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끝(16)
내가 최근 수업을 통해 느낀, 유럽중심의 ’인문학‘이 심리학을 통해 경험한 미국 중심의 ’사회과학‘과 비교해 다른점이라면, ‘현상이 이러하다’고 말은 하면서 그 구체적 해결책은 잘 제시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근래 학회에서 주최한 AI관련 강의와 세미나, 포럼이 많았다.
부지런히 참석하면서 느낀점은 ‘그래도 인간 직관의 정교성을 AI가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라는 “설마” 정신외엔 이젠 그 누구도 AI 파급력의 끝과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시원스런 대책을 내 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상 화페 거래에서의 해킹을 막기위해 분산형 데이터 기술을 부르짖던 블록체인(Bolck Chain), 웹상에서 아바타를 이용해서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함으로써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가 허물어 질것이라는 메타버스(MetaVerse)대세설이 채 구체화되기도 전에, 인간처럼 사고하고 생각하고 학습, 판단하는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출현과 급속 발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인식하고, 준비하고,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졌던 예술활동에 있어서도 이미 AI는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다.
음악의 경우, ChatGpt처럼 사용자가 원하는 분위기, 악기, 템포등을 메시지로 작성하면 음악을 그 정보 그대로 생성해 주는 프롬프트(Prompt)형태의 작곡 프로그램부터, 원하는 장르를 선택하고 그 정해진 틀 안에서 특정 스타일에 맞게 음악을 직접 만들어 주고, 유로로 결제하면 저작권보호까지 해주는 제네레이터(Generator)형태의 작곡 프로그램까지 다양하며, AI 작곡 프로그램을 통해 음성합성까지 가능해 이제는 누구나 AI를 활용해 음악을 손쉽게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예술가의 창작행위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자신이 시청하고 검색했던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algorithm)에 의해 유사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AI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당장은 친절한 듯 하지만, AI가 원하는 바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엔 손절당하고 소외된다. 수많은 SNS의 ‘좋아요’ 구걸과 숫자 기반 ‘조회수’가 이를 말해준다.
푸코는 오래 전에 우리 사회가 서로를 '통치'하며 '자유'를 억압하는 구조임을 주장하였다. 특히 철학적 의미로서의 ‘파놉티콘’ 개념을 제시한다. 감시자가 있든 없든, 감시 효과가 나타나는 파놉티콘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파놉티콘처럼 어느 감시자에 의해 감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당하는 것 같은 ‘효과’ 때문에 ‘자유’가 침해당한다. 특정한 감시자는 없지만 감시받는 형태인 것이다. 지금의 ‘알고리즘’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AI와 알고리즘이 통치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무엇일까?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으면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서 알고리즘에 의해 자기 결정성과 자율성이 제한받고 감시와 통제받는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집단 지성의 힘이 필요하다. 각 개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화가 필요하다. 새로 개편되는 권력구조에 대응할 균형감각과 조절능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권력 작동 방식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른지는 나도 모르겠다.
단 AI를 독으로 보느냐, 약으로 보느냐에 따라 제한할지, 협력할지, 피할 지, 함께 갈지 결정될 것이다. 유토피아(Utopia)적 미래가 될 지, 디스토피아(Dystopia)적 미래가 될 지 결정될 것이다.
단 그 주체는 ’사람‘이어야 한다!