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시선
대한민국의 많은 부부가 결혼 전까지 맞벌이를 유지하다가, 육아로 인해 외벌이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맞벌이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써보다가,
어느 날 아이가 커버린 것을 놓쳐버렸다는 미안함,
아이가 아파도 회사에서만 전전긍긍해야 하는 죄책감,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꾸역꾸역 보내 놓고 눈물지으며 출근하던 어느 날 이건 아니라는 결심을 하고
과감하게 외벌이를 선택한다.
내 친한 친구들이 겪어온 과정들, 그녀들이 한숨지으며 했던 고민들이기에
외벌이를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진 않는다.
그들에 비하면, 육아할 이유도 없으면서 외벌이를 선택한 나의 경우는 참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라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외벌이 부부를 많이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나는 코로나 상황과 다소 무관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전업주부가 되어 외벌이가 되었다.
이 전에 소개했던 아이 없는 전업주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지인의 이야기가 여기서 필요한 것 같다.
그녀의 집안은 할머니부터 엄마, 친언니까지 모두 가정 주부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주업으로 한 까닭 일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살림이 여자 인생에 최고 덕목이라는 지금 세상과는 다소 동 떨어진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양가 어른부터 집안에 모든 여자는 농사일 외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있지 않았다.
그런 답답한 여성관을 먼저 깨려고 했던 건 롤모델과도 같았던 친언니였다.
시골에서 나름 공부도 하는 것 같았고 서울에 있는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대학에 들어갔다. 열심히 사는 듯 보였고 언니를 보면서 그녀도 꿈을 키웠다.
언니는 어느 중소기업에 취업했고 매일 출근하는 모습이 멋있기까지 했다.
그런 언니였는데 회사를 다니고부터는 역시 여자는 집에서 살림해야 하나 보다는 자조 섞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6개월 만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회사 사람과 결혼하고는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 당시 그녀도 조리학과를 졸업해서 나만의 식당을 개업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나름 큰 레스토랑에서 유명 조리장에게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의지로 부당한 대우도 참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의지는 전업주부가 된 친언니, 괜히 밖에서 고생하지 말고 결혼하라는 집안 분위기를 보니 약해졌다. 마침 아버지가 그녀의 주변 사람들보다도 월등한? 스펙과 좋은 직장에 다니는 남자를 소개했고, 롤모델 같던 언니가 선택한 남자, 즉 형부보다도 연봉이 두 배 이상인 점에 놓치지 않았다.
그녀 집안에서 어쩌다 보니 결혼을 가장 잘 한 딸이 되어있었고, 그녀가 레스토랑을 성공시키는 것 보다도 더 큰 성취감을, 어쩌면 처음으로 인정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녀이기에 외벌이는 당당하다.
심지어 친정 남매들을 통 틀어 그녀의 남편 소득이 가장 높고 안정적이다.
살림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언니, 엄마와 연락을 하면 그때마다 남편 잘 만났다고, 결혼 잘했다고 칭찬 일색이다. 심지어 처음으로 롤모델 같던 언니에게서 질투 어린 시선도 느껴진다.
나 스스로 남편에게 외벌이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고 위축될 때면, 그녀가 몹시 부럽다.
내 남편이 못난 것도 아닌데, 나도 그녀처럼 아이 없는 전업주부라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녀는 나이라도 어리지, 나는 뭔데?
그녀보다 많은 나이만큼 쥐꼬리 같은 자산을 벌어 둔 게 있긴 하지만,
직장생활이 아주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는 걸 다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나는..
그저 맞벌이가 아닌 것에 눈치가 보인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는데,
심지어 남편은 함께 타지에 있어주는 것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는데도 말이다.
"아직 외벌이인 것에 적응이 안 돼서 일 거야"
"언제 적응되는데?"
"널 아무도 찾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 때..."
"그럼 절망해야 적응되는 거야?"
"그전에 아이가 생기길 바랄게..."
전업 맘인 친구는 임신하고 태아가 위험해지자, 휴직도 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출산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그녀는 희망을 놓지 않았었다.
경단녀가 되지 않기 위해 도전했고, 계약직에 붙어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지만
재계약이 불발되고부터는 더 이상의 미련을 접었다.
이제는 육아가 주는 성취감이 직장생활보다 크다고 말하는 친구
어릴 적부터 꿈이 많았던 그런 친구가 나의 외벌이 눈치에 대해 건넨 위로는 참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난 달라질 거다. 그러려고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 없는 전업주부, 아이가 생기거나 전업주부에서 벗어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당당해질 것 같은
나 스스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