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워킹맘이 힘들다고 말한다. 일하면서 아이도 키우는 젊은 여성들. 그렇다. 그들은 젊다. 대부분 30대에서 40대 범주 안에 속할 것이다. 얼마나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그리고 노하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30~40대 남성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한창 일하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몸통 역할을 한다. 요즘은 기업들도 젊어져서 40대 임원을 자리에 앉히기도 하지만, 아무튼 30~40대는 회사에서 한창 일하여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30~40대 워킹맘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한창 일해야 한다. 중요한 일도 맡고, 가벼운 일도 맡으며 회사 생활의 다양한 경험치를 쌓는다.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파고들어 그 속에서 두각도 나타낸다. 그러다 보면 일이 재밌을 때도 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아 만족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일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워킹맘의 과도한 업무량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집으로 퇴근해 또 일(육아)해야 하는 지친 워킹맘의 삶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의 딜레마를 말하고 싶다.
회사 업무와 육아 중 당신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오전 9시 여러 다른 부서 사람들과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중요한 미팅 시간에 늦지 않게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가,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중요한가? 한 달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드디어 프레젠테이션 하는 날, 학교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아이를 데리고 가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택 근무 중 아이는 엄마가 집에 있어 좋다며 옆으로 오는데, 회사 업무로 정신이 없을 때 그 정서적 유대는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회사 일은 책임감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일을 맡기로 해놓고 다른 일로 펑크내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 하게 만들었을 때, 굉장한 죄책감이 올라온다. 나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하고 괴롭다. 또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잘못했을 때 꼭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 일이 외부 부서나 업체와 연관됐을 경우엔 피해가 아니라 망신이다. 체면을 손상시켰다고 엄청난 후 폭풍이 들이닥칠 것이다.
반면 육아는 아이의 성장에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 1세 때 필요한 것, 10세 때 필요한 것이 다르다. 10세인 아이가 다시 1세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 순간, 그 시기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부모가 아닌 조부모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할 수도 있지만, 부모는 대체될 수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 꼭 가져야 하는 유대감과 물리적인 시간도 필요하다. 자식 입장에서는 엄마 아빠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굉장히 많다. 그것을 수용해주고 채워주지 않으면 아이는 정서적으로 상처받는다. 상처받은 성인으로 자라난다.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은 부모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이 세상 모든 워킹맘들은 매 순간 이 딜레마에 빠져 산다. 너무나 선택하기 어려운 두 가지를 놓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선택해야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최소 20년, 임신 기간까지 셈하면 1년은 더 쳐줘야 한다. 그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마도 둘 중 한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긴 막대를 들고 외줄을 타는 사람처럼 공평하게 반으로 나누어져 한번은 이쪽으로 다음엔 저쪽으로 기우는 삶은 초반에나 하는 것이다. 수년의 세월이 지나가면 괴롭지만 조금 더 무게를 두는 한쪽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속이 어떨까?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데, 그 무엇도 덜 소중한 게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
워킹맘이 힘들다는 것의 방점은 바로 그곳에 찍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육체적으로 힘드니까 도와준다는 관점이 아닌, 그들의 그 속. 그 괴로운 마음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렇게 쉽게 ‘오늘도 또 지각이야?’ ‘오늘도 연차야?’ 하는 소리가 내뱉어지지 않을 것이다. 거칠한 얼굴빛과 멍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서 한숨 쉬는 그녀들의 표정에 마음이 아려와야 한다. 삐쳐나온 머리도 만져줄 새 없이 일하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덜 자고 덜 먹으며 일하는 그녀들의 삶이다. 그녀들의 입장을 조금만 더 헤아려준다면 지금처럼 경단녀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워킹맘들이 장대를 들고 외줄을 타고 있을 때 ‘애는 엄마가 봐야지’, ‘여자가 돈 벌어 뭐해?’,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느라 애를 고생시키네.’ 라는 말은 발치에 치인다. 그만큼 쉽게, 많이 듣는 말이다. 그 쉽게 던지는 말에 많은 엄마들이 경단녀의 길에 들어선다. 외줄 위에서는 작은 바람에도 기울기 마련이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 옆에 있으면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고, 그동안 주지 못한 사랑을 마음껏 건네주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다. 상사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대장이 되어 집안을 좌지우지하는 삶도 꽤 괜찮다. 하지만 동기들이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에 씁쓸해질 것이다. 누군가가 물어오는 안부에 딱히 할 말이 없고, ‘그냥 똑같아.’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크고 엄마의 손길이 예전만큼 크게 필요하지 않게 되면 공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볼지도 모른다. 청년 백수도 넘쳐나는 시국에 경단녀의 재취업은 언감생심이다.
안 그래도 힘든 워킹맘에게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쉬라’는 말 같은 건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그럴 때야. 그 시기가 지나야지’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성장하고 육아의 비중이 서서히 낮아지는 시기가 오면 다시 원활히 일할 수 있는 워킹맘들이다. 그녀들을 조금 기다려주면 어떨까? 그래 대놓고 좀 봐달라고 말해보고 싶다. 좀 봐줘라 워킹맘. 그 시기를 견뎌낸 그녀들의 가치는 또 달라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