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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May 04. 2022

아이가 자꾸 학원을 그만둘 때 생기는 현실 고민

 우리 둘째는 의사표현이 강한 아이다. 특히 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하기 싫은 것에 대한 표현이 강하고 명확한데, 예민한 기질 탓에 그런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최근 기침을 가라앉히려고 배도라지 주스를 사줬더니 안 먹고, 친정엄마의 비법을 물려받아 콩나물과 조청을 여덟 시간 달여 주었더니 안 먹고, 작두콩 차를 따뜻하게 줘도 안 먹었다. 한약은 언감생심이다. 몸은 마르고, 또래보다 작은 키에 툭하면 콧물 기침이라 몸에 좋은 뭘 해주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앞서 기모 옷을 안 입는다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기모뿐만 아니라 옷 소재를 유달리 가려서 내복처럼 얇고 부들부들한 소재가 아니면 잘 안 입는다. 한겨울에도 그런 얄팍한 옷만 입는다. 이제 반팔을 입기 시작하는 요즘도 아직 내복을 안 벗었다. 겉옷을 맨살에 닿게 하느니 차라리 더운 게 낫다는 녀석이다. 여름옷은 대체로 얇고 부들부들한데 왜 안 입나 모르겠다.


 그런 둘째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일곱 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길래 등록해줬더니 한 달 배우고 그만두셨다. 피아노 이론 부분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 아직 나이도 어리고 지금 꼭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면서 동의했다. 수학 학원도 석 달 다녔다. 함께 등록한 아이들보다 진도가 뒤처지기에 물었더니 학원에서 문제 안 풀고 엎드려있었다고 했다. ‘그래 수학도 아직은 안 급하니까’ 학원에서 못한 부분을 숙제로 하느니 그냥 문제집 사다 풀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학원은 아직인가 보다 하고 방과 후 수업 위주로 신청을 해봤다. 로봇 만들기가 있기에 신청했더니, 물론 본인이 처음에 한다고 했다. 그것도 몇 달 못 갔다. 작은 부품들을 끼우려니 손가락이 아프시단다. 다음 학년에는 창의 요리를 신청해 줬다. 교실에서 나는 철 냄새(아마도 상판이 스테인리스인 듯하다)가 싫다고 했다.


아이고 머리야~! (출처:픽사베이)


 이 정도 되면 ‘아이가 싫다는 걸 다 받아주니 그렇지’라는 비난이 따라올만하다.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것 아니냐, 살다 보면 싫은 것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나약하게 키워서 어떻게 하느냐, 엄마가 엄하고 단호해야지 애한테 끌려다니네. 보통 요 정도의 비난들이 무난하게 따라올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실 엄마 마음속에도 이런 말들은 언제나 올라온다. 아이가 성실하고 진득하게 뭔가를 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싫증 내는 게 아닌가, 이래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험난한 입시경쟁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이의 미래가 너무나 걱정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나경 씨를 만났다. 나경 씨는 아직 돌이 안 된 갓난아기를 키우는 엄마다. 나보다 어리지만 내 친구다. 

 “언니! 저도 어릴 때 그랬어요. 저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느린 학습자’ 같은 거였는데 문제집을 풀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도 했는데, 전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선생님이 빵을 주셨거든요.”

 이런 말로 서두를 꺼낸 나경 씨는 본인의 엄마 얘기를 해주었다.

 “학원 그만둘 때 엄마가 그만두게 해 주셨어요.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나경아, 엄마는 네 말대로 학원을 그만 다니게 해 줄 수는 있는데, 네가 다른 일도 이렇게 쉽게 그만둘까 봐 걱정돼.’ 언니도 그런 얘기를 해주세요. 그냥 그러면 돼요.”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때 되면 다 한다!’

 본인은 엉망이던 글씨를 중학교 때 ‘한번 고쳐볼까?’ 하고 고쳤다고 한다. 한두 달씩 다녔던 학원은 성인이 되어 자기가 등록해 더 배웠다고 했다. 

 “언니 한 달이라도 어릴 때 해보니까, 어른이 돼서 다시 할 때 진입장벽이 낮아요. 남들보다 만만하게 시작한다니까요. 저는 스무 살 때 그것 들이 다 취미가 됐어요.”

 나경 씨의 얘기는 두 가지다. 불안한 내 진심을 아이에게 진솔하게 전할 것. 즉 엄마인 내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아이가 알 수 있게 해 줄 것. 그리고 아이의 그 ‘때’를 기다려 줄 것. 


 그래서 나는 학원을 자꾸 그만두는 아이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전문가 조언도 찾아보았다. 아이가 학원을 그만둔다고 할 때 이유를 물어볼 것, 힘들다고 할 때는 그 순간을 엄마가 함께 넘어가 줄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학원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왜’냐고 먼저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안 돼. 학원은 꼭 가야 돼.”

 이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아마 내 마음에 걱정과 조바심이 가득해서 그랬을 것이다.


 사실 최근에도 아이가 영어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나경 씨 덕분에 마음에 여유가 생겨 그런지 ‘왜 그만 두려는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먼저 나왔다. 그리고 아이가 영어로 말하는 게 힘들다고 대답했을 때, 아이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줬다.


 “처음 학원 갈 때는 ABCD도 잘 몰랐잖아. 그런데 지금은 영어책 읽기 숙제도 잘하잖아. 네가 영어 문장을 읽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 얘기도 해줬다.

 “지난번 뷔페 음식점에서 네가 음료 기계에 ‘PULL’이라고 씌어 있는 걸 보고 레버를 당겨 음료를 담았어. 너보다 동생들은 그 글씨를 못 읽어서 엄마 찾았을걸?”

 아이가 묵묵히 내 말을 들었다.

 “00아, 네가 발전하고 있어.”

 나는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 얘기했다. 엄마가 더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이가 학원 가방을 들고 나섰다. 해볼 만해진 것이다.


아들~ 다시 해 보자. 엄마가 도와줄게. (출처:픽사베이)


 사실 이런 일들이 있기 전에도 아이가 영어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때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만 일장연설했다. 영어 많이 알면 취직도 쉽다, 영어로 된 정보를 책이나 인터넷으로 얻어서 남들보다 더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돈 많이 벌면 나중에 네가 꾸린 가족들 즉 네 아내와 아이와 함께 풍족하게 살 수 있다. 그 당시 아들은 마지막 얘기에 학원 가방을 들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가장의 무게를 느꼈던 것일까. ‘나중에 자신의 아이가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말에 설득된 모습이 너무 우습고 귀여웠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에게는 미래보다 현재의 얘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얘기는 사실 엄마 스스로의 마음을 설득하는 얘기다. 그게 두려우니까. 하지만 아이는 지금 현재 닥친 일이 문제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면 해볼 만한 마음이 생긴다. 힘든 고개를 하나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 후 아직까지 아이의 불평을 듣지 않고 학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아이를 다독일 다음 무기를 찾고 있다. 달리는 아이 옆에 나는 정신적 멘토이며, 트레이너이며, 믿음직스러운 매니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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