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으면 달라질까?

아이 없는 주재원 와이프의 삶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내 안위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두려운 해외에서의 삶.

그나마 20년 이상 공부해서 어느 정도는 익숙한 영어도 통하지 않는 이곳.

아파서 병원을 가도 병원의 진료를 믿을 수가 없고, 운전 중 접촉사고가 나도 대처방법을 알 수 없어서 그저 아주 조심스럽게,

얌전하게만 지내고 있는 주재원 와이프.


내 안위조차 지키는 방법을 모르는 위험한 나라에서는 절대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는 핑계? 를 대지만

한국이었다면 달랐을까?


한국이었다면 별 볼 일 없지만 그래도 소중했던 내 커리어를 지키려고 해 봤을까?


아이 없는 주재원 와이프이자 한 때 전업주부였던 지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기엔 짧고, 휴직하기엔 긴 남편의 파견기간, 한 참의 고민 끝에 퇴직을 선택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해외를 자주 왕래할 수 없다는 점도 퇴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해외생활 준비기간 약 삼개 여월,

그 시간은 이삿짐 정리, 집과 차 처분, 일가친척 인사 등 한국에서 처리할 일을 하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산재한 숙제가 너무 많아서 가장 먼저 챙겼어야 할, 해외에서의 주재원 와이프 삶을 준비하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 끝에, 먼저 파견지에 나와 현지 생활을 준비해 둔 남편과 재회하니 두 달 정도는 행복했다.


딱 두 달.

출퇴근 지옥에서 벗어난 점, 한국에서 처리한 복잡한 일들을 끝냈다는 보람, 남편과 함께하는 해외생활의 기대, 이렇게 설레고 벅찬 감정이 두 달 지속되었다.

시차 적응도 되고, 주변 환경도 파악하고 조금은 익숙한 그래도 두려운 세 달 차에 접어들자, 남편이 출근하고 남겨진 집에서 넘쳐나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느꼈다.

외로움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는 걸.

그리고 알았다.

사람과 부대끼는 걸 참으로 좋아하던 성격이었다는 걸.


견디기 힘들었던 외로움의 무게는 결국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3개월 만에 혼자 한국에 남겨졌더니 이번엔, 남편과 함께하기 위해 결정했던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된 것 같은 절망에 사로잡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암담한 상황.


결국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돌아온, 한국에서의 시간도 마음을 가볍게 해주지 못했다.


다시 돌아간 남편의 파견지.

이번엔 골프라는 취미를 만들어보았다. 친구도 많이 사귀고 무언가에 몰두하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골프는 꽤 효과적이었다.


골프 덕분에 해외생활 11개월 차 까지 무난히 적응하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는 골프 친구들에 비해서 꽤나 많이 어렸다.

그녀의 골프 친구들은 자식을 다 키우고 노후를 즐기는 쪽에 가까웠다.


아이 없는 전업주부, 무엇이든 탈출해보자고 생각했다.


때 마침,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고 이번엔 좀 달라져보자고 결심했다.

먼저 임신을 염두하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자궁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다음으로 기술을 배워보고자 탐색했다.

해외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필요한 기술들을 골프 친구들 덕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휴가차 같이 온 남편을 먼저 파견지로 보내고,

한국에서 몇 달을 더 체류하면서 기술을 배웠다.


이제야 주재원 와이프의 삶을 준비하는구나. 일 년이 넘게 걸렸다.

남편의 곁으로 돌아오고 몇몇에게 프리랜서가 되었음을 알렸다.

질투 섞인 사람들에게 주재원 와이프가 돈을 벌어도 되냐고, 가당치 않은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배워온 기술이 절실히 필요했던 한인이 많았다.


그렇게 그녀는 아이 없는 전업주부에서, 전업주부를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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