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신붓감이라는 주술

초등교사친구의 이야기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임용 붙은 학원 친구를

내 지인에게 소개해줬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동네 유명 여고에 다니던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건 영어학원에서였다.

소그룹 과외 같은 학원, 회의실 탁자에 많으면 6명 적으면 4명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생각해보니, 그 당시 영어 선생님이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셨겠구나.


그 선생님의 강의 실력은 일타강사급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반 친구들도 여느 학원처럼 그만두거나 새로 오거나 붙임이 많았지만

나와 그 친구는 학원 옮기는 게 귀찮아서,

공부는 선생님보단 내 몫이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어서

고등학교 3년을 내내 다녔다.


지금까지 연락할 정도로 아주 친한 관계는 아니지만

결혼 전까지는 그래도 서로 연락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어느 날 임용에 붙어서 발령이 나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한번 만나서 놀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마침 나도 어느 술자리에 있었나 보다.


그 당시 무슨 연유인지 내 주변에 오빠들이 많았다.

같이 자소서 봐주고 합격과 불합격을 슬퍼하며 모였던 것 같다.

그분들 지금 모두 결혼해서, 서로의 안부를 카톡 프사으로만 짐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아마도 어느 오빠의 취업을 축하하는 자리였었나 보다.

강남에 있는 누구나 아는 회사에 들어간 걸로 기억한다.


주변 사람들 일에 잘 나서는 편이 아닌데,

그 술자리에서 바로, 오빠의 회사 동기와 이제 초등교사가 될 친구의 소개팅이 주선되었다.


둘은 소개팅 이후 잘 만나는 것 같았다.

가끔 카톡 프사에 둘이 여행 다닌 사진이 올라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오빠도 나도 취업하여 각자 살기 바쁜 어느 날,

간간히 연락하던 교사 친구의 헤어졌다는 연락과 함께

그 오빠가 곧 결혼하니 청첩장 모임을 하자는 연락을 동시에 받았다.


강남 어디쯤에서 청첩장 모임에 갔더니,

그 오빠와 구.교사 남친이 있었다.


아, 그 친구와 헤어졌다고 연락을 받긴 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네요.

형이 이제 결혼할 건데 외간? 여자와 단 둘이 식사하면 여자 친구한테 오해받는다고 저도 같이 불렀어요

뭐야, 내가 그럴 정도는 아니지 않나.


조금은 어색하게 셋이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자긴 이제 교사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다른 교사를 소개해달라고 할 줄 알았더니?

일등 신붓감이잖아요

제발 그 얘기 좀 하지 마세요, 일등 신붓감 주술에 걸린 것 같아요!


그 남자 입장에서만 들은 이야기로는,

그래도 그녀에게 참 지극정성이었던 것 같다.

구 여친이 학교 첫 발령을 받았을 때, 꽃바구니를 보낸 거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그녀는 그 꽃바구니로 인해, 학교에서 남자 친구 존재를 주목받았다고 한다.


본인도 갓 취업해서 처음으로 두둑했던 주머니 사정,

그녀도 일등 신붓감이란 타이틀에 맞게 충만한 자신감.

이 둘의 조건이 합쳐진 연애를 했다.


생일, 기념일을 꼭 좋은 호텔에 가서 보내야 하는 여자 친구.

열심히 사진 찍고 그걸 꼭 동료들에게 보여주며 인정받는 모습,

동료들의 남자 친구 칭찬, 더불어 뿌듯해지는 그.

그는 그렇게 그녀에게 생각보다 많은 돈을 써온 것 같다.


그는 그녀의 부모님께도 인사드렸고,

일등 신붓감인 교사가 정말 내 신부가 되는구나 기대감에 넘쳤다고 한다.


왜 헤어졌어요? 정말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한 그녀는 이제 그 남자의 재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펑펑 써주는 돈만큼 집이 적어도 은수저는 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결혼하면 강남권에 집은 해 올 수 있는 거지?


여기서부터 막막했다고 한다.


나 이제 취업한 지 얼마 안돼서 크게 모아둔 돈이 없어.

누가 너돈 쓰라니, 너희 부모님이 해주셔야지.


너무나 당당했던 그녀 요구에 한 방 맞은 듯하다가

이내 정신 차려보니 싸우고, 그러다 헤어졌다고 한다.


그 남자 입장에서의 헤어진 이유를 듣고,

이 친구가 그럴 정도의 애는 아니긴 한데, 그런 믿음 정도는 있었다 당시 나도.


교사 친구를 다시 만난 건 그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카톡 프사를 보니 새남친이 생기셨군요.

네 그렇습니다.

너의 구남친과 어쩌다 같이 밥 먹은 거 얘기해줘?

얘기하지 마, 그 사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미안하다.

의외의 반응인데?

응, 그 사람 만날 땐 내가 정말 잘난 줄 알았어,

내가 더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그 남자한테 들은 얘기가 절반은 사실일 수도 있다는 거네?

너 도대체 왜 그런 거냐!

몰라, 다들 일등 신붓감이라고 치켜세우고, 그래서 30이 넘으면 안 되는 줄 알았어.

그때 이상하게 동기들끼리 서로 그렇게 남자 친구를 비교했다?

그리고 내가 꼭 이기고 싶은 애도 있었어..

걔가 하는 거보다 내가 뒤쳐지고 싶지 않더라고.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걔보다 지지 않게 다 해줬어..


그런 연애를 해보다니 부럽다 야.


그 친구는 이제 일등 신붓감이란 얘기가 얼마나 어이없는 소린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인성과 인생의 교육자가 되어야 할 초등학교 교사에게

일등 신붓감이라니.

마치 교육자가 되기 위해 걸어온 시간을 모두

결혼 잘하기 위해 해온 것처럼 치부되어 버리는 게 어이없다고 한다.


제발 자라나는 새싹은 본인처럼 주술에 걸리지 않길 바라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시대가 바뀌어도 정신이 바뀌긴 힘든 지

몇몇 어린 교사들은 아직도 30이 넘으면 안 되는 줄 조바심 내기도 한다고.


그 후로 그녀의 청첩장을 받게 된 건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였고,

차마 코로나 인원 제한으로, 나의 청첩장은 그녀에게 전달하지 못한 채

시간이 꽤 흘러버렸다.


남동생이 초등학교 교사와 소개팅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마저 일등 신붓감이네라고 하는 걸 보고

참.. 그놈의 주술은 정말 강력하구나.


교육자가 되기 위해 견뎌온 시간인지

결혼을 잘하기 위해 견뎌온 시간인지

만일 후자라면, 결혼을 잘하는 건 어떤 걸 의미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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