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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May 03. 2022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우리 집에 키즈폰이 들어온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의 일이다. 나는 아이들 키즈폰에 보수적인 편이라서 가급적 늦게 아이 손에 스마트 폰을 쥐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을 위해 아이들 자제력 키우기에 노력을 했다. 특히 유튜브를 볼 때는 정해진 시간만큼 보고 끄거나, 끄라는 지시에 잘 따르도록 했다. 물론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제법 이 규칙을 잘 따라주었고, 약간의 의도치 못 한 일들이 생기면서 나는 예정보다 일찍 아이들 손에 스마트 폰을 쥐어주었다.


 스마트 폰을 손에 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학교가 끝나고 내게 전화해서 “엄마 나 00이네 집에 놀러 가도 돼?” 또는 “놀이터에서 놀다 가도 돼?” 하고 허락을 구했다. 그전에는 전화기가 있는 친구나 친구 부모님에게 부탁해 전화를 하거나, 집까지 와서 허락을 구하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나도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확인이 되고, 집에 돌아올 시간이나 학원 갈 시간을 전화로 챙길 수 있어 훨씬 편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다.


 아이들은 전화기를 책가방에 넣어 멀리 던져버린 채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고, 학교 수업 때문에 껐던 전원을 다시 켜지 않아 연락 두절이 되기도 했다. 몇 번은 아이들이 놀만 한 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으로 아이를 찾았다. 그래도 못 찾을 때는 아이 친구 엄마들을 통해 ‘수배령’를 내려 아이의 행방을 찾기도 했다. 그런데 사건이 생긴 그날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출처:픽사베이


 아이의 전화는 꺼져있지 않았다. 신호음은 가지만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위치추적 어플로 아이의 위치를 가늠하고 그 주변을 수십 번도 더 찾았지만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아이가 실외가 아닌 실내, 아무래도 누군가의 집에 있을 것 같았다. 아이의 친구들에게 다 연락해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나는 급기야 학급 단톡방에 아이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연락 두절이 2시간 가까이 되자 마음이 간절해졌다. 처음엔 학원 시간에 쫓겨 찾아다니다가 시간이 길어지니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이 커졌다. 불편했을 수도 있을 텐데 함께 걱정해주시는 엄마들이 고마웠다. 남편도 회사를 조퇴하고 아이를 찾았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편이 66통의 부재중 전화를 했을 때, 아이가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다른 반 친구 집에서 놀고 있었다고 했다. 방해금지 모드를 켜 두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 모드를 해두면 전화가 와도 유튜브 화면 위로 알림이 뜨지 않았다. 아이가 일부러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을 알고 나니 너무 허탈했고 사실 화가 났다. 남편이 내게 전화로 물었다.

 “혼낼 거야?”

 그때만 해도 따끔하게 혼쭐을 내주려 했다. 학원 시간도 잊어버리고, 장소도 정확히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 생각했다. 사실 아이가 00 친구 집에 간다고 했는데, 일이 잘못되려 그런 건지 나는 다른 아이 이름으로 들었다. 아이는 00이네 간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내가 들은 건 @@이네였고, 막상 그 집에 우리 아이가 없다는 걸 알고 아이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아이를 야단칠 마음으로 벼르고 있었는데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는 품에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가 너무 반가웠다. 빨리 품에 안아 아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부재중 66통에 바짝 긴장한 아이의 표정이 너무 안쓰러웠다. 저도 잘못한 줄 알고 완전히 풀이 죽어 들어왔다. 아이를 안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느라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는지 몰랐고, 막연히 ‘엄마가 전화하겠지’ 하면서 버티고 있었다고 했다. 울어버리는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널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귀한 내 아들 누가 훔쳐 갔는지 알았어.”

 아이를 안으니 안도감에 나도 눈물이 났다.  


이날의 일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부모 노릇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 사고는 언제나 있다. 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다. 예측대로 움직이고 약속을 따박따박 지켜주면 그건 아이가 아니다. 사실 그런 존재는 내 분신밖에 없을 것이다. 내 남편이라고 어디 그렇던가? 문제는 그다음 대처이다. 사건을 일으킨 아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그건 어른의 몫이다.


 처음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그때 나는 ‘따끔 하게 혼내야’에 더 방점을 찍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는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 내 맘을 너무나 졸이게 만들었고, 날 걱정시켰고, 화나게 만들었고, 아이의 행동이 무심했고, 학원을 가지 않았고 등등 아이를 힐난할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어쩌면 복수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으로서 내가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이용해 아이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나는 아이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더 채찍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아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었고, 다음엔 절대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은 물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의 길까지 걷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야 했다. 그럴 땐 무조건 안아줘야 한다. 그 마음을 위로하고 괜찮다고 다독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근본을 들여다봤다. 아이가 소중했으니까. 너무 귀했으니까. 잃어버릴까 봐 겁났으니까 그랬던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아이에게 들려줬다. 그래야 아이도 66통이나 전화를 건 부모의 행동을 이해할 것이며, 자책하던 마음도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안을 때 진심 저 표정이었다 (출처:픽사베이)


 그날 우리 가족은 외식을 했다. 아이 찾느라 기운을 빼서 저녁 할 힘도 없었고, 집안 분위기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가지고 있는 친구들 연락처를 내 폰에 저장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아이를 찾을 때 같이 놀고 있을 거라고 심증 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친구와 함께 있지 않았다) 그 아이와 연락할 길이 없었다. 아이 친구 부모의 연락처도 받아두었다. 가끔씩 아이 주변의 연락처를 업데이트해야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전화만 맹신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전화기가 없을 때는 어디서 노는지 뻔했는데, 전화기가 생긴 이후로 뻔한 곳을 알기 어려웠다. 아이는 쉽게 장소를 이동했고, 내가 모르는 친구 집에도 잘 갔다. 전화만 하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아이에 대한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은 무섭다. 그러나 전화기 하나 꺼버리면 쉽게 발생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똘똘한 아이라고 너무 믿지 말고, 전화기도 쉽게 연락이 될 거라고 믿지 말 것이며, 항상 아이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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