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녀를 만났다. 그녀에게는 7개월 된 아이가 하나 있고, 남편은 몸 바쳐 회사에 충성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육아는 그녀 혼자만의 몫이었다. 얼마나 고단하고 지쳤을까. 그런 그녀가 내게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 말해주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고,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울었다. 아이는 남편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녀는 당연히 남편이 청소기를 끄고 아이를 안아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계속 청소기를 돌렸고 아이는 계속 울었다.
“언니, 이상하지 않아요? 어떻게 그래요?”
그녀의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남편이 잘못했네.” 그 당시엔 그랬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왜 내 마음에 남았던 걸까. 나는 그때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남편에게 “왜 안 안아줬어?”라고 물어봤을 것 같다. “왜 아이를 안지 않는 거야!”라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나는 청소기를 중단하고 아이를 안아주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남편은 뭔가 다른 뜻이 있었는지, 다른 생각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남편에 대해 얘기할 때 대부분 비난 섞인 어조로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 속 남편은 정말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았다. 육아는 서툴고 심지어 소극적이다. 모든 걸 그녀에게 떠넘기고, 좀 시키면 불만이 하나 가득이다. 그런데 회사 일에는 그렇게 헌신적이고 세심할 수가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 가정보다 회사가 더 중요한 것 같아 그녀는 배신감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니 그녀가 그런 뉘앙스로 말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것은 남편과도 그런 어조로 대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출처: 픽사 베이
누구나 비난받는 것을 싫어한다. 잘못한 거 알아도 누가 잘못했다고 얘기하면 듣기 싫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얘기가 나오면, 화를 내거나, 입을 다물어 버리거나, 그 상황을 피해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 역시 뻔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럴 때 질문으로 대화를 하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그 사람의 생각을 묻는 질문. 정말 궁금해서, 오롯이 그 사람의 가치관과 판단을 듣고 싶어 하는 질문. 그런 질문을 하면 태도가 좀 달라진다. 사람은 누구나 ‘의도’라는 것이 있다. 의도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 또는 무엇을 이루려고 힘을 쓰는 행위이다. 아이에게도 있다 그 의도는. 하물며 성인인 남편에게 그런 것이 없을 리 없다. 의도를 확실히 알면 오해도 확실히 줄어든다.
그녀의 에피소드 속 남편도 뭔가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청소를 조금만 더 하면 끝나니까 그다음 아이를 안아주려고 했다든지 (이 경우 남편에게 ‘멀티 플레이 multiplay’를 알려주면 된다. 의외로 남편들은 동시에 뭔가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기가 그 순간 말썽을 부렸거나 (이 경우는 우선순위가 달라진 경우다. 이왕이면 아이를 우선순위에 두자고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정말 너무 청소에 집중해서 아이 우는 걸 못 들었거나 (엄마들은 자다가도 아이 울음소리에 깨는 종족이라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아내가 와서 아이를 안을 거라 생각했다고 답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사실 둘 다 육아를 미뤄서 생겨난 것이다. 아내도 설거지를 중단하고 아이에게 갈 수 있지만, 남편이 더 가깝다는 이유로 미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의 생각을 물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행위는 첫째, 일단 오해를 만들지 않는다. 설사 나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는 된다. 두 번째,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너는 어떠니?’라고 물어봐 주면 배려받는 느낌이 든다. 내 가치관과 판단을 존중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얘기를 경청해주겠다는 뜻이 전달되므로 마음을 열 수 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대화가 가능하다. 비난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말을 주고 받는 진짜 대화 말이다. 단절이 아니라 흐름을 만드는 진짜 대화를 할 수 있다.
분명 육아에 대해 엄마와 아빠의 입장 차이는 존재한다. 엄마는 육아는 같이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빠는 육아의 ‘주主’는 엄마, ‘부副’는 아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회사의 모든 업무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녀의 남편도 어쩌면 그런 생각으로 가정에 소홀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 것에 대화만 한 것이 없다. 비아냥이나 화풀이가 아니다.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말의 오고 감이다. 서로의 생각을 묻는 대화. 그 속의 이해. 갈등의 본질. 왜 이 문제가 생겨난 것인지 보는 서로의 시각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엄마도 처음이고 아빠도 처음이다. 인생 선배나 육아 선배의 조언도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각 가정의 아이가 다르고, 각 가정의 부모가 다르므로, 어느 것 하나 딱 맞아떨어져 정답을 도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와 남자의 생김이 다르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다르고, 아내와 남편의 처지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자. 부디 엄마와 아빠가 아이 하나만 바라보고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출처: 픽사 베이
P.S 사실 이런 이야기를 쓸 때마다 고민이 됩니다. 내가 정답은 아닌데 감히 (그렇습니다. 감히) 이런 말을 떠들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생각의 공유’는 가치 있는 일이니까. 정답은 아니지만 의견은 말할 수 있는 거니까.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한 사람의 의견으로 이해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