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라 맘편하게 안잔다
잠이 오질 않는다.
전업주부라,
그리고 아직은 케어할 아이도 뱃 속에 있는지라,
굳이굳이 밤에 잠이 들 필요는 없다.
낮에라도 자면 되니까.
그럼에도 임신 중 많아진 잠 덕분에? 남편과 같이 잠들며 생활하긴 했는데 점점 다시 부엉이 패턴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는 텅 빈 집에서
정신 멀쩡히 깨어있기 보단..
남편이 비록 자고 있지만? 남편 있는 시간에 깨어있고 남편 없는 시간에 자고 있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낮에 해야할 일이 많지 않고
그저 하루 일과에 중요한 일이 저녁상 차리기
정도가 다 이기 때문이다.
약속이라도 있어서 나가는 날엔 좀 다르겠다만
전업주부에게 약속이 그렇게 매일 많지는 않다.
전업주부가 되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단어...
고립...
해외로 뚝 떨어져 가족, 친구와 모두 멀어진 탓에 어쩌면 전업주부가 되어 생긴 넘치는 시간의 여유보다 이 시간을 오롯히 혼자 보내야하는 고립을 더 크게 느낀 것 같다.
아이를 낳으면 육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지내야하는, 버텨야한다는 고립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 버티는 지금보다 아이를 케어하며 버텨야 할, 미래의 시간은 적어도 지금보단 바쁘고 정신없겠지. 어쩌면 정말 지칠 수도 있고..
귀국을 앞두고 하루하루
좀 더 남편을 보고 싶은 마음,
남편에게 아기의 태동을 더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
한국으로 돌아가서 닥칠 나의 미래.. 그런 걱정이 꼬리를 물다보면 잠에 들기 어렵다.
그리고 굳이 노력도 하진 않는다.
잠이 올때 자면 되니까.. 내가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해야할 일이 정해진 건 없으니까.
정해진 일이 없다는 건, 내일 해야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건 직장다닐 때 정말 바라던 일이었다.
잠들기 전에 내일 해야할 일이 별게 없으면 그렇게 잠이 잘 왔고, 오히려 왜 잠이 벌써 드는건지 더 깨어있다가 놀고 자도 내일의 일에 지장이 없는데! 라며 아까워하기도 했다.
그랬지.
오히려 내일의 일이 버거워서 걱정될 때가 잠이 오지 않았지...
뭘까? 직장인일때 바라던 지금의 여유는 왜 전업주부가 되어서 무기력으로 바뀌는 걸까?
굳이 잠이 안오면 잠들지 않아도 되는 내일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여유로워서 잠이 안온다! 라고 외치는 심정이
행복에 겨워 하는 소리만은 아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더 살아가는 의미가 있기에...
엔돌핀이 돌면서 내일에 대한 기대로 설레었던 게 언제였을까? 왜이리 막연하지...
성취감에 가득 차 두발 뻗고 편히 잠들었던 건 언제지? 어렸을 땐 아니 몇년 전만 해도 자주 그렇게 잠들었던 것 같은데...
잠이 안와 두서없이 적는 글에서
나라는 인간이 참 별 수 없다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언젠가 이 글을 다시 보면 정말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네 라며 가소롭기도 할 것 같다.
출산 후에 아이 수유하느라 두시간에 한번씩 깨서 피골이 상접해있을 때 이 글을 보면 정말 한심하겠지?
이런 흑역사를 그때를 위해서 남겨둬보자
가소로운 인간이었음을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 잠이 안오는 걸 그저 잠이 안오는 대로 잡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ㅡ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