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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Feb 16. 2022

불안한 것은 그것이 소중하기 때문

 엄마가 된 후로 나는 불안감이 높아졌다. 내가 원래 불안감이 높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된 이후 더 많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 처음은 임신부터 시작한다. 여자가 임신을 하면 금기사항들이 많아진다. 뛰면 안 되고,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되고, 찬 데 앉으면 안 되고. 먹는 것도 술 안 되고, 담배 안 되고, 아파도 약 함부로 먹으면 안 되고. 내가 임신했을 때 빵을 먹었더니 한 직장 동료가 그것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아기한테 아토피 생긴다고. 요즘 우리 아이가 가렵다고 피부를 긁을 때마다 난 그 말이 맴돈다. ‘내가 빵을 먹어서 그런가?’     


 금지 사항뿐만 아니라 필수 사항도 생긴다. 태교를 해야 하고, 마음은 항상 편안히 가져야 하고, 음식은 건강하고 좋은 것만 먹어야 한다. 눈은 항상 예쁜 것만 봐야 한다. 그래서 냉장고에 멋진 배우 사진을 붙여 놓는 경우도 있다. 남편 말고 그 배우 닮으라면서.   

  

 아이를 낳고 나면 해야 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가짓수는 더 많아진다. 아기 발달을 위해 모빌을 달아매고, 병풍처럼 생긴 흑백 도형 책을 펼쳐놓고, 밤마다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 눈금을 재며 분유를 타고, 시간을 재며 모유를 먹인다. 아무리 들어도 똑같은 울음소리의 특징을 파악해 아기가 졸린 건지, 기저귀 갈아달라는 건지, 안아달라는 건지를 알아내야 한다. 산모는 일정 기간 외출도 못 한다. 한여름에도 내복을 입고 에어컨은 멀리해야 하며 찬바람, 찬물 목욕은 금지다. 걸레도 행주도 비틀어 짜면 안 된다. 손목 망가진다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딱딱한 음식도 안 된다. 치아 망가진다. 아기랑 씨름하느라 지치고, 나와 달리 남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 억울하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눈물이 자꾸 나지만 아기한테 부정적 감정 표출은 금지다. 왜, 정서발달에 안 좋으니까.


 여기까지만 써도 알겠다. 내가 왜 엄마가 되고 불안감이 높아졌는지. 애매모호한 기준과 수많은 미션으로 엄마를 좌절시키고, 아기의 미래를 담보로 한 ‘카더라’로 불안감을 높인다. 엄마에게 아기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데, 내가 뭘 잘못하면 아기가 잘 못 된다니! 이런 끔찍한 시나리오가 또 어딨냔 말이다.

출처 : 픽사베이


 슬프게도 이런 악순환은 아이가 커서 교육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또 반복된다. 아이가 스스로 ‘어머니 저의 문해력을 높여주세요.’ ‘영어가 필요합니다’ ‘예체능은 저학년 때 하는 거래요’라고 말해준다면 고민 1도 없이 아이를 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는 돈과 아이를 담보로 하는 사교육 시장에서 들려온다. 그러니 그 진위를 가리기가 어렵고, ‘그냥 질러~’ 할 수도 없다. 학원이든 학습지든 맡겨 놓고도 제대로 한 건가 걱정스럽고, 남들은 어떻게 하나 하염없이 곁눈질을 한다. 귀가 팔랑팔랑, 가슴은 불안감으로 두근두근, 머리는 한 달 생활비와 교육비를 저울질한다. 이런 삶은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면 달라질까? 아마 아닐 것이다. 아이가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노파심이라는 말이 생긴 것 아닌가. 노파심(老婆心)은 한자 그대로 늙은 여자의 마음이다.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노파심이라 한다. 노파의 반대말은 ‘노옹(老翁)’인데 노옹심이라는 말은 세상에 없다. 이런 걱정과 염려와 그게 안 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은 엄마 전용 감성인가 보다.


 나는 불안감이 높아질 때 이렇게 되뇐다. ‘아 소중하구나. 그게 너무 소중하고 중요해서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그런 생각만 해도 불안감은 한풀 꺾인다. 그리고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이렇게 불안할 정도로 그게 그렇게 소중한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 물건, 어떤 선택에 대해 다시 한번 가치를 따져본다. 그러면 과도하게 불안해하고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엄마가 되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지는데, 이런 감정까지 달라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가 된 후 불안감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것까지 달라지다니.


출처 : 픽사베이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라 말하기도 하고,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자신이 선택한 것이든 선택하지 않은 것이든 일단 엄마가 된 사람들은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닥쳐올 예상치 못한 변화들과 고단함, 그리고 심리적 동요를 각오해야 한다. 왜 엄마가 강하다고 하겠는가.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거쳐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잘 치러냈는지, 못 치러냈는지에 대한 평가는 그다음이다. 아무튼 그 시련을 무조건 거쳐가야만 한다. 그들이 엄마다. 그러니 내 옆의 아내를, 내 앞의 엄마를, 내 뒤의 며느리를 우습게 보지 않길 바란다. 그들이 힘겹다고 하는 하소연을 귓등으로 보내지 않길 바란다. 그 힘겨운 시간을 다독이고 위로해주는 것은 모든 가족이 함께 해주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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