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전업주부가 된 친구

응원해, 언제나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나에게 제일 친한 친구는 고등학교 일 학년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이 고등학교 이학년부터 문과 이과로 찢어졌으나

우연히도 같은 대학에 들어갔다. 물론 전공은 다르지만.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다.

고등학교 때 전교회장까지 지내며 가장 에너지가 넘쳤던 친구가

가장 빨리 결혼했다. 그리고 가장 빨리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 친구가 전업주부를 선택할 때, 난 정말 화가 많이 났었다.


그 친구도 나도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다.

함께 카페에 앉아서 각자의 과제를 하다 문득 그런 얘기를 했다.

엄마가 일하니까 너무 좋다고.

왜 그런 대화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카페에 위치, 그때 앉았던 자리, 그때 마셨던 카페모카 그리고

에너지 넘쳤던 친구 눈빛이 지금도 참 생생하다.


아마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엄마를 우리 둘 다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녀들의 딸인 우리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고, 그래서 목표하는 회사도 뚜렷했다.

내가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주전공 포기하고 복수전공을 기웃거릴 때,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그에 걸맞은 스펙을 쌓아가던 친구였다.


다른 친구가 남친이랑 데이트하느라 우정에 소홀했을 때

우리 둘은 정말 매일 붙어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꿈에 동화된 게 아닐까 싶다.


그녀는 내가 교환학생에서 복귀하고 난 후, 어쩌면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때가 대학교 4학년 언저리였던 것 같다.

그녀는 어학연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대학교 4학년 때 어학연수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쌓아온 그녀의 스펙으로 단 방에 취업에 성공했다.


그 무렵 나도 어느 회사에 인턴으로,

다른 친구는 대학시절을 통째로 함께 보낸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남은 국가고시를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퇴근하면 동네 독서실 근처 공원 어디쯤에서 맥주 한 캔을 들고 공부하는 친구를 응원하면서, 우리가 새로 처한 환경이 어떤지 평가질? 하면서 보냈다.


너무 한 가지의 목표만 뚜렷했던 터일까?

정말 꿈꿔오던 직장에서 가장 큰 회의감을 느낀 친구.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아이가 찾아왔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


국가고시에 합격해서 어엿한 전문직이 된 친구와 이제 인턴생활을 끝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던 나에게,

전업주부가 되겠다는 그녀의 결정을 응원할 수 있는 이해심이 없었다.


그 당시 가장 친한 친구들의 눈빛에서 그녀도 꽤 상처받았겠지..

그래서일까?

무사히 출산하고 재취업하겠다고 도전하는 그녀에게 우리는 정말 많은 응원을 보냈었다.


그녀가 다시 한번 무너질 때, 다행히 우리는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겪고 이해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긴 때였다.

고맙게도 상처받은 마음을 우리에게도 보여주었고,

나와 친구는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그녀의 모든 삶을 응원하기로 약속했다.


육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친구의 에너지가 죽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자신의 꿈을 먼저 챙기느라 아이가 어릴 때 잠시 육아에 소홀했던 걸 미안해하며

아이의 모든 순간에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넌 꼭 엄마한테 효도해라..

이모는 맨날 그런 소리해!!

야! 너 왜 자꾸 애한테 그런 소리해~~


나한테 말대꾸도 할 수 있을 만큼 부쩍 자란 아이,

아이의 성장이 빛나는 만큼 내 친구의 희망 가득 찼던 눈빛이 밟히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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