어버이날.


조금은 슬프다.


내 주머니가 두둑했던 때와 그렇지 않은 때 중 가장 서러운 게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외벌이 전업주부인 친구가 시어머니 환갑 기념으로 밍크코트를 사드렸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정말 오랫동안 갖고 싶어 하셨고, 시아버지와 사별한 직후라서 남편이 친구에게 이번엔 무리가 되더라도 선물을 드리자고 부탁했다고.

경제권을 쥐고 있는 친구는 처음엔 택도 없다, 어이없다고 반대했다가 시무룩해진 남편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시아버지 사별 후 쓸쓸해하시던 시어머니가 밍크코트를 받고는

며느리인 자기에게 눈물 보이며 고마워하셔서, 가장 잘 쓴 돈이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다음 해에 친정엄마의 환갑이 돌아오자 친구는 슬퍼했다.

친정 엄마도 똑같이 밍크코트를 사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한 두 푼도 아니고.

하필 차도 바꾸고 전세금도 올라서 어쩜 이리 여유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정작 딸인 본인은 경제력이 없는데, 집안 살림의 경제권을 갖고 있으니

지출이 더 소심해질 수밖에 없어서, 고민만 백번을 넘게 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자기도 그냥 남편처럼 투정 한번 부리고, 걱정 없이 사드리고 싶다고.

하지만 친구는 결국 식사하고 용돈 조금 더 드리는 걸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생활비 아껴가며 적금을 들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 적금을 과연 밍크코트 사는 데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올해 어버이날.

남동생과 남편이 용돈을 어떻게 드릴지 상의하고

똑같이 드렸다.

경제력이 있었을 땐 효도는 셀프로 하자고

각자 부모님께 알아서 생일이나 어버이날 같은 걸 챙겨 왔는데

외벌이 전업주부가 되니 남편이 알아서 해결해준다.

고맙다 우리 부모님도 챙겨줘서.


근데도 마음이 참.

내가 스스로 벌어서 드렸던 것보다

남편이 사위로써 드린 용돈이 더 넉넉할지언정

내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한국에 없는 나를 대신해서 남동생이 어버이날 겸 부모님 모시고 식사한다고 하는데,

예약해둔 식당은 또 어찌나 허접한지.

누나인 내가 있었으면 기념일엔 절대 가지 않았을 곳만 골라 다닌다.


용돈도 받았는데 비싼 밥까진 얻어먹지 못하실 부모님 마음을 이용한 건지, 배려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자 친구 부모님 모시고는 오마카세도 먹으러 다니던 놈이 어버이날 저러는 걸 보면,

더 서운하기도 하고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달랐을까 싶기도 하고.


이번 어버이날에 점심은 어디 국밥집 같은 데서

부모님이랑 먹고

저녁은 여자 친구 부모님 모시고 가서 술 마실 거 같다고 하는데

아들놈은 이래서 키워봤자 쓸모없구나.


엄마랑 통화하다 괜히 내가 서운해서

눈물 날 뻔했다.

서운한 만큼 내가 더 챙겨드리고 싶은데

나의 계좌는 왜 이리 용돈 드릴 정도도 안 되는 걸까.


그저 엄마는 용돈 괜찮다고, 동생의 여자 친구를 내년에도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참 웃긴다.

내가 이렇게 효녀였나?

어버이날 외롭지 않게 국밥이라도 식사대접을 하는

동생이 있어서 그나마 나은 걸 텐데.


반대로 시부모님은,

남편이 알아서 잘 챙겨드리고 있으려나?

시부모님도 자기 아들이 처갓댁만 더 챙기는 것 같고 서운하시려나?


내가 돈 벌어서 이런 날 용돈 드릴 땐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더 아깝다고

철없게만 느꼈던 것 같은데.

괜히 지금은 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지

왜 여유 있을 때 더 챙겨드리지 못했을까 아쉽다.

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한국 돌아가서 다시 일하게 되더라도

이맘 변치 말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한국 돌아가면 다시 일하고 싶은가 보네.


다른 전업주부들은 어떤 심경이신가요.

남편이 전업주부가 되고 내가 집안에 가장이었더라도

시댁 챙기는 거 당연하다고 느끼긴 했을 것 같다만,

고맙고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미안하면서도 서운하고

그런 심정이신가요?


근데 전 미안한 게 맞다고 생각하려고요.

그래서 더 고마워하려고 합니다.

돈 버는 게 쉽지 않기도 하지만

내 주머니에서 선 뜻. 용돈을 아깝지 않게 주는 것도 어려운걸

너무 잘 알겠거든요.

그 마음이 따뜻하고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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